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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화의 크로노토프] 창의성은 관객을 부른다
어느 나라든 음악은 일상생활뿐만 아니라 사회적·정치적 메시지를 전달하는 도구로써 사용되었으며, 역사와 문화를 반영하며 변화했다. 음악은 인간의 본연이다. 최초의 한자 사전으로 꼽히는 〈설문해자〉에서 ‘음은 소리인데 마음에서 생겨난다’고 했다. 그 음을 조화롭고 아름답게 만드는 것이 음악이다. 그래서 전쟁과 같은 인간성 말살의 시기에도, 노예로 끌려갔던 비참한 시기에도 사람들은 음악을 멈추지 않았다. 오히려 그런 시기를 견뎌내며 인간의 삶과 고뇌를 음악에 담았고, 인간의 사고를 더 풍요롭게 하며 삶의 본질을 더 아름답게 만들었다.
음악은 문화와 마찬가지로 물 흐르듯이 흘러 다닌다. K클래식은 예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국제적 위상이 높아졌다. 스타 연주자들의 공연을 보기 위해 ‘피케팅’(피를 튀기는 티케팅)을 한다는 말이 생겨났을 정도로 예매가 쉽지 않다. 그러나 이런 몇몇 인기 있는 공연을 제외하고는 여전히 객석을 채우기가 쉽지 않다. 이 시대 살아있는 베토벤 피아노 음악의 대가로 불리는 피아니스트 루돌프 부흐빈더와 스위스 루체른 페스티벌 스트링스의 부산 공연(6월 29일)도 객석의 반을 조금 넘긴 정도였으니 말이다.
2026년 부산 오페라하우스 개관 예정
클래식 분야는 전용 극장의 역할 막중
숨은 인재들 모아 획기적 공연 준비를
클래식 음악은 음반을 사용해서 듣던 시기를 넘어, 소셜미디어 같은 온라인 플랫폼을 통해서 마음만 먹으면 실시간으로 즐길 수 있는 세상이 되었다. 그러나 공연장에서 직접 감상하는 클래식 음악은 여전히 고급 취향의 대명사처럼 멀게만 느껴진다. 정부가 발표한 ‘2023년 국민문화예술활동조사’에서 가장 많이 즐기는 문화생활 장르는 영화로 52.4%였고 서양 음악(클래식)은 1.9%에 그쳤다. 클래식 음악 티켓 판매액 비중은 서울이 73.7%, 대구 6.8%, 부산 6.5%, 인천 5.1%, 대전 2.8%, 울산 1.2%였다. 음악 소비도 어김없이 서울에 집중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관객은 여전히 소수이지만 지역 클래식 전용 극장들의 개관은 초읽기에 들어갔다.
2016년에 시작된 ‘부산오페라위크’는 부산 지역의 오페라 축제다. 2026년 예정된 부산 오페라하우스 개관에 앞서 시민들에게 오페라의 매력을 알리려고 만들었다. 2022년부터 오페라 자체 제작 역량을 강화하기 위해 ‘부산오페라시즌’이라는 이름으로 탈바꿈했다. 부산시는 오페라 전문 관련 청년 일자리와 무대 경험을 동시에 제공한다는 취지로 매년 오디션을 통해 ‘오페라시즌 오케스트라·합창단’을 공모했다.
‘2024 부산오페라시즌’에서는 오페라 ‘나비부인’과 ‘사랑의 묘약’을 무대에 올렸다. 여느 해보다 깊어진 관심으로 극장이 가득 찼다. 특히 금정문화회관의 ‘사랑의 묘약’은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연출이 돋보였다. 작품의 내용을 해치지 않는 범위에서 위트 넘치는 자막과 가수들의 적절한 연기도 재미를 더했다. 게다가 경성대학교 패션디자인학과 학생 26명이 합창단 의상을 만드는 협업은 새로운 일자리에 대한 방법 모색과 오페라 관심의 증폭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는 시도라 돋보였다. 무엇보다도 마지막 날 공연에서 ‘2024 부산오페라시즌 합창단’은 첫 공연 때보다 훨씬 자유롭고 편안하게 무대를 즐기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20세기의 가장 상징적인 예술 작품으로 평가받는 오페라는 미국 현대음악 작곡가 필립 글래스의 ‘해변의 아인슈타인’이다. 1976년 프랑스 아비뇽 페스티벌 초연 당시 전통의 규칙을 벗어던진 새로운 구성과 로버트 윌슨의 혁신적 연출이 화제였다. 이후에 국제 투어를 위해 재구성되었고, 2012년 프랑스 몽펠리에의 르 코룸 오페라 베를리오즈 극장에서 시작해 2015년 한국의 광주 국립아시아문화전당에서 마무리되었다. 잘 팔리는 공연 상품이 된 것이다. 미술비평가 존 록펠러는 〈뉴욕타임스〉에서 ‘보고 또 보고 음미해야 하는, 평생 소중히 간직해야 할 경험’이라 격찬했다.
하늘 아래 완전히 새로운 것은 없다. 공연 예술도 마찬가지다. 이때 극장이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역할은 공연을 고르는 기획력과 창의력, 즉 상상력이다. 상상력이란 앉은 자리나 직위 때문에 저절로 만들어지거나 길러지는 것이 아니다. 오랫동안 끊임없이 공부한 사람의 직접적인 경험으로 예술적 안목이 만들어지고, 거기에 상상력이 더해져야 공연 예술이 살아난다.
