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 삶과 체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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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정아 소설가

나는 불편했다.
타인의 삶의 현장을
이벤트처럼 체험한다는 사실이,
그리고 '소중한 경험'했다고
쉽게 말하지 않았으면…

예전에 ‘체험 삶의 현장’이라는 TV 프로그램이 있었다. 각종 노동 현장에 유명인들이 하루짜리 일꾼으로 투입되어 일을 하고 그날 받은 일당을 기부하여 불우이웃을 돕는 콘셉트였다. 평소 잘 모르고 있던 타인의 노동 현장을 들여다본다는 것, 몸으로 하는 일에 익숙지 않은 유명인들이 좌충우돌하며 일하는 장면을 지켜보는 것, 그리고 그날 번 돈을 어려운 이웃에게 기부함으로써 세상을 아름답게 만드는 데 일조하는 것. 시청자들의 관심을 끌 만한 요소는 충분했다.

그 프로그램의 하이라이트는 주인공이 받은 돈을 스튜디오로 들고나와 유니콘을 타고 공중으로 올라가서 하트 모양의 모금함에 넣는 것이었다. 그러면 그날의 일당과 그동안 쌓인 모금액이 화면에 커다랗게 나타났다. 나는 그 장면이 무척 의미심장하다고 느껴졌다. 날개와 뿔이 달린 하얀 유니콘, 현실에는 존재하지 않는 상상의 동물. 그 유니콘을 타고 높이 올라가 만나는 사랑의 하트. 그 설정 자체가 환상에 기대고 싶어 하는 우리의 마음을 보여주는 것 같았다.

그날 하루치의 고생으로 타인의 삶을 다 이해한 것 같은 착각, 잠깐 체험해 본 것으로 타인의 고충을 모두 헤아린 것 같은 오만함, 그리고 하루의 일당으로 인류에 대한 사랑을 실천한 것 같은 거대한 환상. 물론 그 프로그램이 나빴다는 것은 아니다. 다양한 직업의 세계를 시청자들에게 알려주기도 했고, 그렇게 모은 성금은 실제로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또 어떤 시청자에게는 봉사나 나눔에 대한 의지를 불러일으키기도 했을 것이다. 그렇지만 동시에 나는 불편하기도 했다. 타인의 삶의 현장을 단 하루 이벤트처럼 ‘체험’한다는 사실이. 내가 쓴 단편소설 ‘서로에게 좋은 일’에 이런 장면이 있다. 부유한 친구의 휴가에 따라온 주인공이 별장을 차지하기에 미안해서 텐트에서 자겠다고 하자 친구의 남편이 말한다. “방에서 편하게 지내세요. 저희는 텐트에서 하루 자면서 리아한테 불편하고 힘든 경험도 좀 시켜보려고요.” 그들에게 힘든 경험은 휴가용 이벤트이지만, 누군가에게는 매일같이 견디며 살아야 하는 삶이다. 요즘은 캠핑이 워낙 유행이고 나 역시 아이가 졸라대서 한두 번 가본 적이 있지만, 나는 사실 캠핑을 즐기지 않는다. 텐트처럼 불안전한 공간에서 자고 싶지 않다. 화장실에 가기 위해 집 밖으로 나가고 싶지 않다.

그런 경험이라면 청소년기와 대학 시절에 이미 충분히 했고, 그것은 전혀 낭만적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는 남의 집 주차장에 살았던 적이 있다. 주차장이었으므로 셔터가 출입문이었다. 안에서 자물쇠를 걸어 잠그고 자면 늦게 귀가하는 가족이 들어올 수 없었기 때문에 종종 잠금장치를 하지 않은 채 셔터만 내리고 자야 했다. 그럴 때면 누가 들어와 나를 해칠까 봐 불안했다.

무허가 판자촌에 산 적도 있었다. 얇은 합판을 통해 들어오는 모든 소리들이 나를 잠 못 들게 했다. 두 집 모두 화장실에 가려면 집 밖으로 나가야 했는데 그것은 하루짜리 체험이 아니고 나의 생활이었다. 누가 그 시절의 내게로 와서 단 하루 머물다 가며 좋은 경험이었다고 말하면 나는 모멸감을 느꼈을 것이다.

그래서 며칠 전 기사에서 접한 퍼스트레이디의 미담에도 나는 마음이 불편했다. 4시간 동안 쪽방촌의 청소와 도배를 하고서 “어려운 이웃들과 함께하는 이 시간이 너무나 소중하다”고 한 그녀의 말에 얼굴이 달아오르는 것 같았다. 누군가가 힘겹게 겪어내는 매일의 생활이 누군가에게는 하루짜리 ‘체험 삶의 현장’이구나, 그런 생각. 이웃을 돕는다는 것은 좋은 일이지만, 그것이 자신의 선행을 전시하는 일로 끝나버리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타인의 고통을 잠시 체험하고 빠져나와 ‘소중한 경험’이었다고 쉽게 말해버리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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