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 지구의 면역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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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호철 소설가

지구의 위기가 아니다
바로 인간의 위기인 것이다
그것도 멸종의 위기이다
예민해진 지구의 면역체계를
어떻게 속일 수 있을지,

며칠간 몸 상태가 심상찮더니 결국 코로나로 진단받았다. 지나갔다고 생각했던 전염병이 다시 유행하는 조짐이다. 이 바이러스는 제 몸을 변형시켜 끊임없이 자신의 명맥을 유지하려 한다. 이들의 좌우명은 숙주를 옮겨 다니는 것이며, 그 숙주는 인간이다. 기생 생물이 무엇인가? 한마디로 다른 종에 붙어살면서 그 종만 피해를 보게 하는 생물이다. 그런 기준으로 보면 우리를 병들게 하는 세균이나 바이러스도 기생 생물이다. 기생 생물이라는 명칭이 당장 혐오스럽지만, 서적이나 다큐멘터리 영상으로 살펴보는 기생충의 생태는 나름 흥미롭고 신비하다.

저녁이 되면 감염시킨 개미를 풀잎 끝으로 올라가게 해 초식동물에게 잡아먹히도록 조종하는 창형흡충이라든지, 물속에 새끼를 풀어놓기 위해 숙주를 물가로 가게 만드는 메디나충. 고양이에게 잡아먹히기 쉽도록 쥐에게 두려움을 없애버리는 톡소포자충 등을 보면, 기생 생물이 자신의 생존을 위해 얼마나 기발한 방법을 쓰고 있는지도 알게 된다.

한데, 당장 약을 처방받아 먹어야 하는 처지에 직면하니 마냥 재미있게 볼 수만은 없다. 새삼 심각하게 살펴보니 문득, 의구심이 든다. 인간은 늘 기생 생물들에게 당하기만 하는 숙주였을까? 그렇지는 않다. 인간들 또한 지금까지 번성하는 과정에서 일방적으로 얻어내기만 했던 대상이 있다.

만약에 지구가 생명체라 가정한다면 인간은 분명히 지구에 기생하는 생물이다. 개인적으로 필자는 지구를 생명체로 본다는 가정이 그다지 억지스럽지 않다. 인간을 살펴봐도 그렇다. 인간의 바깥 피부는 죽은 세포이다. 하지만 그 외피가 없으면 인간은 살아갈 수 없다. 즉, 생명체를 구성하기 위해 모든 영역이 살아 있어야 하는 게 아니다. 오히려 생명체는 살아 있는 것과 무생물의 절묘한 조화와 융합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러니 인간이 지구에 기생한다는 말이 어쩌면 냉정하게 판단한 현실일 수도 있다. 기생이라는 단어 자체로 혐오할 필요는 없다. 남의 살을 먹어야 살 수 있게 태어난 걸 어쩌겠는가. 기생 생물의 원칙만 잘 지키면 되는 것이다.

기생 생물의 원칙은 바로 이것이다. 숙주의 면역체계를 필사적으로 피해야 하며, 또한 자신이 원할 때까지 숙주가 살아 있게 해야 하며, 또 다른 숙주로 이동할 수 있게끔 숙주를 조종할 수 있어야 했다.

한데, 숙주인 지구의 건강 상태가 심상찮다. 팬데믹 이후로, 이상 기후가 세계를 뒤덮고 있다. 폭염과 홍수. 그로 이한 산림화재까지 빈번하게 일어난다. 지구 온난화로 해수 온도가 올라가고 해수면의 급격한 상승으로 국토가 위협받는 국가도 있다.

그래서 지구가 걱정되냐고? 천만의 말씀이다. 지구는 잠깐 앓을 뿐이다. 독감에 걸려 열이 나듯 평균 기온을 한 50도쯤 올릴 수도 있겠다. 그렇게 100년쯤 지나면 현재의 생명체는 대부분 멸종할 것이다. 나쁜 세균이 사멸하듯 깨끗이 청소된다. 지구는 다시 멀쩡하게 회복될 테고, 곧 새로운 생명체로 가득 채울 것이다.

지구 면역력에 비하면 인간의 생명력은 정말 보잘것없다. 그러니 온난화로 인한 지구의 위기가 아니다. 바로 인간의 위기인 것이다. 그것도 멸종의 위기이다. 한껏 예민해진 지구의 면역체계를 어떻게 속일 수 있을지, 기생 생물 인간의 비장한 생존 본능에 기대를 걸어본다. 저녁을 먹고 코로나 경구약 4알을 물과 함께 삼켰다. 기생 생물 속에 기생하는 생물이라니…. 아무쪼록 적당히 뺏어 먹고 물러나길 바란다. 몸속에서 탐욕만 부리지 않았으면 저도 좋고 나도 좋았을 텐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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