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 비틀어질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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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호철 소설가

돌려서 보고,
비틀어서 보니
낯선 것이 지천이었다
죽음을 겪기까지 끊임없이
낯섦을 즐겨야 할 운명이…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이 신기할 때가 있었다. 좋고 싫음의 구분만으로 뭐든 맛보고, 만지고, 느껴보려 했었다. 처음 접해본다는 것만으로도, 그 대수롭지 않은 체험에도 기뻐하고 자랑스러워했을 때가 있었다. 세상 모든 것이 낯설어 빛났던 유년 시절이다.

낯섦의 이면을 알게 되는 두 번째 시기가 있다. 무턱대고 달려들다 상처받고 위험에 빠지기도 했었다. 자의든 타의든 모든 낯선 것들이 도전으로 덮쳐오고, 때로는 성공하고 때로는 실패했었다. 그런 경험으로 무모함이 뭔지 알게도 되었다. 조금 창피할 뿐인 실패를 세상이 무너지는 실패로 받아들여 미래를 속단하기도 했었다. 하지만 낯섦은 여전히 나를 매혹하는 미지의 영역이었다. 이른바 소년과 청년의 시절이었다.

다음에는 협상의 시기라고 이름 붙이겠다. 낯섦에는 감히 범접할 수 없는 두려운 영역이 있으며 동시에 엄청난 가능성이 깃들어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가능성을 얻기 위해선 그만한 대가가 필요하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그 이중성을 알기에, 감당할 수 있는 만큼의 낯섦만 즐겼다.

어쩌다 용기를 내어 낯섦에 도전해 보기도 한다. 하지만 도전이 반복될수록 낯섦에 치르는 비용은 줄어들었다. 오히려 낯섦의 대가로 빈털터리가 될까 싶어 몸을 사렸다. 대신에 책을 읽거나 여행을 떠나고, 새로운 취미에 눈을 돌리기도 했다. 가끔은, 가진 걸 포기하고 미지의 공간에 몸을 던지는 사람을 부러워하기도 했다. 하지만 내심으론 낯섦의 가능성은 랜덤 박스처럼 운이 따라야 한다고 믿는다.

그다음 시기는 잘 모르겠다. 뭔가 다음 단계가 있을 것 같다. 실토하자면, 아무래도 내가 다음 단계에 발을 디딘 것 같다. 일단, 웬만한 것은 다 심드렁하다. 주말에 낄낄거리며 봤던 코미디 프로가 재미없고, 가슴 졸이는 공포 영화를 보고도 주인공은 결국 살아남을 거라며 콧방귀를 뀐다. 세상엔 새로운 것도 특별한 것도 없으며, 결국은 힘의 논리이며, 결국은 원자들의 집합일 뿐이라는 괴상한 논리를 중얼거리기도 한다.

변명하자면, 내 탓만은 아니다. 각종 매체에선 앞다투어 세계 곳곳의 명소와 이색 지역을 소개한다. 전문 정보들이 떠먹여 주듯 넘실거리고, 온갖 극한 직업과 기인, 지구촌 소식과 사건 사고가 눈만 뜨면 보인다. 이런 걸 매일 접하다 보니 가보지 않아도 가본 것 같고 먹어보지 않아도 배가 부르다.

한데, 이런 익숙함이 의외로 고약했다. 마치, 의욕, 식욕 다 잃은 무기력증 환자가 된 기분이다. 나도 한때는 오지를 탐험하고, 세상 끝까지 걸어가 그곳의 별을 보고 싶었었다. 이득을 얻고자 함도, 철없는 호승심도 아니었다. 그 순수한 호기심과 욕구는 분명 삶의 열정이었다. 그러고 보니 다음 단계는 낯섦의 소중함을 새삼 깨닫는 시기인 것 같다.

그렇다고 내가 새삼스럽게 낯섦을 찾아다녀야 하나? 찾는다고 해서 그 낯섦을 감당이나 할 수 있을까? 심드렁해서 더 삐딱해진 눈으로 둘러보니 그럴듯한 낯섦이 바로 코앞에 있었다. 그러니까 늘 보는 것이지만, 거꾸로 돌리거나 비틀어보면 전혀 다르게 보이는 것들 말이다.

갯바위만 보는 것이 아니라, 갯바위 바닥 틈에 우글거리는 고둥과 게를 발견하는 것처럼, 길 걷는 사람 뒷모습만 보는 것이 아니라, 걸을 때마다 보였다 사라지는 신발 바닥 무늬를 보는 것처럼, 눈으로 보고도 미처 몰랐던 광경이 주변에 널려 있었다. 세상을 꼭 정면으로 보라는 법이 있나? 돌려서 보고, 비틀어서 보니 낯선 것이 지천이었다. 까짓것 어디 한번 비틀어서 보자. 어차피, 죽음이라는 최고의 낯섦을 겪기까지 끊임없이 낯섦을 즐겨야 할 운명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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