상상력은 세상의 모든 것을 끌어안는다. 아인슈타인의 말처럼 상상력은 지식보다 중요하다. 그러나 그가 말한 진정한 상상력은 튼튼한 지식의 기초를 토대로 나오는 것이다. 단지 상상력만 있다면 그것은 우연한 일과성에 머무르고 만다. 새로 생기는 부산의 클래식 전용 극장에는 안목과 전문성을 겸비하고 상상력 가득한 이들로 채워지길 기대한다. ‘인생도처유상수’(人生到處有上手)라 하지 않던가. 곳곳에 숨은 고수들은 많다. 창의적인 상상력은 수많은 문화 소비자를 공연장으로 부르는 원동력이다.
2024-10-10 [17: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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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재파의 생각+] 글로컬 시대의 부산 지역어 보전
며칠 있으면 한글날이다. 어버이날에 평소 표현하지 못했던 사랑과 고마운 마음을 부모님께 전하는 것처럼 한글날이 다가오면 우리말과 글의 소중함을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된다.
최근 한국 영화와 드라마, 음악 등 한국 문화가 전 세계 사람들에게 사랑받으면서 한국어를 배우는 외국인이 많이 증가했다. 그런데 정작 우리나라 사람들은 우리말을 소홀히 대하고 있으니 깊이 반성할 일이다. 특히 2022년 ‘영어 상용도시’ 논란에 이어 올해에는 법정동 명칭에 외국어를 포함한 ‘에코델타동’ 사태까지 벌어져 우리말을 지키는 데 앞장서야 할 부산시가 오히려 우리말을 홀대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를 낳고 있다. 항간의 우려를 불식하기 위해서라도 시는 국어 사용 조례에서 정한 우리말 및 지역어의 보전과 육성을 위한 책무를 다해야 할 것이다.
시는 특히 지역어 보전과 육성에 역량을 집중해야 한다. 왜냐하면 부산의 지역어, 즉 부산말은 예로부터 전해져 오는 다양한 부산의 문화와 역사 그리고 부산만의 정서가 한데 모인 문화의 총체, 곧 부산의 정체성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시에서도 지역어 보전과 육성을 위한 다양한 사업을 추진해 오고 있다. 우선 지역어 실태 조사 사업의 결과를 바탕으로 부산말 사전 편찬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그러나 한 언론 보도에 따르면 한정된 예산으로 인해 약 2500단어 정도의 소규모 사전으로 편찬된다고 한다. 제주도의 경우 10억 원 이상을 투입하여 〈제주어대사전〉을 만들고 있는 상황과 비교하면 아쉬움이 드는 대목이다.
사전의 규모도 문제이지만 지역어 보전 사업의 방향성도 시대의 흐름에 맞게 달리 설정할 필요가 있다. 현대 사회는 디지털 사회이기 때문에 ‘종이’ 사전에서 벗어나 지역어 자료를 ‘디지털’로 제공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디지털의 장점인 대중의 접근성을 높이면서 종이 사전에 담지 못하는 음성과 영상, 다양한 이미지 자료도 함께 제공할 수 있다. 즉, 종이에서 디지털로의 전환은 사전에서 아카이브로의 전환을 의미한다.
지역어 아카이브는 매년 부산의 문화를 대표하는 주제를 정해 관련 지역어 및 문화를 취재·조사하여 구축할 수 있다. 가령 ‘기장의 미역업’, ‘부산의 해녀’와 같이 주제를 정한 후 해당 지역 사람들과 면담을 통하여 주제 관련 지역어를 수집·정리한다. 그리고 동시에 사라져 가는 문화를 영상과 사진 자료로 기록하는 것이다. 이처럼 주제에 따라 통합된 일련의 지역어 자료들은 그 자체로 하나의 부산학이자 문화콘텐츠가 될 수 있다.
한편 부산시는 외국인의 정주 여건을 개선하기 위해 70억 원 이상의 예산을 투입해 ‘영어하기 편한 도시’ 사업을 추진 중이다. 글로벌 허브도시로 나가기 위해서는 외국인이 부산에 정주하는 데 어려움이 없어야 하는데, 의사소통이 가장 걸림돌이 되니 시민들의 영어 실력을 높여 외국인들의 생활 여건을 편리하게 만들겠다는 계획인 것이다.
과연 이러한 목표는 실현 가능한 것일까. 외국인이 부산에 자리를 잡고 산다면 부산 시민이 영어를 배우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한국어, 부산 지역어를 배워야 한다. 정주한 곳에서 그 지역어로 소통할 때 비로소 서로 동등한 사회의 구성원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는 일본어 교육을 강화해 외국인의 조기 정주를 도운 후쿠오카를 글로벌 허브도시의 본보기로 삼는 것과 같은 맥락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시는 유학생, 외국인 노동자, 결혼이민자와 그 자녀 등 특성에 따라 외국어로서의 한국어 교육을 지금보다 더 확대해야 한다. 특히 학습자의 학습 목적과 배경에 따른 수준별 맞춤 교육이 될 수 있도록 섬세하게 교육과정을 운영하고, 외국인을 위한 부산 지역어 교재를 만들어 상황에 맞게 활용한다면 외국인의 부산 정주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또 비즈니스, 관광 등 단기간 부산을 찾는 외국인을 위해 인공지능 기반 부산 지역어 통·번역 앱을 만들어 제공할 수도 있다. 현재 많은 통·번역 앱이 있지만 부산 지역어를 인식하는 데 심각한 오류가 보인다. 따라서 부산 지역어를 대규모로 수집해 인공지능 학습이 가능하게 가공한 후 이를 기반으로 부산 지역어 특화 인공지능 통·번역 앱을 만든다면 정확도와 실제 활용도 향상이라는 두 효과를 함께 누릴 수 있다.
