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 비평] 유튜브와 뉴욕타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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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영호 부산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명예교수

대통령에 대한 여론이 심상치 않다. 여당의 총선 참패에 이어 윤석열 대통령 지지율이 일부 여론 조사에 의하면 20퍼센트 언저리에 머물 정도로 낮은 수준을 기록했다. 그간 대통령과 여당에 비교적 호의적이던 ‘조중동’ 등 보수 언론들조차도 대통령의 오만과 독선, 불통, 무능에 대한 불만을 표하는 듯, 대통령 때리기에 가담하기 시작했다.

이 와중에 중앙일보의 김현기 논설위원은 ‘차기 대통령의 조건’이라는 칼럼으로 화제가 됐다. 차기 대통령으로는 첫째, 이른바 ‘갑튀 후보’, 즉 오랜 검증을 거치지 않고 갑자기 튀어나온 후보는 뽑지 말자. 둘째, 건들건들하지도 말고, 거들먹거리지도 말고, 국민을 얕잡아 보지도 않는 ‘올바른 태도’를 지닌 인물을 뽑자. 셋째, 지지층의 결집을 촉구하는 지도자 말고 확장을 호소하는 지도자를 뽑자. 극단적인 유튜브의 확증 편향적 정신세계에 갇혀 있지 않고, 유튜브가 아니라 뉴욕타임스, 파이낸셜타임스를 보는 지도자를 뽑자. 그리고 기왕이면 배우자 관리도 잘한 지도자면 좋겠다는 내용이다. 여야 지도자를 모두 겨냥했지만, 특히 윤석열 대통령을 향한 비판이라는 사실은 누구든 쉽게 간파할 수 있는 내용이다.

검증 취재 없이 막말·주장·의혹 중계

유튜버 등장 전부터 정치 뉴스 퇴행

보도 관행 맞춰 정치인 행태도 타락

타성에 갇힌 언론, 후진적 정치 ‘원죄’

여기서 흥미로운 부분은 현재의 정치적 난맥상의 한 요인으로 정치 지도자가 접하는 언론 매체를 지목했다는 점이다. 바로 유튜브 정보가 갖고 있는 편협성, 정파성, 무책임성이 정치인의 정신세계에 영향을 미치고, 이러한 양상이 현재의 정치 지도자상에도 투영된다는 인식이다. 과연 그럴까?

유튜브와 뉴욕타임스는 여러모로 저널리즘에서 서로 대척점에 있는 정보 매체들이다. 뉴욕타임스는 뉴스 선정에서 인기와 무관하게 중요도와 파급 효과가 큰 기사를 고수한다. 아무리 고위직의 발언이라 해도 다양한 출처를 통해 철저하게 교차 확인, 검증하지 않고 내보내는 일은 드물다. 심지어 의견 기사인 칼럼에서도 방대하고 철저한 취재에 경탄을 금할 수 없을 정도다. 기사를 쓸 때에는 객관성과 공정성을 담보할 수 있도록 단어 선택에서도 신중을 기한다. 하지만 뉴욕타임스는 특별하고 예외적인 언론이라기보다는 다만 저널리즘의 직업 규범을 좀 더 철저하게 준수하는 권위지의 한 사례일 뿐이다.

반면에 유튜브는 저널리즘의 이 모든 규범을 무시하고 사실 규명보다는 의혹, 분노, 공감, 상상 등의 정서적 반응을 유발해 이용자의 화제와 관여를 최대한 끌어내는 데 주력한다. 이들이 추구하는 것은 사실이나 진실 규명이 아니라 화제성의 극대화이기에 뉴스의 근거와 윤리적 규범은 아예 무시한다. 오늘날 파워 유튜버의 영향력이 커지면서 근거 없고 무책임한 정보 확산이 정파적 균열과 갈등을 초래할 위험성도 덩달아 증가했다.

그렇다면 한국 언론의 정치 뉴스는 이 중 어느 쪽에 더 가까울까? 유감스럽게도 현재의 정치 보도는 뉴욕타임스보다는 유튜브에 훨씬 더 가깝다. 정치 뉴스는 정치인의 막말, 허위 주장, 신변잡기, 의혹 제기 등 서구의 타블로이드 신문에나 적합할 만한 온갖 내용으로 채워지는데, 흥미롭게도 이러한 갈등이나 의혹은 늘 반복해서 등장할 뿐 실제로 취재를 통해 규명되는 일은 드물다. 유튜버가 등장하기 오래전에도 정치 뉴스에서는 ‘타블로이드화’, ‘유튜브화’가 이미 진행되고 있었다. 미디어 환경 변화와 더불어, 다른 부문에서는 혁신의 시도가 계속 나오는 가운데서도 정치 보도는 오래전의 낡은 관행을 꿋꿋하게 되풀이하고 있다. 달라진 점이 있다면 신생 매체인 유튜브가 이런 식의 작업을 훨씬 더 잘 수행하면서 정치 보도의 자리를 위협하고 있다는 점이다. 정치 뉴스는 시대에 뒤떨어졌다는 한국 언론에서도 가장 낙후된 공룡 같은 존재다.

언론 보도는 정치인과 정치 관행에도 큰 영향을 미친다. 유튜브식의 퇴행적 정치 보도는 정치인들의 행태까지 타락시킨다. 정치 보도가 국가의 미래 비전이나 정책에는 관심이 없고 정치인의 신변잡기, 자극적 막말이나 일방적 주장 중계에만 주력하는 바람에, 어느새 정치인의 행태 역시 이에 맞게 진화했다. 심지어 신인 정치인들조차 기성 정치를 모방해 허언이나 막말로 주목 끌기에 앞장서는 것이 현재의 한심한 현실이다. 만약 주류 보수 언론들이 윤석열이라는 아마추어 대통령의 탄생에 개탄하는 게 진심이라면, 이들 역시 기존의 타성에 갇혀 제 역할을 소홀히 했다는 정치적 원죄에서 자유롭기 어렵다. 현재의 정치 보도 관행이 획기적으로 바뀌지 않는다면 머지않은 미래에 제2의 윤석열 대통령이 배출된다고 해도 놀라운 일은 아닐 것이다. 그러니 앞서 한국 정치인의 후진성을 비판한 언론인에게는 오래전 어느 영화에 나온 대사를 들려주고 싶다. “너나 잘 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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