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 기억이 만든 기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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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호철 소설가

사람의 생각과 판단의 근간은 모두 기억이 아닐까 싶다. 당장 뭔가를 떠올려 봐도 그렇다. 어떤 모습, 대화, 단어, 현상, 뜬금없는 계획…. 무엇을 상상하든 과거의 기억을 토대로 떠올려진다. 아무 생각 없이 습관적으로 하는 행동도 결국은 오랫동안 쌓아온 기억의 결과가 아닌가. 그래서 개개인이 가진 기억은 삶의 방향을 정하기도 하고, 삶 자체의 증거가 되기도 한다.

까마득히 오래된 기억이 있다. 아마도 가장 오래된 기억일 것이다. 그래서 스틸사진처럼 순간의 장면만 떠오른다. 나는 엄마의 등에 업혀 있었고 막 잠에서 깨어나 눈을 떴다. 그때 보았던 것은 초가의 처마와 창이 뚫린 낮은 황토벽이었다. 그리고 벽 안쪽에서 소의 나지막한 울음을 들었다. 기억의 영상은 그것이 전부다. 하지만, 그 영상에는 또 다른 감각들, 이를테면 삭은 짚 더미 냄새와 뜨끈한 여물통에서 피어나는 증기가 뒤섞인 형언할 수 없는 냄새가 섞여 있었다.

내가 몇 살 때였는지는 모른다. 하지만 비슷한 시기의 정황으로 그곳이 외갓집의 어느 장소였음은 분명하다. 그래서 지금도 이끼 낀 시골의 오랜 담벼락을 보면 왠지 삭은 짚 더미 냄새가 느껴지기도 한다. 엄마의 친정, 즉 외갓집의 풍경은 내 유년의 기억에 크게 자리 잡고 있다. 나지막한 산 앞에 앉은 외갓집 앞에는 이삭을 피우기 시작하는 벼가 바다처럼 펼쳐져 있었다.

바람에 일렁이는 초록 물결은 구불구불 가로지른 개울둑에 막혀 되돌아오고, 그보다 더 까마득한 지평엔 기적을 울리며 나타나 어린 시선을 사로잡고 마는 동해남부선 기차의 행렬이 있었다. 어렸던 나는 외갓집 대청마루에 앉아 그것이 얼마나 오랫동안 내 기억의 바닥을 차지할지 모르고 마냥 바라보기만 했었다.

여름밤, 대나무 평상에서 외할머니 무릎을 베고 칭얼거리다가 문득, 숨 막힐 정도로 황홀한 밤하늘의 은하수를 목격했었다. 처음 보는 그 장관에 나는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나는 그런 은하수의 현기증을 두 번 다시 느끼지 못하리라는 것을 몰랐다. 그저 침묵으로 하늘의 끝과 끝을 더듬었었다.

기억의 단편은 뒤죽박죽이다. 바닷가에서 고둥을 줍다가 발견해 내 손바닥 위에 올린 성게의 보일 듯 말 듯 한 움직임. 그리고 따갑지도 간지럽지도 않은 아슬아슬한 손바닥의 느낌을 기억하고 있다. 무심코 휘둘렀던 내 잠자리채에 부딪혀 죽어 가던 제비의 까만 눈. 밤마실 가는 외할머니 따라 농로를 걷다가 내 옷에 앉은 반딧불이의 깜박이는 불빛. 그렇다. 그것들은 모두 일종의 신호였었다.

무엇을 뜻하는 신호인지는 나도 모른다. 하지만 그 신호에 따라 평범했던 사건이 전혀 다른 의미의 기억으로 변하기도 했었다. 또 그런 신호에 따라 불쾌했던 사건이 망각의 심연 속으로 가라앉기도 했다. 그래서 나는 나의 기억이 그다지 정확하지 않다는 것도 알고 있다. 기억은 언제나 기억을 만들어 내기 때문이다.

기억이 쉽지 않았던 만큼, 망각 또한 맘대로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다. 나쁜 기억은 지우려 문지를수록 더욱 선명해지고, 영원히 간직하고픈 기억은 나도 모르게 구멍이 숭숭 뚫린다. 기억이란 본디 그런 것이긴 하던데, 똑같이 체험하더라도 개인마다 다른 신호에 따라 다른 의미를 만들고 전혀 다른 기억으로 저장되는 것 또한 기억임을 깨닫는다.

그래서 나는 내가 가진 내면의 기억들이 궁금하다. 언제, 어떻게 나타나 지금 겪고 있는 사건에 의미를 부여하고, 현실을 채색해줄지 모르기 때문이다. 아무것도 모르는 나는 지금도 무심코 밤하늘을 올려다보고, 골목길 아래의 무성한 이끼에 눈길을 던지곤 한다. 그리고 늘, 초록의 물결을 그리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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