과거 우리는 세계화만을 강조하느라 우리말과 지역어를 소홀히 대했다. 그러나 지금은 세계의 지역화, 지역의 세계화가 함께 강조되는 글로컬(glocal) 시대다. 우리말과 지역어를 잘 보전하고 육성하는 것이 곧 글로벌 허브도시로 가기 위한 첫걸음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2024-10-03 [1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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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훈의 생각의 빛] 이 시대의 '막걸리 긴급조치'
요즘 “반국가 세력”이란 말이 심심찮게 들린다. 이 말이 가리키는 사람은 상당히 위험한 세력이다. 그야말로 국가에 반(反)하는 의식으로 언제라도 나라를 혼란에 빠지게 할 우려가 상존하는 이들이다. 쉽게 말해 ‘간첩’이나 ‘이적 행위’를 떠올리면 된다. 4차 산업혁명 시대니, 기후 위기니, AI(인공지능)니 하면서 전 세계인들이 서로 머리를 맞대 인류에게 닥친 문제를 슬기롭게 해결할 방안을 찾기에도 모자랄 판국인 오늘날,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처럼 들리기도 한다. 정신을 다시 차리고 생각해 본다. 정말 반국가 세력이 존재할까? 존재한다면 이들은 지금 어떤 생각과 행동으로 이 나라를 어지럽히고 혼란을 빠뜨리게 하는가?
최근 들어 대통령의 입에서 갑자기 나오기 시작한 ‘반국가 세력’은 사실 한국이 일제 강점기에서 해방되던 무렵부터 6·25 전쟁을 거쳐 박정희 유신 정권까지 겪어야 했던 극심한 좌우 대립의 소산이다. 이념과 사상이란 이름으로 동족을 가두고 죽여야 했던 비극의 한국 현대사를 절로 떠올리게 하는 말이 바로 반국가 세력이다. 실제로 한국전쟁과 여수·순천 사건 및 제주 4·3 항쟁 등의 슬픈 역사는 서로를 반국가 세력으로 규정짓고 단죄하려 했던 집단 간의 목숨을 건 싸움으로 얼룩졌다. 이 과정에서 수많은 국민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이념과 사상 때문에 이데올로기의 희생양이 되어 죽어나갔다.
이루 헤아릴 수도 없이 많은 사람의 목숨을 빼앗고서도 여전히 반국가 세력이란 이름은 우리 무의식 깊숙이 사라지지 않고 남아 있다. 마치 유전병처럼 멀쩡하다가도 잊을 만하면 존재를 드러내는 그것의 실체가 무엇인지 묻기도 따지기도 전에, 권력의 최상부에서 제시되었다는 이유로 낙인을 찍으려고 혈안이 된 정국을 지켜보면서 어안이 벙벙해지지 않을 수 없다. 근래 최저 수준의 지지율을 기록한 대통령과 정부 내각의 역사 인식에 대한 비판이 여기저기 사방에서 흘러나오던 참에 절묘하게도 반국가 세력은 호출되었다.
그렇다면 우리는 반국가 세력이 누구이며, 어디에 암약해서 어떤 말과 행동으로 사회를 어지럽히는지 찾아야 한다. 하지만 주위를 둘러보면 간첩처럼 이적 행위를 하려고 눈을 부라리거나(혹은 아무도 눈치 못 채게 눈을 내리깔거나) 선량한 시민을 선동해서 국가를 전복하려는 낌새를 보이는 자를 눈 씻고 찾아봐도 찾을 수가 없으니 답답할 노릇이다. 고개를 돌리니 한숨 섞인 푸념만이 들린다. 앞을 봐도 뒤를 봐도 옆을 봐도, 우리 주변의 사람들은 늘 그래왔던 것처럼 하루 먹고 살아가는 데 족하거나, 하루라도 버텨보려고 안간힘을 쓰거나, 남들만큼이라도 살아보려고 정신이 없다.
