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설위원의 시선] 김영미 전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부위원장을 만나다

강윤경 논설위원 kyk93@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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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권 쏠림과 격차 해소, 지역 재구성 전략에 답 있다

출산율 반등 시기 장담 어렵다
사회·경제 요인 복합적 작용
수도권 진입 경쟁 한국 특수성

천문학적 예산 투입했다지만
제대로 된 정책 부재가 문제
아동가족 지원은 OECD 꼴찌

체감도 높은 정책 선택과 집중
지역에 과감한 경제력 배분
일관성·지속성이 성패 가른다

김영미 전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부위원장(동서대 사회복지학과 교수)은 출산 정책에 ‘한방’은 없다고 했다. 청년들에게 체감도 높은 정책부터 과감하게 재정을 투입하고 사회 전반의 구조 개혁을 시작해 지속적이고 일관되게 밀고 나가야 한다고 했다. 정대현 기자 jhyun@ 김영미 전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부위원장(동서대 사회복지학과 교수)은 출산 정책에 ‘한방’은 없다고 했다. 청년들에게 체감도 높은 정책부터 과감하게 재정을 투입하고 사회 전반의 구조 개혁을 시작해 지속적이고 일관되게 밀고 나가야 한다고 했다. 정대현 기자 jhyun@

전쟁이 아니고서야 나올 수 없는 숫자라고 하고 흑사병보다 무섭다고도 한다. 날개 없는 추락에 ‘백약이 무효’라는 탄식도 들린다. 한국의 기록적 초저출생 이야기다. 세계에서 유일하게 합계출산율 1명이 안 되는, 지구상에서 가장 먼저 사라질 것으로 예상되는 나라에 우리는 지금 살고 있다. 미래의 희망을 잃어 가는 대한민국에 드라마틱한 반전이 가능한 것일까. 김영미 전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부위원장(동서대 사회복지학과 교수)을 만나 초저출생 문제의 근본 원인과 대책을 놓고 이야기를 나눴다. 김 위원장은 저출생과 돌봄, 복지 정책을 연구해 온 전문가로 대통령 직속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상임위원을 거쳐 2023년 1월부터 1년여간 부위원장을 맡아 국가 저출생 정책을 주도했다.

■ 2025년 합계출산율 0.65 바닥?

통계청은 장래인구추계를 통해 국내 합계출산율은 2025년 0.65명으로 바닥을 찍고 반등할 전망이라고 했다. 이는 2024년 0.7명이 바닥이라던 앞선 전망에서 후퇴한 것이다. 2025년 바닥 전망도 장담하기 어렵다는 이야기다. 김 위원장은 너무 장기간 출산율 하락이 지속돼 반등의 계기를 만들 필요는 있다고 했다. 올해 혼인 건수가 전년 대비 소폭 반등한 것도 출산율에 긍정적 신호다. 하지만 금전적 인센티브 약간 더 주는 단편적 정책으로 출산율 0.1이나 0.01 올리는 게 큰 의미가 없다는 것이 김 위원장의 생각이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사회 전반의 구조 개혁을 시작해야 하고 정부 정책에 대한 신뢰 회복과 함께 청년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줄 수 있어야 출산율 회복의 지속가능성을 확보할 수 있다는 것이다.

■ 복합적 요인에 의한 퍼펙트 스톰

김 위원장은 세계적으로 유례없는 낮은 출산율이 갑자기 나온 것이 아니라고 했다. 저출생에는 사회·경제적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는데 우리의 사회·경제적 지표가 유례없는 수준이라는 의미다. 그 요인들은 독립적이지 않고 복합적으로 결합해 ‘퍼펙트 스톰’으로 이어진 결과가 지금의 초저출생 현상이라는 설명이다. 청년들의 높은 경제적 불안과 실업률은 결혼 의지를 꺾었다. 청년층 내에서의 IT 종사자와 플랫폼 노동자로 대별되는 소득 격차 확대도 부정적 시그널이다. 높은 사교육비에 입시 위주의 일극화된 교육 경쟁, 끊어진 주거 사다리도 출산을 막는 최악의 환경들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최고 수준의 남녀 임금격차와 긴 노동 시간, 일과 가정이 양립하기 어려운 노동 환경에서 아이를 낳아 키우는 게 기적이다.

