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건수의 지금 여기] 겸손과 반성 vs 아집과 교만
논설위원
일주일 앞으로 다가온 4·10 총선
민생이 실종된 최악의 선거 개탄
윤 대통령의 소통 없는 국정 운영
최근 판세 급변에 큰 원인 제공
야당의 반사이익도 개운치는 않아
오만 대신 겸허, 국민 마음 얻는 길
쉬이 제 몸을 드러내지 않는 봄이다. 터지지 않는 꽃망울, 그 망설임의 연유를 한낱 인간이 알 길은 없다. 꽃 축제를 연기해야 한다는 전갈, 그래서 전국의 지자체들이 골머리를 앓는다는 뉴스가 봄소식을 앞지를 뿐이다. 무슨 까닭이 있을 것이다. 봄의 더딘 걸음은 어쩌면 인간의 조급함을 시험하기 위한 건 아닐까. 지긋이 기다리면 될 일, 어찌 그리 안절부절못하느냐는 대자연의 귀띔 아닐까.
조급과 미숙의 난장으로 치자면, 지금의 대한민국 총선 현장만 한 곳을 찾기 힘들다. 선거가 불과 일주일 앞인데, 제대로 된 정책 경쟁은 실종 상태다. 대신 무분별한 선심성 공약과 허술하고 어설픈 정책, 상대를 낮추보는 막말·욕설이 난무한다. 실력으로 딱히 내세울 게 없으니 네거티브로 반사이익을 취하겠다는 혐의가 짙다. 민생을 말하지 않는 역대 최악의 공허한 선거라는 진단까지 나오는 마당이다.
이번 총선 구도는 ‘정권 심판론’과 ‘정권 지지론’의 대결이라고 한다. 불과 한 달 전만 해도, 총선 판도는 야권의 대체적인 열세로 분석됐다. 앞서 친명(친이재명계) 위주로 이뤄진 더불어민주당의 공천 부조리가 국민들의 공분을 부른 터였다. 그런데 분위기가 순식간에 바뀌었다. 그 짧은 시간 야당이 특별히 잘한 게 없는데도 야권의 상당한 우세로 판도가 기울었다. 여기에는 부산·경남의 요동치는 민심도 포함된다. 대체 어찌 된 영문인가.
그 원인을 윤석열 대통령의 고집스러운 국정운영에서 찾는 사람이 많다. 이른바 ‘이종섭·황상무 논란’이 대표적이다. 특히 이종섭 호주대사 사태는 모든 게 의문투성이다. 피의자 신분, 출국금지 상태에서 임명돼 논란을 빚은 지 25일이나 흐른 뒤에야 사퇴가 결정됐다. 잘못 끼운 첫 단추를 서둘러 바로잡지 않고 고집을 부리다 수렁에 빠진 케이스다. 국민 눈높이에서 한참을 벗어난 ‘측근 감싸기’였음은 물론이다.
돌아보면 유사한 사례가 한둘이 아니었다. 김건희 여사 명품 가방 의혹, 연구·개발(R&D) 예산 삭감과 ‘입틀막’ 사건, 채모 상병 사망 수사 외압 의혹, 최근의 의·정 갈등까지. 한때는 지지율에 연연하지 않는 대통령의 모습이 우직, 대범, 뚝심으로 비치기도 했다. 지금은 독선과 불통의 산물이라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최근의 의료 사태를 대하는 태도도 그렇다. 미리 정답을 정해놓고 밀어붙이니 반발을 부를 수밖에 없다. 방향이 틀렸다는 게 아니다. 섬세한 디테일과 유연한 리더십으로 뜻한 바를 이룰 수 있는 정치적 조정 능력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대파 한 단 값 875원’은 24차례의 민생토론회가 얼마나 허망한 자리였는지 여실히 보여준 사건이다. 정치 지도자라면 보다 많은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조언 듣기를 마다하지 않아야 한다. 이를 외면하는 것을 오만이라 한다.
대통령의 행보를 제어해 바른길로 이끌지 못한 집권여당도 문제다. 줄곧 논란이 됐던 당정 관계의 회복이 성공한 것 같지도 않고, 선거 국면에서의 리더십도 별 성과를 내지 못하는 듯하다. 게다가 선거가 막판으로 치닫자 흠집내기식 막말이 늘어나는 형국이다. “쓰레기” “개 같은”을 내뱉는 한동훈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의 험한 입은 자충수에 가깝다. 조급함 속에서는 좋은 정책이 나오기도 힘들다. 그래서인지 공약 중에는 재원 마련 방안이 없거나 세수 펑크가 우려되는 것들이 많다. 선심성 포퓰리즘 공약으로 표심을 노리는 건 유권자에 대한 기만이다.
그렇다면 야당은 잘해서 지지율 반전의 덕을 본 걸까. 결코 그렇지 않다. 대통령과 여당의 헛발질이 심하다 보니 나라의 장래를 걱정한 국민들의 어쩔 수 없는 선택지가 됐다는 분석이 중론을 이룬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언설과 행동은 이미 교만의 온상, 막말의 발원지라는 비판을 받은 지 오래다. ‘대장동 재판’이나 ‘비명횡사’ 공천 등 당 안팎의 첨예한 사안에 대해 개인 혹은 당 대표로서 이렇다 할 반성과 사과의 메시지를 내놓은 적이 없다. ‘2찍’이나 ‘강원도 폄하’ 발언은 특히 실망스럽다. 지역감정 타파는 민주당 정체성의 뿌리를 이루는 상징과도 같다. 국민과 특정 지역을 우습게 보는 태도는 절대 용납될 수 없다.
민심 이반은 그 어떤 특별하고 거대한 사안 때문에 일어나는 게 아니다. 사람 마음 밑바닥의 이런 오만과 불손에서 비롯한다. 대통령이든 여당 대표든 야당 대표든 지금까지 ‘미안하다’거나 ‘반성한다’고 진심 어린 말을 하는 걸 보지 못했다. 국민으로부터 위임받은 권한을 낮은 자세로 민의에 따라 받들어 수행하는 것. 여기에 국민의 마음을 얻는 길이 있다. 이번 총선 구도는 ‘정권 심판’ 대 ‘정권 지지’라기보다는 ‘겸손·반성’ 대 ‘아집·교만’으로 보는 게 옳다. 최종 판세는 언제든 뒤집힐 수 있다.
김건수 논설위원 kswoo333@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