그러니 반국가 세력이란 게 우리 눈에는 보이지 않는 곳에 숨어 있다는 말이 된다. 하지만 눈 뜨고 찾으려야 찾기 요원한 그 세력은 잊을 만하면 나타나게 되어 있다. 우리는 역사를 배우고 익히고 생각하는 중에 간악한 반국가 세력이 누구인지 절로 안다. 경남 마산에서 활동하는 우무석 시인의 ‘70년대-막걸리 긴급조치’라는 시에 이런 구절이 나온다. ‘터진 입이라고 함부로 말하지 마라/ 심사 틀려 막걸리 한 사발 들이켜도/ 술 취해 집에 가는 택시 안에서도/ 박통과 긴조 시대에 대해/ 꽥꽥 오리울음 같은 객기 내뱉지 마라/…/ 그랬으므로 말하는 것 자체가/ 되레 운동이었던/ 코미디의 시대였으니.’(시집 〈10월의 구름들〉)
다가오는 10월 16일은 이곳 부산과 마산에서 박정희 유신 독재의 반민주주의적이고 반인권적인 통치 체제에 맞서 시민과 학생들이 유신헌법 철폐와 독재 타도를 외친 날이다. 부산에는 계엄령, 마산에는 위수령이 내려져 수많은 사람이 경찰에 잡혀가서 고초를 겪었다. 걸핏하면 ‘긴급조치 9호 위반’ 명목으로 무고한 사람을 반국가 세력으로 낙인찍었던 이 사건은 훗날 ‘부마민주항쟁’이라는 이름으로 명명되어 4·19 혁명, 5·18 광주민주화운동, 6·10 민주항쟁과 함께 4대 민주화운동으로 정립되었으며 2019년에 국가기념일로 지정되었다.
부마민주항쟁 45돌을 맞는 이즈음에 다시 듣게 되는 반국가 세력을 생각한다. 당시 항쟁의 와중에 마산경찰서장은 기자회견을 열어 사제 총기가 발견되었고 시위는 불순 세력이 음모한 폭동이었다고 발표했지만, 조작임이 밝혀졌다. 4·19 혁명을 촉발한 마산 3·15 의거 당시에도 이승만 정권은 시위 배후에 공산당이 있다고 발표했다. 지금 횡행하는 “반국가 세력”은 마산 3·15 의거와 부마민주항쟁에 참여한 시민들이었다. 결국 정권의 시각에서 만들어진 말이었던 것이다. 역사적인 두 시위로 이승만·박정희 정권은 막을 내렸고, 잠시나마 민주주의의 봄볕이 찾아왔다. 그 역사를 우리는 똑똑히 알고 있다.
2024-09-26 [1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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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학수의 문화풍경] 호기심이 사라지는 나라, 대한민국
“왜 선배님은 수학을 연구하십니까?” 미국 대학의 수학과 교수가 출신 고등학교를 방문하여 후배 학생들과 대화를 나누던 중 이런 질문을 받았다. “호기심 때문이지.” 일초의 망설임도 없이 선배는 짤막하게 그리고 단호하게 응답했다. 당시 2학년이던 필자를 포함하여 학생들은 깜짝 놀랐다. “수학 공부를 통하여 사회를 좀 더 나은 곳으로 만들기 위해서” 또는 “학술적 업적을 성취하여 한국인의 위상을 세계에 드높이기 위해서” 같은 거창한 말을 우리는 예상했던 것이다.
호기심은 순수한 탐구 열정이다. 순수하다는 말은 실용적 목적이 전혀 없다는 뜻이다. 반면 배를 만들기 위해서, 전력을 더 많이 생산하기 위해서, 우울증을 치료하기 위해서 연구하는 것은 실용적 탐구이다. 이 경우 탐구의 동력은 현실 세계의 문제 해결 같은 실용성이지 호기심은 아니다. 그냥 알고 싶은 호기심에서 출발하는 순수 탐구는 현실에 얽매이지 않으므로 철저하게 근원을 향해 질문한다. 필자는 어린 시절을 시골에서 보냈는데, 동네 앞에 펼쳐진 넓은 들판을 지나 저 멀리 산맥을 넘으면 무엇이 있을까 궁금했다. 주위 어른에게 산을 넘어도 들판이 있다는 답을 듣지만, 아이는 그것을 넘어가면 또 무엇이 있는지 물었다. 마침내 아이에게는 “쓸데없는 소리 그만하라”는 핀잔이 돌아온다.
인간은 쓸데없는 것이라도 묻고 싶은 존재이다. 아리스토텔레스의 〈형이상학〉 제1권은 “원래 모든 사람은 알고 싶어 한다”는 문장으로 시작한다. 여기서 ‘안다(eidenai)’는 말은 아이의 호기심처럼 실용적 고려 없이 무언가를 탐구한다는 의미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의 인식 활동에는 여러 단계가 있다고 생각한다. 가장 낮은 단계는 경험이며, 그 위 단계는 신발이나 국가를 만들고 운용할 줄 아는 기술적 인식과 인생을 잘 영위하기 위한 삶의 지혜이며, 가장 높은 단계는 호기심에서 일어나는 순수 탐구이다. 이 최고 단계의 인식을 아리스토텔레스는 ‘소피아(sophia)’라고 불렀는데, 그의 선배들은 ‘필로소피아(philo-sophia)’라고 하였다. 필로소피아는 그리스 말로 ‘최고 인식’을 의미하는 ‘소피아(sophia)’와 ‘사랑하다’를 의미하는 ‘필로스(philos)’의 합성어이다. 필로소피아는 영어로 ‘필로소피(philosophy)’이며, 이것을 일본 학자 니시 아마네(西周)가 1874년 ‘철학(哲學)’이라고 번역하였다. 철학은 순수 탐구에 대한 번역어인 것이다.