수도권 집중과 초저출생은 동의어

선진국에 진입하면 혼인이 줄고 혼인 연령은 높아져 출산율 감소로 이어지는 게 추세다. 그럼에도 출산율이 OECD 국가 중에서도 기록적으로 낮은 것은 수도권 집중이라는 한국적 특수성에 기인한다는 데 김 위원장도 전적으로 동의했다. 우리의 출산율 감소가 ‘고밀도 수도권, 저밀도 지방’이라는 공간적 격차에서 비롯된 사회 이동형 출산 감소라는 특성을 갖는다는 것이다. 갈수록 수도권 인구 집중이 심화하는 상황에서 상대적으로 청년층의 수도권 쏠림이 더했다. 2015년부터 4차산업 기술 기반의 첨단산업이 수도권에 집중되면서 청년의 수도권 이동은 더 가속화하고 있다. 201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1명대에서 등락하던 합계출산율이 2015년을 기점으로 추세적으로 하락하기 시작해 0명대에서 추락을 지속한 것과 무관하지 않다.

■ 18년간 380조 원 쏟아부었지만

김 위원장이 가장 많이 받았던 질문이 그 많은 예산을 쏟았는데 출산율이 떨어진 이유가 뭐냐는 것이었다고 한다. 2005년 위원회 출범 후 2006년 2조 1000억이던 예산이 2022년 51조 7000억 원으로 25배 급증했는데 합계출산율은 1.13에서 0.78명으로 거꾸러졌다. 명백한 정부 정책의 실패, 정치의 실패, 공동체의 실패다. 김 위원장은 18년간 380조 원을 썼다고 하는데 제대로 된 예산 집행이었는지 따져 봐야 한다고 했다. 천문학적 예산이라고 하지만 관련성과 효과가 낮은 정책 예산이 상당수 포함됐다. 아동가족을 지원하는 실질적 예산은 정체됐고 GDP 대비 아동가족 지출 비중은 OECD 최하위라는 것이다. 김 위원장은 취임 후 저출생 정책을 전면 재검토해 재구조화하고 선택과 집중하는 일부터 시작했다. 과학적 근거에 기반한 체감도 높은 인구 정책 추진을 위해 인구정책평가센터를 설치하고 위원회 산하에 인구정책기획단도 만들었다.

■ 출산 정책에 한방은 없다

‘백약이 무효’ 아니냐며 회의감으로 운을 떼자, 우리 사회가 제대로 된 출산 정책을 해 봤느냐고 반문한다. 아이들 미래가 달려 있는데 손 놓고 있을 수만은 없지 않으냐는 것이다. 2023년에 부산에서 태어난 아이가 고작 1만 2900명에 불과한데 이 지경이면 지자체에서 출산 가정을 대상으로 전수조사라도 해 볼 수 있는 수준이다. 정책을 평가해 실질적이고 효과적인 것부터 제대로 해야 한다. 위원회의 출산 인식 조사 결과 먼저 필요한 게 청년 고용 불안 완화와 일·가정 양립으로 나왔다. 당장 청년들에게 체감도 높은 정책에 대한 선택과 집중으로 재정을 과감하게 쏟아부어야 한다는 게 김 위원장의 생각이다.

이와 동시에 우리 사회의 보다 근본적 구조 개혁부터 시작하고 지속적이고 일관되게 추진해야 한다. 말뿐인 균형발전과 지방시대가 아니라 진정한 변화를 불러오기 위해서는 지역에 대한 과감한 경제력 배분을 통한 지역 재편성이 이뤄져야 한다. 균형발전을 외치면서 수도권 GTX 노선을 확대하는 이율배반적 정책 방향으로는 효과를 거두기 어렵다. 저출생대응기획부(가칭)가 아동 돌봄 등 핵심 정책의 통합적 추진에는 긍정적 작용을 하겠지만 궁극적으로는 국가 차원의 총체적 인구 전략 수립과 거버넌스 변화가 필요하다. 그러려면 현재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위원장인 대통령의 역할이 제일 중요하다. 효과적이고 지속가능한 정책 추진의 결정적 동력이 대통령 의지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 아이 없이, 지역 없이 행복할까

“1억 원을 지급하면, 집 한 채를 주면, 1인당 기본소득 25만 원을 주면 애를 낳겠습니까. 출산 정책에 ‘한방’은 없습니다. 지난한 대화와 타협의 과정을 통해 사회적 합의를 만들어야 합니다. 작은 개혁들이 점진적 변화를 만들고 사회 전반의 큰 물줄기가 되도록 해야 합니다.” 김 위원장은 ‘아이가 없어도 괜찮은지, AI(인공지능)로 대체하면 되는 건지, 지역이 없어도 되는지’라는 근본적 물음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했다. 단지 출산율 숫자가 아니라 어떻게 하면 가족과 함께, 아이와 함께 행복할 수 있을까 하는 고민에서부터 다시 출발해야 한다는 것이다. 사회적으로 확산되고 있는 출산과 육아에 대한 공포를 행복한 고민으로 전환하는 일이 하루아침에 이룰 수 있는 게 아니지 않느냐는 반문이었다.


강윤경 논설위원 kyk93@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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