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 한계선
서정아 소설가
제한된 시간을
분명하게 인식하는 일,
그것은 우리로 하여금
현재의 상황에 더욱 몰입하고
집중하게 하는 동력이 된다.
계속되는 폭염으로 밤마다 푹 잠들지 못한다는 사람들이 많다. 나 또한 그렇다. 사실 열대야가 아니더라도 잠을 자주 깨는 편이고, 한 번 깨고 나면 그때부터 수면의 질이 매우 낮아지는데, 요즘은 더위 때문에 한 시간에도 몇 번씩 ‘자다 깨다’를 반복하는 것 같다. 그러다 보니 늘 피곤하고, 피곤하니까 커피를 자꾸 마시고, 커피를 많이 마시니까 밤에 또 깊이 못 자고…. 악순환이 이어진다.
얼마 전 새벽녘에는 요란한 천둥과 번개 때문에도 잠이 깼다. 아마 많은 사람들이 그 시간에 깨어버렸을 것이다. 어두운 집안이 클럽의 무대처럼 번쩍거리며 빛났고 천연 조명이 켜질 때마다 사물들이 환영처럼 나타났다가 사라졌다. 나는 어떤 신비한 존재에 홀린 듯 창밖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그러면서 생각했다. 지금 나는 누군가와 동시에 깨었겠지. 이렇게 비현실적인 빛과 소리의 향연을 함께 보고 있는 사람들이 어디엔가 까만 점처럼 박혀 있겠지. 그런 생각을 하니 그날의 불면은 어쩐지 외롭지 않고 오히려 묘한 위안이 되었다.
한참을 그렇게 있다가 시간을 확인하려고 휴대폰 화면을 켰다. 그런데 대체 무슨 영문인지, 휴대폰 화면에도 번개가 내리꽂혀 있는 것이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화면 우측에서 사분의 일 정도 되는 지점에 세로로 길게 분홍색 선이 생겨 있었다. 마치 초등학교 시절 짝지가 책상 위에 불공평하게 그어놓은 금처럼 아주 선명하고도 단호하게 말이다. 휴대폰을 껐다 켜 보고 화면을 이리저리 터치해 보았지만 선은 사라지지 않았다. 인터넷으로 검색을 하니 친절한 누군가가 이미지까지 올려가며 설명을 해둔 내용이 있었다. “이것은 라인 디펙트 현상입니다. 디스플레이 패널과 메인보드를 연결하는 부위에 이상이 생긴 것이죠. 당장 사용하는 데에는 문제가 없지만 점점 화면이 보이지 않게 될 겁니다. 스마트폰이 시한부 판정을 받은 거라고 보시면 됩니다. 미리 대비하세요. 화면이 전부 잠식되기 전에요.” 대략 이런 내용이었다.
시한부. 생각지도 못했던 그 단어가 눈에 쏙 박혀 내 마음을 데굴데굴 굴렸다. 보통은 불치병 판정을 받고 죽음을 앞둔 상황에서 흔히 쓰이는 말이지만, 사전적 의미는 이러하다. ‘어떤 일에 대해 일정한 시간의 한계를 둠’. 사실 따지고 보면 인생 자체가 시간의 한계를 가지고 있으므로 우리에게 벌어지는 모든 사건들은 시한부일 것이다. 다만 그 끝이 언제인지를 대체로 알지 못하기에 그 모든 게 영원할 것처럼 어리석게 행동할 뿐. 그런데 만약 끝을 예감하고 있다면? 어떤 일에 시한부 판정을 받고 내게 주어진 시간의 한계를 명확히 받아들여야 한다면?
모든 순간이 어쩌면 마지막일 수도 있다는 사실을 잊지 않는 일. 제한된 시간을 분명하게 인식하는 일. 그것은 우리로 하여금 다분히 체념하는 태도를 갖게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현재 상황에 더욱 몰입하고 집중하게 하는 동력이 되어주기도 한다. 단 한 번뿐인 순간이므로 한눈을 팔 겨를이 없다. 그 순간의 아름다움, 그 순간의 특별함, 그 순간의 기쁨…. 그런 감정을 온전히 느끼는 것만으로도 시간이 부족하니까. 그리고 그 모든 것들을 결국 상실하게 되더라도 의연히 견딜 수 있는 마음의 준비를 차근차근히 해야 하니까.
물론 우리 삶에는 어떤 예고도 없이 한순간에 끝장나 버리는 일들이 더 많다. 휴대폰도 경고 신호 없이 그냥 먹통이 되어버리는 경우가 더 흔할 것이다. 그렇게 되면 저장해 두었던 사진도 연락처도 모두 사라져 버리고 정말 ‘멘붕’이 오겠지. 그 새벽녘, 천둥·번개와 함께 시한부를 알리는 한계선이 생겨줘서, 담아둔 것들을 차곡차곡 정리할 시간을 내게 마련해 줘서, 다시 오지 않을 이 순간을 온전히 감각하게 해 줘서, 나는 끝을 아쉬워하기보다 차라리 그 모든 것에 고맙다는 말을 해야 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