[2030 칼럼] 당신의 세상은 평온한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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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영은 공모 칼럼니스트

모든 일에 100% 만족은 없어
사람들 서로 다른 목소리 모아
간극을 줄여나가는 게 중요

정치인과 행정가들도 마찬가지
불만·민원 최대한 많이 들어야
더 나은 사회 정책·시스템 가능

초등학교에 전학해 온 지 얼마 되지 않은 한 아이가 있다고 가정해 보자. 아이에게는 학교의 모든 것이 낯설고 생경했다. 얼마 가지 않아 이 아이는 학급에서 일어나는 일에 불만이 생겼다. 이 학급의 청소 당번은 ‘자원제’로 운영되었는데, 이 때문에 힘 있는 친구들이 약한 친구들을 압박해 자원하게끔 했다. 아이도 얼마 못 가 떠밀려 청소를 도맡아 하게 됐다. 아이는 청소 당번을 자원제로 정하는 이 시스템을 바꿔야겠다고 생각했고, 2학기가 되어 학급회장에 출마했다. 아이와 같은 생각을 가진 친구들이 힘을 실어주었고, 아이는 청소 당번 ‘순번제’ 시스템을 도입했다.

아이는 만족스러웠다. 하지만 모든 학생들도 그렇게 생각했을까? 안타깝게도 그렇지 않았다. 사실 해당 학급에는 몸이 불편한 친구가 있었다. 1학기 회장은 청소 당번 자원제를 도입해 청소를 잘하거나 좋아하는 학우에게 맡기고, 몸이 불편한 친구는 다른 일을 자원하게끔 했던 것이다. 좋은 시스템을 악용하는 학우들이 문제였고, 그것을 바로잡지 않은 게 문제였다. 결국 청소 당번이 순번제로 돌아가는 탓에, 몸이 불편한 친구는 자기 차례가 돌아올 때마다 매번 배려를 당해야 하는 불편한 상황이 벌어졌다.

첫 번째와 두 번째 시스템 중 어떤 것이 완벽하다고 어떻게 말할 수 있을까? 모두가 100% 만족할 만한 시스템을 만드는 것은 불가능하다. 초등학교의 학급으로 예를 들어보았지만, 사회 전체는 비슷하게 흘러간다. 어떤 규칙을 만들어도 예외가 있고, 모든 사람들을 다 아우르는 시스템은 거의 없다. 이런 상황에도 시스템의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서는 계속해서 불만을 제기하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듣는 수밖에 없다. 청소 당번 순번제를 도입한 아이는 어떤 시스템도 완벽하지 않다는 것을 인정하고 보완해야 할 것이다. 불만을 보지 않고 듣지 않으면 본인이 만든 시스템의 좋은 점만 생각하고 만족감에 빠지게 된다. 불편하겠지만 계속해서 불만의 목소리를 듣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100% 만족은 없다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이런 질문을 던져보고 싶었다. 당신의 세상은 평온한가? 모든 사람은 안정적이고 평온한 세상을 소망하지만, 그런 유토피아적인 세상에 당도하기란 어렵다. 만일 세상이 평온하게만 느껴진다면 당장 신문 1면을 펼쳐보면 생각이 달라질 것이다. 매일같이 어렵고 힘든 뉴스들은 쏟아진다. 이 뉴스들은 다수가 마주하기 싫고 외면하고 싶은 진실들을 담고 있다. 세상이 평온하고 아름답다는 것, 어쩌면 보지 않고 듣지 않는 부분이 많다는 것일지 모른다. 특히 정치인들이 자신이 펼친 정책에 대한 만족감만 느낀다면, 계속해서 서민들이 공감하기 어려운 정책들만 난무할 것이라 생각한다.

위 초등학생의 예화는 나의 경험담을 재구성한 이야기다. 안타깝게도 나는 내가 만든 시스템이 완벽하고 더 나은 것이라고 여겼다. 시스템의 이면을 보지 못했던 것이다. 만족감과 확신이 생기자 학교 다니는 것이 즐거웠고 나의 영향력을 더 넓혀가고 싶었다. 그러나 돌이켜보면 그때 작은 불만에 귀를 기울일 줄 아는 자세가 필요했었다는 생각이 든다. 불편함과 마주하고 계속해서 시스템을 보완해 나가는 시도가 필요했다. 영향력 있는 사람이 되는 것보다, 더 본질적으로는 많은 사람들의 만족을 이루는 사람이 되는 것이 성장의 밑거름이 아니었을까 회고해 본다.

작은 학급에서 일어난 이 일은 우리 사회의 정치와도 다르지 않다. 정책을 기획하고 집행하는 정치인뿐만 아니라 조직을 만들어가는 사람 역시 계속해서 불만에 귀를 기울이는 태도가 필요하다. 좋은 점만 바라본다면 민생의 목소리와 멀어질 수밖에 없다. 회사의 수장이라면 신입사원의 불만에 귀를 기울이고, 동장이라면 동에 접수되는 작은 민원 한 건에도 귀를 기울였으면 한다. 그런 불만들을 최대한 많이 수용하고 방향성을 고민하는 태도가 좀 더 나은 시스템을 만들어 갈 수 있다. 특히 최근 저출생이나 집값 정책같이 서민들의 삶과 밀접하게 맞닿아 있는 민생 정책을 만드는 정치인일수록 이와 같은 자세가 필요하다.

나는 세상이 모두에게 공평하게 평온하고 아름다웠으면 좋겠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기에 조금 더 나은 세상을 만들어야 하는 과제가 모두에게 공평하게 주어졌다고 생각한다. 그것을 위해서는 더 많은 영향력을 지닌, 더 많은 힘을 가진 사람이 자신이 가진 것을 올바르게 사용할 줄 알아야 할 것이다. 그게 각 사회의 역할이자 책임이라는 생각을 가져본다. 평온한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 불만과 불편에 목소리를 기울이는 사람들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아마 귀를 열고 눈을 뜨는 것만으로도 많은 것이 달라질 것이다. 스스로의 부족함을 인정하는 건 어렵지만 가치 있는 일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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