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설위원의 시선] 노인 연령 70세 상향의 조건

김승일 논설위원 dojune@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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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년·연금 개혁 동반한 ‘세대의 재구성’ 필수

한국은 내년에 65세 이상 노인이 인구 비율 20%를 넘겨 초고령사회에 진입한다. 2072년에는 인구의 절반에 가까운 47.7%까지 늘어난다. 이에 따라 정년·연금 개혁과 함께 복지제도의 기준이 되는 노인 연령을 기존 65세에서 상향할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 사진은 한 노인이 보행 보조 손수레에 의지해 걷는 모습. 연합뉴스 한국은 내년에 65세 이상 노인이 인구 비율 20%를 넘겨 초고령사회에 진입한다. 2072년에는 인구의 절반에 가까운 47.7%까지 늘어난다. 이에 따라 정년·연금 개혁과 함께 복지제도의 기준이 되는 노인 연령을 기존 65세에서 상향할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 사진은 한 노인이 보행 보조 손수레에 의지해 걷는 모습. 연합뉴스

‘노후’(老後)는 애매한 표현이다. ‘늙은 이후’란 대체 언제를 말하는가? 시대가 변하고 개인별로도 사정이 달라 하나의 기준점으로 뭉뚱그리기가 어렵다는 뜻이다. 60대·70대·80대가 다 같은 노인이 아닌 것과 같다.

우리나라에서 노인의 기준이 마련된 것은 1981년 노인복지법의 경로우대 대상이 65세 이상이 되면서다. 이후 도시철도 무임승차와 국민연금, 기초연금, 노인장기요양보험 개시의 기준으로 65세가 적용됐다. 문제는 이 기준이 무려 43년째 그대로라는 점이다. 1981년 당시 기대수명은 66세였고 지금은 82.7세로 16년 이상 더 산다. 통계청의 ‘장기인구추계’에 따르면 65세 이상 인구는 내년에 1000만 명을 첫 돌파한 1051만 명(20.3%)이 되고 20%를 넘겨 초고령사회에 진입하게 된다. 2072년에는 인구의 절반에 육박하는 1727만 명(47.7%)으로 예상된다. 노인의 개념을 바꿀 때가 온 것이다.

‘노후’의 기준을 바꾸려면 고차원 방정식을 풀어야 한다.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국가 중 가장 높은 노인 빈곤율 해소가 핵심인데 정년 연장과 연금 개혁이라는 까다로운 변수가 난제다. 노인 연령만 덜컥 70세로 올리면 60세에 정년을 맞아 일터를 떠난 뒤 무려 10년 간의 소득 단절에 맞닥뜨린다. 2033년부터 65세에 지급이 개시되는 국민연금과도 엇박자가 난다. 기초연금도 마찬가지. 연금·정년·노인 연령은 서로가 전제 조건이면서 동시에 결과로 얽혀 있다. 세밀한 밑그림과 공론화에 이은 사회적 대타협이 필요하다.

■‘노인 연령 70세 상향’ 논의 본격화

일본 재계를 대표하는 게이단렌(경제단체연합회)은 지난달 노인 연령 기준을 70세로 올리자고 정부에 건의했다. 고령 인구가 늘자 사회보장제도의 재정 부담 경감과 고령자 재취업 필요성 때문이다. 이에 앞서 일본 정부는 65세 정년을 법제화했고 70세 정년을 권고하고 있다. ‘70세 노인’으로 가기 위한 사전 작업이 착착 진행 중인 것이다.

서울시는 최근 발표한 ‘인구정책 기본계획’에서 복지 혜택 기준을 70세 이상으로 바꾸는 방안을 포함했다. 생애 주기별로 다른 노인 복지 수요에 신축적으로 대응하자는 취지다. 국가의 일률적 복지의 빈틈을 지자체가 대응할 때 필요한 접근법이다.

여론도 노인 연령을 바꾸는 데 찬성으로 돌아섰다. 여러 지자체 여론 조사에서 ‘70세 상향’이 다수인 결과가 잇따랐다. 대통령 직속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저고위)가 실시한 설문 조사에서도 성인 66.1%가 노인 연령 상향에 동의했다. 현행 65세 유지를 바라는 비율은 17.5%에 그쳤다. 저고위는 올해 말까지 고령화 시대에 걸맞게 노인 연령 변경을 위한 로드맵을 제시할 예정이다.

한동희 노인생활과학연구소 대표는 노인 연령 조정을 ‘세대의 재구성’이라는 범주로 봐야 한다고 설명했다. “50대 이후 100세까지 인구 구성을 큰 틀에서 재조정하는 작업”이라는 의미에서다. 예컨대 지금 중소기업은 인력난과 숙련도 때문에 퇴직 이후부터 70세까지의 재취업 인력 상당수를 고용하고 있다. 하지만 통계상의 생산연령인구는 여전히 25~49세, 50~64세까지 구분한다. 현실과의 괴리가 커지고 있다는 것이다.

