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션 뷰] 해운항만 용어, 너무 어려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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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응혁 부산항만공사 국제물류지원부장

컨테이너 관련 어휘, 외부인 낯설어
정기 노선은 ‘서비스’, 박스는 ‘장비’
B2B 산업인 데다 외국어 직역 탓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순화 바람직

20년 전쯤 선배한테 들은 이야기가 있다. 당시 한국 전체 컨테이너부두를 관리하는 공공 기관이 있었는데, 그 기관은 현재 한국의 4개 항만공기업(Port Authority)의 전신이기도 하다. 그 명칭이 ‘한국콘테이너부두공단’이었는데 선배가 입사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시절이니 1990년대 초로 추정이 된다. 어느 날 민원 전화가 와서 “콘테이너부두공단 아무개 대리입니다”라고 응대하니, “콘테이너 두부 공장이요?”라고 되묻더란다. ‘컨테이너’ 무역이 일반인들에게 많이 인지되지 않은 시점이라 그랬을 것으로 짐작된다.

현재는 ‘콘테이너’를 ‘컨테이너’라고 통일해서 쓰지만 당시에는 흔한 용어가 아니었다. 컨테이너라는 말은 이제 모두가 아는 일반적인 단어가 되었지만 여전히 해운항만 용어가 어렵다는 사람들이 많다.

부산항에서 처리되는 화물의 95%가 컨테이너 화물이다 보니 특히 정기선(컨테이너) 해운과 관련한 용어 설명에 애를 먹는 경우가 많다. 특히 업무상 기자들에게 상세한 설명을 해야 할 때가 많은데, 기자들조차도 대부분 어렵다고 하니 일반인들은 말할 것도 없을 듯하다.

정기선 해운에서 가장 많은 오해를 유발하는 단어는 ‘서비스’가 아닐까 생각한다. 덤을 의미하는 ‘서비스’도 아니고, 가전제품 AS는 더더욱 아니다. 정기선 해운은 부정기선에 반대되는 말로 특정한 항로를 정해진 일정(주간 단위)으로 운항하기 때문에 정기 노선을 영어로 ‘weekly service’라고 한다. 업계에서 ‘남미 서비스 3개 신설되었습니다’는 식으로 말하면 일반인들은 이해하기 어렵다.

도로에서 흔히 보이는 철제 컨테이너 박스는 ‘장비’ 혹은 ‘기기’로 부른다. “장비가 모자라 수출 화주들이 난리입니다”라는 말은 선사가 보유하고 있는 컨테이너 박스가 모자라서 수출 화주에게 빈 컨테이너 박스를 보낼 수 없는 상황이고, 따라서 수출 화물 예약을 받지 못하고 있다는 의미다. 과거 팬데믹 물류대란 당시 흔한 장면이었다.

영어에서 컨테이너 박스를 ‘equipment’로 표현하는데, 과거에 이를 직역해서 사용하다 보니 ‘장비’(혹은 ‘기기’)라는 용어가 자리잡게 되었다. 재미있는 것은 한국 최대 컨테이너 선사였던 A사 출신 직원들은 모두 ‘장비’라고 하는 반면 B사 직원들은 ‘기기’라고 한다. 왜 그런지는 개인적으로 아직도 풀리지 않는 미스터리 중 하나다. 지금은 ‘장비’가 ‘기기’보다 더 많이 쓰이고 있는 듯하다.

정기선 해운의 역사는 수천 년에 달하는 전체 해운의 역사에 비하면 극히 짧다. 특히 1980~1990년대부터 컨테이너를 통한 국제 무역이 급성장하였기에 우리가 체감하는 컨테이너 해운의 역사는 훨씬 더 짧으며, 여전히 진화하고 있는 산업이다. 원두커피, 차량, 가축, 의류 등 과거에는 컨테이너로 운송되지 않거나 운송할 수 없었던 화물들이 지금은 거의 컨테이너화(containerization)되었고, 우리가 사용하는 일상 소비재는 90% 이상이 컨테이너를 통해 국제 운송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치권이나 일반 대중들의 컨테이너 해운에 대한 이해도는 아주 낮다. 해외 항만과의 교류 경험에 비춰볼 때, 이는 해외도 마찬가지다.

컨테이너 해운에 대한 대중들의 이해도가 낮은 이유는, 전형적인 B2B 산업이라는 점과 아직도 진화하고 있는 신생 산업이기 때문에 충분한 지식의 축적과 전파가 이뤄지지 않은 측면이 있다. 또 전문 용어를 순화하지 않은 채 그대로 사용해 온 탓도 크다.

과거 한진해운이 위태하던 시절, 한진해운을 살리기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다양한 보고서를 작성해 제출해야 하는 일이 많았다. 당시 한진해운 측 임직원들을 통해 많은 서면 자료를 받았지만, 전문 용어가 너무 많아 쉽게 풀어 쓰는 재가공(?) 작업을 해야 했다. 일부는 기자 브리핑용으로도 사용했으나 여전히 많은 분들이 이해하기 힘들다고 하였다.

특정 전문 분야의 용어를 외부인을 위해 쉬운 용어로 변환하는 것은 간단한 일이 아니다. 하지만 전문가 집단이 ‘전문 용어’를 고수하면 일반인과 기자는 이해를 못하고 결국 그 분야는 점점 더 대중에서 멀어지게 된다. ‘기업이야 돈만 잘 벌면 되지’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결국 모든 기업은 공동체에 속해 있고 공동체를 설득해야 할 결정적인 순간에 실패한다면 기업의 존속도 위태로울 수 있다는 점을 우리는 과거 사례를 통해 경험한 바 있다.

부산항만공사는 국내 최대 컨테이너항 부산항을 관리하는 공공 기관으로서 전문 용어를 순화하고 대중에게 쉽게 전달하려는 노력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 당장 내일부터 우리 직원들에게 ‘서비스’ 대신 ‘노선’으로 쓰자고 권유해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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