필로소피아는 기원전 5세기경 그리스의 탈레스로부터 본격적으로 시작한다. 그는 세계가 원래 무엇으로 되어 있는지 물으면서, 세계의 시초는 물이라고 결론을 내렸다. 이 답변은 틀렸지만 순수하게 그냥 알고 싶어하는 인간의 본성을 발휘했다는 데 의미가 있다. 우주의 시초가 무엇인지 묻는 이런 탐구는 실용성이 없다. 세계의 시초가 물이든, 불이든, 공기이든, 원자이든, 그걸 안다고 해서 당시의 현실 생활은 아무것도 바뀌지 않았을 것이다. 이렇게 필로소피아 즉 철학은 실용성 때문에 일어나지도 않으며 실용성을 고려하지도 않는다.
현대 사회에서는 필로소피아는 사라진 것인가? 아니다. 현대의 순수 과학은 필로소피아의 정신을 가장 잘 구현하고 있다. 물리학, 화학, 생물학 같은 학문은 지구 온난화나 질병의 퇴치 같은 현실적 문제를 해결하려는 동기에서 시작하지 않고, 최초의 근원을 그냥 알고 싶어서 탐구한다. 부산대 물리학과 유인권 교수는 우주의 최초 물질 상태를 연구하는 학자이다. 그는 탈레스의 후계자인 것이다. 유 교수는 자신의 연구가 일상생활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지 기자로부터 질문을 받으면 매우 당혹스럽다고 신문 칼럼에서 밝혔다. 사실 이런 질문은 남자보고 언제 출산할 것이냐고 묻는 것처럼 빗나간 것이다.
탈레스에 대한 일화가 전해 온다. 그는 별을 관찰하면서 걷다가 구덩이에 빠져버렸다. 사람들은 철학자가 천상의 별은 보면서 발 앞에 놓여 있는 것은 보지 못한다면서 그를 조롱하였다. 이 이야기는 주로 철학이 실용성이 없음을 지적할 때 인용되어 왔다. 그러나 헤겔은 〈철학사 강의〉에서 다른 관점으로 일화를 이해한다. “사람들은 철학자를 비웃을 것이나, 그들은 철학자가 대중을 비웃고 있다는 것을 모른다. 대중은 구덩이에 빠질 수 없다. 그들은 더 높은 세계를 보지 못하므로 이미 구덩이에 늘 빠져 있다.” 하늘, 즉 높은 세계는 최고의 진리를 가리킨다. 대중은 그런 것을 탐구하지 않기에 실용성의 구덩이에 빠져 살면서도 본인은 그 점을 모르는 것이다.
지금 한국에서 호기심은 점점 사라지고 있다. 고등학생들은 실용적 학과만 지원하고, 교육 당국도 필로소피아를 학교에서 추방하고 있는 것이다. 실용 연구만으로 인간은 잘 살아가지 못한다. 본성상 인간은 호기심의 존재이기 때문이다.
2024-09-19 [17: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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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동윤의 비욘드 아크] 구덕운동장 재개발에 대한 단상
지난 7일 미국 루이지애나주 레이크찰스의 22층 빌딩 허츠 타워가 폭파됐다. 수리비 2200억 원을 감당하기 힘들어서다. 1983년에 지어진 허츠 타워는 40년간 이 지역 대표적인 마천루로 꼽혔으나 2020년 허리케인의 여파로 심각하게 파손됐고 건물 복구가 되지 않은 상태에서 약 4년간 방치돼 있었다고 한다. 매각은 되지 않고 소유주인 허츠 그룹이 수리비를 감당하지 못해 결국 철거를 결정했다. 건물 폭파 비용만도 93억 원에 달한다는 뉴스를 접하니 남의 나라 일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이미 이상기후는 농산물 가격을 흔들었고, 1년 중 절반이 여름이 될 수도 있다는 기후위기 앞에서 부산이라고 비켜갈 수 있을까.
부산에는 허츠 타워보다 높은 빌딩과 아파트가 즐비하다. 태풍만 와도 비상인데, 해일이나 허리케인이 몰려온다는 상상만으로도 공포스러웠다. 기후위기와 인구절벽 앞에서 도시 부산의 미래는 신중하게 설계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글로벌 허브도시를 지향하는 지금 부산은 가덕신공항 건설, 북항 재개발, 양질의 일자리 부족, 수도권과 교육·문화의 격차로 인한 청년 유출, 거기다 저출생 및 고령화에 따른 인구절벽과 맞물려 늘어나는 빈집 문제도 만만치 않다. 이런 문제들이 하루아침에 생겨난 게 아니듯 한꺼번에 해결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렇기에 중·단기 혹은 장기적인 관점에서 유기적으로 해결할 방향을 모색해야 한다.
부산은 한국전쟁 시기를 거치며 급속하게 팽창한 도시다. 대한민국 재건 당시 교육, 문화, 경제의 주요 동력이었고, 한편으로는 전국의 피란민을 껴안으며 성장했다. 도시 개발 이전에 정착한 피란민들은 마을을 만들었는데, 1970년대 새마을운동으로 주택개량사업이 진행됐다. 그리고 1980년 이후부터 그야말로 우후죽순으로 아파트가 들어서기 시작했다.
