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션 뷰] 무역 전쟁 시대, 대한민국호의 리더십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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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겸 팬스타그룹 회장·세계해양포럼 기획위원장

해방 직후 우리나라에는 100톤 이상의 배가 한 척도 없었다. 그 작은 배조차 고장이 나면 일본으로 가져가서 수리해야 했다. 우리나라 최초의 조선소가 대한조선공사란 이름으로 부산에 조성된 것은 1950년이었다. 1960년대 초에는 한국은행이 보유한 외화의 절반을 사용하면서 중고 어선을 수입하려는 계획의 실행을 두고 정부 부처 간 다툼이 있었다. 이는 참치를 잡아 통조림으로 만들어 수출하는 원양어업의 역사 속 일화다.

며칠 전 책 한 권을 선물받았다. 신태범 KCTC 회장의 회고록 〈청해, 푸른 바다를 넘어〉였다. 신 회장은 한국해양대학교 항해과 2기로 졸업한 후 선장으로 일하다가 기업인으로 변신했고, 한국항만협회장, 한국관세협회장 등을 역임하며 대한민국 물류 산업을 이끈 ‘대한민국 해운사의 전설’이다. 특히 그는 대한민국의 계획 조선 필요성을 당시 정부에 건의해 1962년 우리 기술진이 해방 이후 최초이자 최대 규모의 2600톤급 화물선(신양호)을 부산에서 건조하도록 한 주역이다. 당시 전 국민이 흥분하며 기적이라고 외치던 장면이 지금도 ‘대한늬우스’에 담겨 유튜브에 떠돌고 있다. 그런 경험과 시행착오가 켜켜이 쌓여 지금의 조선 강국 대한민국이 되었다.

미국 등 세계 권력 질서 재편되는 시점

국내 정치 국제 정세 변화 못 따라가

비효율적 행정 계속된다면 미래 암울

무역 전쟁 시대 ‘국가 리더십’ 회복 절실

1928년 경남 거창 출신의 신 회장은 “해방이 된 뒤 비로소 내가 조선인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며 뒤늦게 회고했다. 그는 “일본이 설계해 놓은 식민지에서 태어난 20대 범부로서, 더 나은 미래의 선택지는 극히 제한적이었을 것이다”며 “해방된 나라에서 운 좋게 대학에 다니고, 자립 경제를 부르짖던 조국을 위해 헌신할 기회를 가질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고 말했다.

회고록은 감동 그 자체였다. 해방된 조국에서 불모지인 해운과 조선산업의 태동과 시련, 성장이라는 목표를 향해 내달린 해양 산업의 기린아이자 영웅들의 기적 같은 이야기에 단숨에 빠져들었다. 특히 해운과 조선, 제조업의 동반 성장을 위해 우리가 무엇을 더 고민해야 하는지도 가늠할 수 있었다. 신 회장은 “회고록이 넘쳐나는 세상에 한 권을 더 추가하고 싶은 마음은 없다”면서도 “혹시 장래에 닥칠지 모를 국가 경제 위기 때 참고와 조언이 되면 좋겠다”는 바람을 남겼다.

그는 국가 발전의 핵심 요소로 종종 리더십을 첫손에 꼽았다. 정치와 경제는 리더십과 제도가 상호 작용해야 궤도에 오를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일촉즉발의 ‘무역 전쟁’ 시대에 그의 고언은 우리가 나아가야 할 방향성을 제시한다. 승자와 패자가 갈리고, 그 결과에 따라 세계의 권력 질서가 재편되는 지금, 우리는 과연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가?

지속적인 대일 무역 적자에 시달리던 미국은 1985년 플라자 합의를 통해 엔화의 대(對) 달러 환율을 대폭 인상했고, 이후 일본의 수출 산업은 곤두박질쳤다. 일본의 ‘잃어버린 30년’은 그렇게 시작됐다. 중국에 대한 위안화 평가절상 압력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대공황과 글로벌 금융 위기에서 벗어나기 위해 미국 역사상 가장 높은 관세를 매긴 스무트-할리 관세법은 지금 생각해도 세계를 향한 선전포고나 다름없다. 냉전 시대를 종언하고 소련을 무너뜨린 전략 무기는 사실 핵이 아니라 코콤(COCOM·공산권 수출 통제)이라는 국제기구였다. 특정 기술과 물품의 무역 제한을 통해 기술 격차를 확대했고, 그것은 소련 경제와 정치 불안을 부추기면서 공산주의 연합 체제 붕괴를 촉발했다.

미국은 새 대통령을 곧 선출한다. 하지만 누가 되더라도 무역 전쟁이 중단될 가능성은 적다고 한다. 오히려 코콤에 버금가는 대중국 무역 규제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이는 미국과 중국만의 문제가 아닐 것이다. 어떤 경우에도 우리가 받을 타격은 클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국내 정치는 국제 정세의 변화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포퓰리즘이 남발하고 갈등을 부추기는 데 열을 올리고 있다.

외국인 노동자에 대한 동일 임금 지급을 명시한 노동법은 국민 갈등의 정점에 있다. 행동경제학에서 고객이 제품이나 서비스에 대해 기꺼이 지불할 최대 가격을 ‘지불 의사 가격’(WTP)이라고 하는데, ‘동일 임금’이 아무리 명분에 부합하더라도 현실과 유리된다면 시기상조다. 대한민국이 만든 경제적 토대에서 국수주의적이지 않으면서도 ‘국민의 몫’은 당연히 우선되어야 한다. 포항 지진 이후 전국 모든 건축 공사에 지반 검사를 의무화했지만, 정작 검사 기관이 두 곳밖에 되지 않아 모든 착공이 반년 이상 늦어졌다는 비효율의 극치 행정이 지속된다면 무역 전쟁 시대의 대한민국 미래는 담보하기 어렵다. 지금이라도 여야 정쟁을 중단하고 국제 정세 속에서 대한민국의 길을 찾아야 한다. 이를 위해 ‘국가 리더십’의 회복이 절실하다. 온고지신(溫故知新), 과거에서 미래를 준비하는 깨달음을 얻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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