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병균 칼럼] 정쟁에 날 새는 국회, 탄핵감이다
여야 개원 초기부터 사사건건 충돌
거대 양당 극한 대치로 정상화 요원
대화·협치 실종된 정치에 실망 커져
경제 회생·민생 안정도 뒷전에 밀려
다툼 접고 국가·사회적 현안 챙겨야
제 역할 안 하면 국민의 심판 받을 것
내 진작에 이럴 줄 알았다. 예측은 빗나가지 않았다. 그래도 마음 한편으론 설마설마했는데, 역시나여서 허망하다. 아니, 당초 우려한 것보다 더 심해서 문제다. 22대 임기 시작부터 여야의 진흙탕 싸움으로 파국을 맞고 있는 국회 탓에 비통한 심정에 빠진다. 내가 이런 볼썽사나운 꼴을 보려고 올 4월 초 바쁜 시간을 쪼개 총선 사전투표소로 달려가 소중한 주권을 행사했던가 싶다. 후회와 자괴감이 밀려든다.
4·10 총선을 앞두고 22대 국회의 여야 간 정쟁은 충분히 예견된 바이다. 대화와 타협이 실종되고 극단적인 진영 대결이 격렬하게 펼쳐진 21대 국회에 이어 22대 역시 여소야대 속 거대 양당 구도가 예상됐기 때문이다. 아니나 다를까. 총선은 윤석열 대통령의 불통과 독단, 집권 여당의 무능 여파로 국민의힘 참패, 더불어민주당 압승으로 끝났다. 이로써 양당이 앞으로도 사사건건 충돌할 전망이었지만, 협치에 대한 일말의 기대감이 없지 않았다. 새로운 인물을 많이 수혈한 22대 국회가 최악이라는 비판을 받은 21대와 달리 경제 살리기와 민생 안정에 힘쓰길 바랐던 민의여서다.
한데, 기대는 물거품이 됐다. 지난 5월 30일 새 국회가 개원한 지 불과 40여 일 만에 실망으로 바뀌고 말았다. 예전에 비해 더 극심한 여야 대치 국면이 빚어져 국회 정상화는 요원한 까닭이다. 국가와 국민의 이익을 앞세워 협치하는 정치다운 정치는 기대 난망이다. 21대보다 상황이 악화된 22대 국회를 보고 있자니 분노가 치민다. 벌써부터 국민 대부분의 시선은 싸늘하다. 1995년 고 이병철 삼성 회장한테서 4류로 지적된 정치권이 30년 가까이 달라지지 않은 모습에 혐오스럽다는 사람이 숱하다.
발단은 절대다수 의석의 힘에 도취해 당리당략을 밀어붙이는 민주당의 안하무인이다. 171석 거대 야당을 만든 건 지역구 1등만 당선되는 승자독식의 소선구제이지 다수 국민의 지지가 아니다. 민주당 전체 총선 후보의 지역구 득표율은 50.45%에 그쳤다. 그런데도 민주당은 전폭적으로 지지한 국민을 받든다는 구실로 쟁점 법안들 입법을 단독으로 강행해 여권의 강한 반발을 산다. 민심을 왜곡했거나 잘못 읽은 처사다. 이에 국민의힘은 야권과 거친 비방과 막말을 주고받는 데 급급할 뿐 소통과 협의를 통해 절충점을 찾고 사태를 해결하려는 노력은 안 보인다. 정치력 부재와 무기력한 모양새가 한심하다. 결국 국회는 민생경제 논의는커녕 첨예한 대립으로 날을 새는 파행의 연속이다.
국민은 안중에 없는 국회의원의 행태 또한 마뜩잖다. 민주당 의원들은 대장동 개발비리 의혹 등 4개 사건 재판을 받는 이재명 전 대표의 사법 리스크 방탄에 혈안이 돼 충성 경쟁을 벌인다. 이 전 대표 수사 검사들에 대한 탄핵소추가 대표적이다. 검사 탄핵 움직임이 판사들에게 부담을 줄 게 염려된다. 급기야 오는 19일, 26일 윤 대통령 탄핵소추 청문회를 열기로 하는 등 탄핵 정국으로 몰아가며 이성을 잃은 듯한 민주당 의원들에게서 중국 문화혁명기 홍위병의 무분별한 광기마저 느껴진다.
국민의힘 의원들의 경우 23일로 예정된 전당대회에서 뽑을 대표직을 놓고 4명의 후보 편으로 나뉘어 이전투구로 치달아 한숨이 절로 나온다. 지리멸렬한 당의 혁신과 민심 반영을 위한 전략과 비전은 찾기 힘들다. 그저 총선 책임론, 상대편 공격, ‘윤심(윤 대통령 의중) 팔이’로 난타전이 치열하다. 저급하게 좌충우돌하는 권력투쟁에 ‘김건희 여사 문자’ 공방까지 가세해 요지경이 따로 없을 정도다.
“우리 이럴 때가 아니다. 머리 맞대 민생을 안정시키자. 경제부터 살리자.” 온 국민이 원하는 이 같은 주장을 외치는 소신 있는 국회의원은 없는가. 300명이나 되는 선량이 죄다 눈을 감고 귀를 막고 있나. 고물가와 고금리에 밤잠을 설칠 만큼 고통받는 서민이 보이질 않는가. 내수 침체와 영업 부진에 시달리며 한계로 내몰린 자영업자와 중소기업인의 아우성은 안 들리는가. 젊은이들이 먹고살기가 어려워 결혼과 출산에 엄두를 못 내고 인구절벽으로 나라가 망해 간다는데, 의원들은 도대체 무얼 하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지금 뭣이 중한가?
제 역할을 팽개치고 국론을 분열시키는 소모적 다툼으로 길을 잃은 국회야말로 탄핵감이다. 지자체장과 지방의원에 부적격 사유가 생기면 주민투표를 거쳐 임기 중 해직시키는 주민소환제가 있다. 만일 국회에 적용이 가능하다면 당장 국회의원을 모조리 퇴진시키고픈 생각이 간절하다. 여야와 국회의원들은 총선 거리 유세에 나섰을 때 유권자들에게 한 표를 호소하며 뭐라고 약속했는지 되뇌어 보길 바란다. 벌써 지역공약과 초심을 깡그리 잊었단 말인가? 변화 없이 퇴행의 정쟁을 일삼다간 역대 최악 국회란 오명을 뒤집어쓰고 향후 지방선거와 대선에서 국민의 탄핵을 받을 것이다.
강병균 논설실장 kbg@busan.com
강병균 논설실장 kbg@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