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 이상한 시험공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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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정아 소설가

끌어당기는 힘과
되돌아가는 힘과
밀어 올려주는 힘
그것은 과학의 언어이지만
우리의 마음에도 필요하지 않을까

며칠 전 아이가 중학교에서의 공식적인 첫 시험을 치렀다. 시험을 치른 것은 아이인데 공부는 내가 더 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국어의 품사 분류 연습문제를 만들고(소설을 쓰는 사람으로서 정말이지 그런 식으로 소설을 읽게 하고 싶지는 않았지만), 김유정 소설의 시점과 서술자의 특징과 대사에 담긴 인물의 심리 같은 것을 제대로 숙지하고 있는지 확인했다. 자기 주도적 학습이 중요하다는 것을 나도 물론 잘 알고 있다. 말 그대로 사교육과 타인에게 의존하지 않고 주체적으로 목표를 세우고 학습하는 것이 핵심인데, 아이러니하게도 그 능력을 키우기 위한 사교육 시장이 오히려 늘어났다는 소문도 들었다. 그러나 혈육에 대한 본능적 편애와 이상적 기대를 접어두고 냉철한 이성으로 판단했을 때, 내 아이는 아직 자기 주도적 학습 능력이 부족했고, 여전히 친구들과 노는 게 제일 좋다는 천진난만으로 무장하고 있었다.

다만 발등에 불이 떨어졌을 뿐이다. 나도 평소 공부에 대해 그리 닦달하는 편은 아니었지만 당장 시험이 코앞인데 아이 스스로 메타 인지가 생길 때까지 기다려줄 대범함이나 인내심까지는 없었다. 이상과 현실의 괴리감 속에서 엄마 주도적 학습이라도 시켜야 했다. 물질적 보상 같은 외재적 동기보다 과제 자체에 대한 흥미나 성취감 같은 내재적 동기 유발이 더욱 효과적이라는 교육학 이론들이 내 머릿속에 잔뜩 있었지만, 형이상학적 지식 같은 건 고이 접어두고 용돈이나 선물이라도 걸어야 했다.

국어 과목이야 전공이니 어렵지 않았다. 하지만 다른 과목들을 봐주려면 나도 예습이 필요했다. 내 일을 끝내놓고 중학교 공부까지 하려니 피곤한 마음이 들기도 했지만, 30년 전쯤 했던 공부를 배경지식이 달라진 상태에서 다시 해보니 은근한 재미도 있었다. 아이에게 필요한 내재적 동기는 오히려 내게 촉발된 것 같았다. 이런 식이라면 몇 년 뒤엔 수능을 다시 쳐봐도 되겠다는 쓸데없는 용기까지 생겼다.

과학 시험 범위는 힘에 관련된 단원이었다. 문제집을 아이에게 풀게 하기 전에 내가 먼저 내용 확인차 읽어 보았다. 물체의 모양이나 운동 방향, 빠르기를 변하게 하는 원인과 원리에 대해 이해하고 응용문제를 풀어야 했다. 문제집의 개념 설명 페이지에 과학에서 정의하는 힘에 대해 나와 있었고, 그 옆에는 작은 글씨로 참고 사항이 적혀 있었다. ‘과학에서의 힘이 아닌 예:아는 것이 힘이다. 강아지 키우기가 힘들다. 식사를 하고 나니 힘이 난다. 선생님 말씀이 힘이 되었다.’ 뭐 이렇게 당연한 걸 적어놓았나 싶어서 처음엔 피식 웃었다가, 나중에는 힘이란 무엇인가 하는 생각에 빠져들었다. 나는 어떤 종류의 힘을 얼마만큼이나 가지고 있을까 하는 생각도. 힘은 능력이기도 하고 자신감이나 용기이기도 하고 도움이나 의지처이기도 할 것인데 나는 과연 내면에 힘이 있는 사람일까, 누군가에게 그 힘을 나눠줄 수 있는 사람일까, 그런 생각들.

문제집의 설명에 따르면 중력은 끌어당기는 힘이고 탄성력은 되돌아가려는 힘이며 부력은 밀어 올리는 힘이다. 그것은 물리적인 힘을 설명한 과학의 언어였지만 실은 우리의 마음에도 끌어당기는 힘과 되돌아가는 힘과 밀어 올려주는 힘 같은 것이 필요하겠다는 생각을 했다. 이런저런 상념에 빠져들었던 나는 다시금 깨닫게 되었다. 내가 학창 시절에 나름대로 공부를 열심히 한 것 같으면서도 기대만큼 좋은 성적을 받지는 못했던 이유를. 책상 앞에 계속 앉아서 교과서를 보고 있긴 했지만 의식의 흐름은 자주 그런 식으로 흘러갔던 것이다. 아무래도 수능을 다시 치는 건 곤란하겠다는 결론을 내리며, 아이에게 문제집을 내밀었다. 아이가 입을 앙다물고 문제를 푸는 동안 여전히 내 머릿속에는 내가 가진 힘과 타인이 가진 힘, 그리고 우리가 나눌 수 있는 힘에 대한 생각들이 무수히 가지를 치며 뻗어나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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