폐지를 줍는 노인. 부산일보DB 폐지를 줍는 노인. 부산일보DB

■한국 노인 빈곤율 OECD 1위

21대 국회 막바지까지 국민연금의 개혁을 놓고 진통이 거듭됐다. 보험료율(소득 대비 납부액 비율)과 소득대체율(소득 대비 수령액 비율)의 수치 조정, 즉 모수 개혁이라도 하자는 더불어민주당과 22대 국회로 넘겨 근본적인 구조 개혁을 하자는 여당이 맞서면서 결론을 내지 못했다.

이 지점에서 지난해 화염병 시위까지 부른 프랑스의 정년 연장 사례는 참고할 필요가 있다. 대통령 지지율이 역대 최저치인 20%대로 추락하고 총파업으로 반대 여론이 들끓었는데도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은 개혁안을 고수했다. 정년을 62세에서 64세로 늦추자는데 왜 프랑스 국민들은 격렬히 저항했을까. 그 이유는 프랑스에서는 정년 퇴직하면 바로 연금이 개시되기 때문이다. 프랑스 연금의 보험료율은 27.8%, 정년 이후에는 소득의 약 60%를 연금으로 돌려받는다. 은퇴를 하면 세금과 생활비가 줄기 때문에 소득대체율 60%로 안정적인 노후 생활이 가능하다. 정년 2년 연장은 안락한 노년이 2년 늦어지는 것을 의미해 온 국민이 들고일어난 것이다.

이 대목에서 한국과 극명하게 대비되는 게 노인 빈곤율이다. 노인 빈곤율은 중위 소득의 절반 미만의 비중을 말하는데, 프랑스는 4.4%에 불과하고 OECD 국가 중 4번째로 낮다. 한국은 40.4%로 OECD 회원국 중 가장 높다. 나이가 들수록 빈곤율이 높아지는 경향을 보이는데 76세 이후는 무려 52.0%다. 늙은 것도 서러운데 가난에 허덕이는 게 한국의 현실이다.

■‘노인을 위한 나라’가 되려면

현재 한국의 국민연금은 소득의 9%를 내고 소득대체율 40%를 수령하는 방식이다. 프랑스에 비해 훨씬 덜 내고 약간 덜 받는 식이다. 그래서 고갈 시점이 예고돼 있다. 퇴직연금과 개인연금을 착실히 부은 덕분에, 혹은 공적 부조로 국가가 지급하는 기초연금이 늘어나서 결과적으로 소득대체율 합계가 OECD 권고 수준이자 프랑스와 같은 60%를 넘으면 이상적이겠지만 실현 가능성이 아주 낮다. 현실은 ‘노인을 위한 연금’과 동떨어져 있어서다.

통계청의 ‘2016~2021년 연금 통계’에 따르면 65세 이상 인구 중 기초·국민·직역·퇴직·주택·개인·농지연금의 밖에 있는 미수급자 비율이 9.8%나 된다. 그나마 수급자들이 받는 급여액 합계도 평균 월 60만 원에 불과했다. 수급액이 25만~50만 원인 구간이 43.3%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니 대다수 노인이 쥐꼬리 연금으로 생활하고 있다고 보면 된다. 예컨대 가장 수급자가 많은 국민연금과 기초연금을 합해 월 50만 원 미만을 수령한다면 생활고에 허덕일 가능성이 높다.

은퇴 후 경제력이 미흡한 상황은 퇴직연금 일시 수령 비율이 96%에 달하는 것에서 단적으로 드러난다. 은퇴자들이 퇴직연금을 다달이 받는 대신 일시금으로 받아 빚을 갚거나 자녀 교육비, 주택 구입에 소진해 버리는 것이다. 이처럼 노인층의 빈곤이 사회문제로 떠오르니까 국가가 나선 게 기초연금이다. 기초연금은 사회보험이 아니라 소득 하위 70%를 대상으로 월 33만 5000원이 지급된다. 문제는 급속한 고령화로 수급자가 눈덩이처럼 불어나서 국가 재정에 큰 부담을 준다는 점이다. 보건사회연구원에 따르면 기초연금이 GDP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2020년 0.8%에서 2080년 3.6%로 높아진다. 윤석열 대통령의 공약인 40만 원으로 인상되면 GDP의 4.4%다. 재정 부담을 줄이면서 노인 빈곤율을 떨어뜨리는 대안을 모색해야 한다는 지적이 이어진다.

한국개발연구원은 노인 연령을 10년마다 1세씩 올리는 동시에 생산연령인구의 상한을 함께 올리는 방안을 제시한 적이 있다. 정년과 연금 개혁이 뒷받침됐을 때 가능한 이야기다. 동시에 60~70대가 일터에 남을 수 있으려면 임금 체계의 변화도 필요하다. 국민·기초연금의 지속 가능성과 노인 빈곤율 감소의 균형점이 최우선이다. ‘70세 노인’으로 가는 길은 험난하겠지만 결국 사회적 대타협으로 풀어야 한다. 100세 시대를 맞은 대한민국의 최대 과제다.

김승일 논설위원 dojune@busan.com


김승일 논설위원 dojune@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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