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승일의 곰곰 생각] 연금·핵폐기물 '폭탄 돌리기' 끝내야
논설위원
국민연금 '더 내고 더 받기' 고갈 불가피
부당성 느낀 젊은 세대 신·구 분리 요구
세대 간 연대·사회적 대타협 구조 필요
원전 내 보관 사용후핵연료 포화 임박
고준위 폐기장 기약 없어 영구화 우려
영구 저장소 추진·지역민 동의 필수적
지금 한국은 언제 터져도 이상하지 않을 시한폭탄에 둘러싸인 위험 사회로 가고 있다. 인구와 기후 폭탄은 오래된 미래다. 제도적으로 볼 때 국민연금 고갈과 사용후핵연료(고준위폐기물) 포화는 미래 세대에 물려줘선 안 되는 가공할 폭탄이다. 이 둘은 현세대가 온갖 혜택을 다 누려 놓고 후손에 뒤치다꺼리를 전가하는 식으로 흘러가고 있다는 게 공통점이다.
국민연금은 2040년부터 적자가 누적되다가 2055년께 고갈된다. 국회 연금개혁특위 공론화위원회가 시민대표단 설문 끝에 ‘더 내고 더 받자’는 개선안을 냈지만 즉각 반론에 휩싸였다. 보험료율(소득 대비 납부액 비율)을 9%에서 13%로 올리되 소득대체율(소득 대비 수령액 비율)을 40%에서 50%로 상향하는 안이다. 여야 협상으로 보험료율은 13%에 근접했으나 소득대체율은 더불어민주당 45%, 국민의힘 44%로 맞서면서 합의는 무산됐다.
연금 개혁 논쟁을 복기하면 겉으로는 여당의 ‘재정 안정’과 야당의 ‘소득 보장’의 대립 구도로 비치지만 어느 쪽이나 기금 고갈 이후 미래 세대 등골 빼먹기 수순은 오십보백보다. 여야가 소득대체율 44.5%로 타협해도 해결은 요원하다. 2063~2064년 기금 고갈은 피할 수 없어서다.
인구 구조를 보면 현세대가 미래 세대에 폭탄을 던지는 실상이 단적으로 드러난다. 1970년대까지는 한해 출생아 100만 명이 유지됐지만 지난해 23만 명으로 4분의 1토막 이하로 떨어졌다. 2023년 출생자가 왕성하게 경제 활동을 하게 될 2060년 이후에는 소득의 30% 이상을 부모 세대의 국민·노령연금으로 충당해야 한다. 소수가 다수를 부양하는 체제다. 지속 가능하지 않을뿐더러, 세대 간 갈등이 폭발할 게 뻔하다. 오죽했으면 젊은 층에서 구연금·신연금 완전 분리 주장이 나오겠는가.
국민연금 재정의 난맥은 ‘덜 내고 더 받는’ 구조에 기인한다. 기존 보험료율 9%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18.2%의 절반에 그친다. 산업화 세대는 적게 내고 많이 받는 혜택을 받았다. ‘더 내고 더 받는’ 방식이 기득권 유지를 위한 개악이라는 비판을 받는 이유다.
해결책은 덧셈, 뺄셈의 영역이다. ‘더 내고 덜 받는’ 방법 아니면 적자를 탈피할 수 없다. 기존 세대가 보험료를 더 부담해서 기금 재정을 안정화 추세로 반전시키고 미래 세대의 짐을 덜어주는 방안이 있다. 세대 간 연대, 사회적 대타협의 길이다. 그렇지 않으면 젊은 세대가 요구하는 구연금·신연금 분리를 거부할 명분이 없다. 부모의 부채를 상속하지 않겠다는 자녀의 선택을 탓할 수 없는 이치다.
사용후핵연료는 정부의 신뢰 실추 탓에 꼬여 있다. 국내에는 1만 년 이상 식지 않고 고열과 방사능을 뿜어 내는 사용후핵연료를 영구히, 안전하게 보관할 곳이 없다. 핵폐기물은 원전 부지 내에 쌓인 채 포화를 기다리고 있다. 그러니 영구처분장을 짓자는 데 이견이 없지만 기존 원전 내 임시 저장소 추진에 물음표가 붙어 있다.
고준위 특별법은 원전 부지 내에 건식 저장 시설을 지어 사용후핵연료를 보관할 수 있게 했다. 그런데 임시 저장의 기한이 분명치 않았다. 이에 대해 원전 인근 주민과 환경단체는 영구처분장이 기약이 없는 상황에서 원전 부지가 자칫 영구처분장이 될 수 있다고 의심한다. 수도권에서 사용하는 전력을 생산하는 지역의 원전이 주민 동의 절차도 생략된 채 자칫 핵폐기장이 될 수도 있으니 선뜻 받아들이기 힘든 것이다. 서울 언론에서 ‘고준위 특별법은 민생’ 운운하며 21대 국회 막바지 통과를 재촉하는 주장을 펴고 있으나 이는 핵폐기물이 보관될 지역 정서를 외면한 것이다.
1978년 고리원전 1호기 가동 이래 46년이 흐르는 동안 정부는 고준위폐기물 영구처분장을 마련하지 않는 직무유기를 저질렀다. 지금 시작해도 37년 이상 걸린다. 늦어도 너무 늦었다. 우리 세대는 이미 후손들에게 폭탄을 던진 셈이다. 정부는 지금이라도 신규 원전이나 사용 연장을 논의하기 전에 영구처분장 계획을 분명히 밝히고 추진에 나서는 한편 원전 내 임시 시설에 대한 지역민 동의를 얻는 게 순리다.
연금 고갈과 핵폐기물 포화로 인한 부담은 이미 상당 부분 미래 세대에 떠넘겨지고 있다. 정권이 바뀌어도 꾸준히 진행됐어야 할 국정 과제가 땜질이나 조삼모사, 눈치보기로 일관된 탓이다. 이제 공은 3년 차 윤석열 정부와 22대 국회로 넘어간다. 정치의 실패가 반복되면 미래 세대에 더 많은 빚을 떠넘기게 될 것이다. 후손에 폭탄 돌리는 짓은 당장 멈춰야 한다.
김승일 논설위원 dojune@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