1990년대 이후부터 시작된 재개발·재건축과 함께 이룬 아파트 숲은 골목을 없애고 이웃을 단절시켰다. 이 시기 교육, 문화, 산업은 빠른 속도로 수도권으로 이동하고 남은 아파트들은 재건축, 노후 주거지는 재개발 혹은 도시재생으로 결을 달리 했다. 재건축된 아파트는 용적률을 높여 점점 더 높아졌고, 타산이 맞지 않은 노후지역은 도시재생을 진행했음에도 사업이 끝남과 동시에 활력을 잃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고령화가 진행되고 빈집이 늘어나는 마을에 근원적 대책 없이 제한된 예산으로 진행된 도시재생은 정체가 모호해진 상태로 남아있기 마련이다. 어디에 사느냐가 그 사람의 사회적 가치를 규정하듯, 집은 점점 경제적 불평등과 사회적 갈등의 원인이 되고 있다.
얼마 전 국토교통부의 도시재생 혁신지구 공모에서 최종 탈락한 구덕운동장 복합 재개발사업만 해도 그렇다. 구덕운동장은 일제강점기인 1928년에 들어섰다. 1940년 ‘노다이 사건’이라 불리는 항일학생운동도 여기서 벌어졌다. 해방 이후 ‘부산공설운동장’이라고 이름을 정했고, 1985년 사직야구장과 사직실내체육관이 문을 열면서 ‘구덕운동장’으로 명칭을 바꿨다. 구덕운동장은 사직야구장과 부산아시아드주경기장이 들어서기 전까지 부산 지역 스포츠의 메카였다. 부산의 미래유산 목록에도 들어있는, 말 그대로 부산 지역 운동장의 역사 그 자체다.
2023년 12월 구덕운동장 재개발사업 대상지가 국토교통부의 도시재생 혁신지구 후보지로 선정됐다. 공모에서 최종 확정됐다면 부산시는 국비 최대 250억 원과 시비 250억 원을 재원으로 활용하는 도시재생 혁신지구 사업을 추진할 수 있었을 테지만, 결국 무산됐다. 축구 전용구장과 문화·생활체육시설, 상업·업무시설 등을 건립한다는 계획이었으나, 800가구 규모의 고층 아파트 설립 계획이 포함된 사실이 알려지면서 주민들의 반대에 부딪힌 것이다. 주민들은 고층 아파트가 들어서게 되면 아무래도 주변 환경이 공공의 성격보다 사유화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을 우려했다. 만약 구덕운동장 재개발사업 계획에 고층 아파트 대신 지식산업센터를 포함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구덕운동장이 소재한 부산 서구는 주요 대형병원이 모여 있어 의료관광 특구로 지정된 곳이다. 동아대학교병원, 부산대학교병원, 고신대학교복음병원이 있고 메리놀병원도 10분 거리다. 구덕터널만 지나면 지척에 백병원이 있다. 지식산업센터에 특화된 의료 관련 산업을 유치하여 주변 병원들과 연결한다면 서구의 역사성과 장소성에 더한 경제, 산업, 관광 활성화에 도움이 될 것이다. 더불어 원도심 경제 활성화까지 기대해 볼 수 있다.
변화의 시대다. 이런 때일수록 변하지 않는 것은 무엇일까에 대한 생각이 필요하다. 기후위기와 인구절벽을 맞은 지금은 사람들이 모일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고 지역 재생과 활성화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변화는 그 안에서 자연스럽게 일어날 것이다.
2024-09-12 [1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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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정은의 문화 캔버스] 우리의 밤은 당신의 낮보다 아름답다
우리의 밤은 당신의 낮보다 아름답다. 노래 가사처럼 도시의 낮과 밤은 완전히 다른 모습이 되기도 한다. 여기에 문화예술이 더해지면 하늘과 땅 차이가 된다. 밤에 행사를 마련해 성공을 끌어낸 대표적 사례가 바로 ‘문화유산 야행’이다. 고궁, 왕릉 등 고풍스럽고 조용하기만 하던 문화유산들은 특히 한밤에 찬란하게 빛나는 미디어아트가 결합되면서 감동적일 뿐 아니라 최첨단의 가장 젊고 핫한 공간으로 재탄생했다.
사실 많은 사람들이 밤에 모여서 즐기는 문화가 나타나게 된 것은 그 무엇보다 가스등과 전기의 발명과 발전 덕분이다. 1807년 영국 런던에 최초의 가스등이 설치되었고, 이어서 미국 볼티모어(1816년), 프랑스 파리(1820년)에서도 가스 조명이 대중화되었다. 가스 가로등은 사람들의 생활을 완전히 바꾸어 놓았다. 가스등의 등장 이전 사람들은 밤에는 어떤 활동도 하기가 어려웠다. 그러나 가스등이 나타나자 밤에도 공장이 돌아가고 상점이 문을 열었으며 사람들이 모이고 도시의 밤은 활기를 띠게 되었다.
코로나 사태 이후 음주 중심의 회식 문화가 사라지고 그 대신 저녁 시간을 문화예술 향유와 정신적 재충전의 기회로 삼고자 하는 시민들의 욕구가 늘어났다. 그러나 문화예술 기관들의 야간 프로그램 운영은 아직 많이 부족한 것이 현실이다. 서울에서는 일찍부터 미술관, 박물관, 고궁 등의 야간 프로그램 운영을 시작해 이미 많은 시민들과 해외 관광객들이 밤의 문화예술을 즐기고 있지만, 지역에서는 이제 막 새로운 시도들을 하고 있는 중이다. (재)김해문화재단의 경우 올해 (재)김해문화관광재단으로 그 명칭을 바꿔 관광 분야에 힘을 실으면서 야간 문화예술 관광 프로그램에 주력하기 시작했다.
