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 미소 같고 그리운 벗 같은 '연보랏빛 개미취 물결'
경북 문경시 ‘봉천사 개미취 축제’
매년 9~10월 월방산 절 주변 꽃 만개
소나무·바위 어우러져 이색 풍경 연출
SNS에서 큰 인기 관광·사진 촬영 명소
경북 문경시 호계면에 해발 360m 정도로 나지막한 월방산이 있다. 이곳 중턱에 있는 봉천사라는 작은 절이 2년 전부터 갑자기 SNS에서 인기 관광지 및 사진 촬영 명소로 떠올랐다. 이유는 단 한 가지다. 이름도 독특한 꽃, 개미취 덕분이다.
개미취는 한국, 일본 원산의 국화과 풀로서 ‘기억’ ‘먼 곳의 벗을 그리다’라는 꽃말을 가졌다. 일본에서 꽃말도 한국과 비슷한 ‘잊지 않을게’다. 9~10월에 연한 자주색, 즉 연보랏빛 꽃이 화사하게 피어난다.
2022년부터 봉천사에서는 매년 ‘개미취 축제’가 열리는데 이색적인 이름과 연보랏빛 꽃 덕분에 인기가 높아지고 있다. 올해도 오는 13일까지 봉천사 개미취 축제가 펼쳐진다. 만개한 꽃이 시들기 전에 봉천사에 서둘러 다녀왔다.
봉천사로 올라가는 경로는 산길인데도 꽤 넓어 운전하기 어렵지 않다. 문제는 주차다. 큰 절이 아니어서 주차 공간이 모자란 탓에 산길 구석구석에 차를 세워야 한다. 절 관계자와 인근 마을 주민이 주차 안내를 하는 덕에 막히는 일은 없지만 상당히 기다려야 할 수도 있다.
봉천사가 자리를 잡은 공간은 높은 곳은 아니지만 앞이 탁 트였다. 시골 마을 외에는 시야를 가리는 게 없어 너른 들판과 푸른 산이 펼쳐져 풍경이 꽤 시원하다.
절 아래 마을에서부터 개미취가 곳곳에 피어 봉천사에서 만날 절경을 예고한다. 본격적인 개미취 풍경은 주차장에서 시작한다. 주차장 앞 빈터에 개미취가 군락을 지어 피었다. 본격적인 꽃 축제 장소는 주차장을 지나 봉천사로 들어가는 길부터다.
봉천사 개미취 축제는 절과 지역 주민이 함께 진행하는 민간 행사다. 그래서 행사장 입구에서 입장료 1만 원을 내야 한다. 대신 음료수와 도토리묵을 대접한다. 입구에서 ‘사진 핫 스폿’을 소개하는 소형 팸플릿도 나눠 주니 참고해서 사진을 찍으러 다니면 된다.
봉천사 바로 앞에는 절과는 분위기가 사뭇 다른 작은 한옥 건물이 보인다. 이 건물은 절이 아니라 400년 전에 안동 김씨 가문이 지은 병암정이다. 정자 옆에는 큰 소나무가 있는데 정자를 지을 때 심어 수령이 400년에 이른다.
병암정처럼 봉천사 주변에는 소나무 숲 외에 바위가 많은데, 개미취는 숲과 바위 주변에 집단으로 피어 있다. 미륵바위, 거북바위, 자미성바위 등 바위마다 이름이 있는데, 생긴 모양만큼이나 꽃과 어울리는 분위기도 달라 사진 찍는 재미가 남다르다.
개미취 하이라이트는 봉천사 본당과 바로 앞 부처상을 중심으로 하는 공간과 바로 맞은편 큰 바위 언덕이다. 또 본당 왼쪽 자미성바위에서 바라보는 산 아래도 그야말로 절경이다.
개미취꽃을 하나하나 살펴보면 연보랏빛이 눈에 띄지 않지만 집단으로 어울린 모습에서는 색이 분명하게 드러난다. 개미취꽃 군락 사이에 감나무도 보인다. 아직 홍시가 되지 않은 주홍색 감이 대롱대롱 매달렸는데 연보랏빛과 절묘한 조화를 이룬다. 꽃 사이에 시가 적힌 안내판이 설치돼 있다. 봉천사 개미취를 잘 표현했다는 느낌을 주는 시다.
‘보랏빛 꽃바다에/ 봉황이 찾아들고/ 월방산에 달이 뜨니/ 개미취 꽃 아름답다/ 부처님/ 자비로운 미소/ 송이송이/ 스몄네(이만유 시 ‘봉천사 개미취’)’
봉천사 개미취 군락 곳곳에서는 꽃 속에 들어가거나 바위에 올라가 사진을 찍는 사람으로 분주하다. 사진을 찍지는 않고 꽃밭 사이를 산책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 봉천사 본당 옆 공터에 앉아 개미취 꽃과 산 아래 시원한 풍경을 바라보며 ‘멍때리기’ 하는 사람도 더러 있다. 같은 곳에서 여행하더라도 즐기는 방법은 사람마다 다르다.
봉천사 개미취 축제만 보고 오기가 섭섭하다면 문경시에도 가 볼 만한 곳이 많다는 사실을 기억하면 된다. 문경새재도립공원은 이달 말부터는 화려한 단풍이 만개해 관람객을 기다린다. 또 가은역과 진남역 폐역에서는 레일바이크를 즐길 수도 있다. 이 밖에 문경생태미로공원, 문경에코월드, 옛길박물관 같은 이색 시설을 방문해도 된다.
남태우 기자 leo@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