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사회 마약 문제를 통해 본 삶의 진짜 문제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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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민 신부 부산가톨릭대 특수대학원 중독학과장 한국중독전문가협회 대외협력위원장

마약 범죄 일상·저연령층 파고들어

약물 중독은 고립이 낳은 애착장애
빠른 결과 원하는 풍조도 영향 미쳐

인간관계 회복 통해 중독 치료 가능
삶의 속도 늦춰 사는 의미 살펴봐야

최근 마약 종류와 유통 경로가 다양화하며 국민 일상을 파고들고 있어 문제다. 최근 마약 종류와 유통 경로가 다양화하며 국민 일상을 파고들고 있어 문제다.

요즘 마약 관련 뉴스가 자주 나온다. 예전처럼 일부 연예인이나 고위층 자녀의 일이 아니라, 대학생들이 동아리에서 마약을 함께 투약하거나, 중·고등학생들이 SNS를 통해 마약을 사고팔다가 적발된 이야기 등이다. 마약이 일상을 파고들고 마약 사범 연령이 낮아지는 추세다.

예전에 마약 사용자들을 대상으로 상담하면, 대부분 중년 남성이었고 마약 관련 전과가 많았다. 사용하는 약물도 필로폰으로 알려진 메스암페타민 하나였다. 지금은 약물 관련 교육과 상담에 오는 사람들이 주로 20~30대이고 전과가 없는 이가 많으며, 사용 약물도 다양하다. 그만큼 마약 구입이 쉬워졌으며, 유혹도 커졌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단지 살 수 있는 기회가 많아졌기 때문에 마약 사용자와 약물 중독자들이 많아졌다고 할 수 있을까? 사회에 드러나는 문제를 통해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삶의 모습과 방향에 관해 살펴보았으면 한다.

약물 중독을 비롯한 거의 모든 중독은 고립의 병이라고 할 수 있다. 고립됐기 때문에 중독에 빠지고, 중독에 빠지다 보니 다른 관계들이 끊어져 혼자되는 병이 중독이다. 단순히 술을 많이 마시고 도박을 좋아한다고 해서 다 중독의 문제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어떤 사람은 음주나 도박, 약물 사용이 중독으로 가고, 그렇지 않은 사람도 많다. 여기에는 유전적인 이유도 있고 사회 학습적인 원인도 있겠지만, 혼자 어려움을 해결하고 기분을 풀어야 하는 상황이거나 혼자 해결하는 것을 더 선호할수록 중독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코로나19 팬데믹을 경험한 우리 사회는 여전히 혼자 지내며 스스로 감정적 어려움을 달래는 것을 선호하는 듯하다. 혼밥, 혼술이라는 말이 생기고, 혼자서 잘 살아가는 것이 다른 이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미덕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중독의 대상이 되는 물질이나 행동은 친구나 가족, 혹은 연인보다 더 친밀하고 더 애착이 가는 대상이 된다. 자기가 겪는 어려움을 즉각 달래주고, 거기에서 빠져나올 수 있도록 도와주기 때문에 계속 다른 문제가 발생하고, 또 그렇게 될 것이라고 예상이 되는 상황에서도 포기할 수 없게 된다. 달리 말하면 중독의 대상과 애착 관계가 형성되는 것이다. 그래서 중독을 애착장애라고도 한다. 그러므로 중독에서의 회복은 끊는 게 아니라 끊어진 걸 다시 잇는 것이다. 단주, 단약, 단도박이 아니라 친구와 가족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들과 다시 사랑을 주고받으며 사는 삶, 더불어 사는 삶이 회복의 삶이다.

또 하나 중독이 문제가 되는 것은 사회가 점점 더 빠르고 확실한 결과를 원한다는 점이다. 요즘 사회에서 가장 많이 사용되고, 사람들이 좋아하는 단어를 내게 꼽으라면, ‘단기, 속성, 100% 확실’이라 말하고 싶다. 사람을 모집하는 곳에서는 거의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단어들일 터이다. 중독되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의 차이는 속도이다. 내가 얻고자 하는 기분이나 결과를 얻는 데 걸리는 시간이 짧아야 중독성이 있다. 술을 마셨는데 취하는 데 걸리는 시간이 24시간 정도라면 아마 술 먹고 싶은 생각이 없어질 것이다. 카지노에서 슬롯머신을 했는데 1년이나 뒤에야 결과를 알 수 있다면 흥미가 없어질 것이다. 자신이 원하는 기분과 결과가 빨리 나온다는 게 중독을 일으키는 원인이다. 그런데 현대사회는 모두가 빨리 되는 것을 원한다.

돈을 빨리 벌려고 하고, 원하는 것도 가능한 한 빨리 얻고 싶어 한다. 그렇게 남들보다 빨리 얻은 것을 성공이라고 여긴다. 하지만 빨리 지나다가 보면 당연히 놓치는 것이 많을 수밖에 없다. 천천히 걸어가면 보이는 것들이 차를 타고 빨리 갈 때 볼 수 없는 것과 같다.

중독은 내리막길에서 뛰는 것과 같다. 처음에는 자기 발로 뛰지만, 어느 정도 속도가 붙으면 발이 저절로 움직인다. 속도가 붙으면 자기가 뛰는 속도를 조절하기 어렵다. 조절력의 상실이야말로 중독의 대표적인 모습이다. 삶의 속도를 자기가 조절하려면 삶의 순간순간에 멈춰야만 한다. 중독에 빠진 사람들을 만나보면 하나같이 “왜 사는지 모르겠다”라고 한다.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가 아니라 왜 살아야 하는가를 묻는다. 삶의 방법보다 더 중요한 건 삶의 의미이다. 어쩌면 우리는 행복과 성공의 방법만을 찾다가 삶의 의미를 잃어버린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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