클레이아크 김해미술관도 8월 초 이틀간 ‘밤의 미술관’을 운영했는데 여기에 1200여 명의 관람객들이 다녀갔다. 힙합·팝핀·스트리트 댄스 공연, 성악가의 노래와 함께 전시를 감상할 수 있는 ‘뮤지컬 도슨트’ 프로그램 등으로 오후 9시까지 미술관을 운영한 결과였다. 미디어아트 작품 등으로 구성된 전시는 이렇게 댄스와 같은 퍼포먼스 요소가 더해지면서 관람객들의 뜨거운 반응을 끌어낼 수 있었다.
이번 특별 야간 개장은 여름휴가 기간을 맞아 자연 속 미술관이 연출하는, 낮에는 볼 수 없는 밤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도록 기획되었다. 관람 시간을 오후 9시까지 연장하고 전시관 두 곳을 연결하는 산책로에 은은한 경관조명을 밝혀 예술 속 고즈넉함을 즐기며 소중한 사람들과 달빛 산책의 추억을 쌓을 수 있게 했다. 미술관의 메인 전시관 돔하우스는 투명한 반구형 유리 돔 천장이 아름답기로 유명한데 오후 6시에 문을 닫는 평소엔 천장을 통해 오로지 낮의 푸른 하늘만 보이지만, 야간 개장 때에는 네온사인과 영상이 별빛처럼 신비롭게 비치는 유리 돔 천장과 그 너머 밤하늘까지 볼 수 있다. 미술관은 야외 경관조명을 보강해 올가을과 내년까지 야간 운영을 더욱 확대할 계획이다.
지난 4~5월 김해가야테마파크에서 40일간 야간 개장으로 열렸던 일루미네이션 축제 ‘빛의 왕국 가야’도 관람객 7만 5000여 명이라는 개관 이래 최다 방문객 수를 기록하며 성황리에 마무리됐다. ‘김해 방문의 해’를 맞아 기획된 이 행사는 2000년 전 가야의 왕이 걸었던 야행 길을 재해석한 무지개 빛 호수, 가야 빛 왕궁, LED 꽃밭 등 다채로운 빛과 색채의 향연을 선보여 주말 저녁 5000명 이상이 방문할 정도로 큰 인기를 누렸다.
가야테마파크 야간 개장은 이달 7일부터 다시 시작한다. 특히 김해전국(장애인)체육대회 개최 시기에 맞춰 ‘가야 시민가요제’ ‘연어 음악페스티벌’ ‘드론 라이트쇼’ 등 여러 이벤트들을 잇달아 펼치며 연말까지 야간 개장을 이어갈 계획이다. 전국체전 등 주요 행사가 몰리는 10월에는 오후 10시까지 연장 개장한다고 하니 기대가 더욱 크다. 또 7일에는 김해에서도 부산 광안리에서 진행된 것과 같은 드론 라이트쇼를 볼 수 있다. 김해 분성산 150m 상공에서 500대 이상의 대형 드론들이 김해의 역사적 정체성이 담긴 특별 콘텐츠들을 화려한 빛으로 밤하늘 위에 그려낼 예정이다.
19세기 가스등과 전기로부터 시작되어 IT(정보통신) 기술이 접목된 첨단 미디어아트, 드론 라이트쇼에 이르기까지 과학과 예술의 융합은 우리에게 밤이라는 시간과 공간을 향유할 수 있는 놀라운 경험들을 선사하고 있다. 낮과는 또 다른 넘치는 매력을 감추고 있는 밤의 아름다움과 모든 것을 따뜻하게 포용하는 밤의 치유력을 많은 사람들이 체험할 수 있는 문화예술 관광 프로그램 개발이 더욱 필요한 시점이다.
2024-09-05 [1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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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화의 크로노토프] 국가(國歌)와 애국가(愛國歌)
지난 12일 2024 파리 올림픽이 막을 내렸다. 이런저런 비난과 찬사도 있었지만 지구촌 전체의 축제였던 것만큼은 사실이다. 개인적으로 이번 올림픽에서 가장 감동적인 장면은 탁구 혼합복식 종목에 참가한 남한과 북한 선수들이 나란히 시상대에 오른 것이었다. 중국 선수들까지 함께한 이 장면은 ‘빅토리 셀피’라는 이름으로 전 세계에 알려졌다. AFP통신은 이것을 올림픽 10대 뉴스 중 하나로 꼽았다.
근대 올림픽은 스포츠를 통해 세계인의 평화와 화합을 이루고자 했던 프랑스인 쿠베르탱에 의해 1896년 그리스에서 시작되었다. 우리나라가 처음 독립국의 자격으로 참가한 것은 올림픽이 생긴 지 50여 년 만인 1948년 런던 올림픽이었다. 제2차 세계대전 전범 국가였던 독일과 일본은 참가할 수 없었고, 소련을 비롯한 공산권은 아예 참가를 거부했다. 우리나라를 비롯하여 14개국은 처음으로 참가했다. 모두 59개국이 참가한 당시 올림픽에서 우리는 복싱과 역도에서 각각 동메달을 하나씩 따왔다. 그리고 이번 올림픽에서는 13개의 금메달을 포함하여 모두 32개의 메달을 가져왔다.
올림픽에 참가한 선수가 누리는 최고의 순간은 금메달 시상식 단상 한가운데 서서 자신의 국가를 듣는 순간이 아닐까 싶다. 우리 선수가 금메달을 따고 애국가가 울려 퍼지는 순간은 늘 감동이다. 우리 선수들이 따라 부르는 애국가를 들으면서 나라의 노래인 국가가 무엇인가를 다시금 생각해 보았다.
모든 나라에는 그 나라를 대표하는 공식적인 노래가 있고 그것을 우리는 국가라 부른다. 나라의 예식에 사용되는 국가 속에는 각 민족의 역사와 전통을 상징하는 부분도 있고, 자국을 사랑하고 찬양하는 내용도 들어 있다. 우리는 공식 국가는 없지만 애국가를 국가로 같이 사용한다. 대한제국 당시 총 250권의 방대한 분량으로 우리 문화를 집대성한 〈증보문헌비고〉에서도 국가를 애국가라 불렀다. 그 속에 ‘대한 애국가’ ‘일본 애국가’ ‘영국 애국가’ ‘미국 애국가’ ‘법국(프랑스) 애국가’ ‘덕국(독일) 애국가’ 등의 표현이 있는 걸 보면 우리는 국가를 애국가와 같이 생각했던 것 같다.
우리 역사의 부침만큼이나 애국가는 정통성에 대한 시비가 많았고 지금도 여전하다. 먼저, 작곡자 안익태가 친일 의혹에다 나치 독일의 제국음악원 회원이었다는 점도 문제였고, 음악 자체에 대한 문제도 있었다. 작곡가 나운영 선생은 애국가는 7·5조의 율격을 피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당시 일반적으로 사용되던 ‘기미가요’나 ‘만주가’ 등과 유사하다는 것이었다. 실제로 애국가를 일본어로 바꾸면 7·5조가 된다.
음악적 표절이라는 주장도 있었다. 1964년 제3회 서울국제음악제 때 내한한 불가리아계 미국 음악가 피터 니콜로프는 “대한민국의 ‘애국가’는 불가리아의 음악인 ‘오! 도브루자의 땅이여’를 표절했다”고 주장해 큰 논란을 불렀다. 이 곡은 알렉산더 크라스테프의 곡으로 1·2차 세계대전 당시 불가리아 군인들이 즐겨 불렀던 군가였다. 실제로 음악을 듣거나 악보를 비교해 보면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작사자로 알려진 윤치호가 일본제국 의회의 귀족원 의원이었다는 논란도 있었지만, 가사 자체에 대한 시비는 더 오래된 논쟁거리였다. ‘동해’와 ‘무궁화’란 단어에 대해 문제점을 주장하는 연구는 오래된 것이었다. 필자는 ‘삼천리’라는 표기에 주목한다. 국가의 가사에 강역의 넓이를 구체적으로 넣은 것도 어색하지만, 실제로 〈조선왕조실록〉의 기록과도 다르기 때문이다. 조선과 대한제국의 강역은 ‘삼천리’가 아니라 ‘사천리’였다. 선조 26년(1593) 병부에 ‘조선은 국토 넓이가 동서 이천리, 남북 사천리’라고 정확히 쓰여 있다. 고종 임금 때도 ‘동서 이천리, 남북 사천리’라는 기록이 여러 번 나온다. 명나라 지리서 〈대명일통지〉나 청나라 기록인 〈흠정속문헌통고〉 등에도 조선의 강역은 ‘사천리’라고 명확하게 적혀 있다.
우리 국력도 세계에서 손꼽는 수준이 되었다. 이제는 대한민국을 제대로 상징하는 국가를 다시 고민할 때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프랑스나 중국은 시대 변화에 따라 국가를 8번이나 바꿨다. 오래 사용했다는 이유로 그것을 영원히 유지해야 한다는 법은 없다. 조상의 얼이라는 알맹이를 바탕으로 새로운 국가가 나올 시기가 되었다. 식민의 시대가 남긴 찌꺼기는 모두 버리고 새로운 미래를 이야기하는 논의의 장이 열리면 좋겠다. 이를 통해 미래를 준비하고 흩어진 국론을 다시 모으는 기회가 되었으면 한다. 국가라는 음악은 나라의 역사와 문화를 통해 모든 국민을 통합하는 힘 있는 매개체가 되기 때문이다. 정약용 선생은 음악을 ‘나라의 정신적 기틀’이라 했다. 국가(國歌)는 국가(國家)가 행하는 최고의 의례다.
2024-08-29 [1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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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재파의 생각+] 지자체 유튜브와 벽화 마을
최근 지방자치단체들이 유튜브 활동에 열심이다. 전국의 도와 시군구 행정 단위별로 적게는 수천만 원에서 많게는 수억 원의 세금을 투입하여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고 있다.
지자체 유튜브 열풍의 출발은 충북 충주시의 ‘충TV’라고 할 수 있다. 2019년 4월 문을 연 충TV는 충주시 홍보담당관실 김선태 주무관이 인터넷에서 유행하는 ‘밈(meme, 인터넷이나 SNS 등에서 유행해 퍼져나가는 패러디물)’을 활용한 B급 감성 콘텐츠로 공공기관의 홍보물은 재미없다는 편견을 깨면서 큰 인기를 얻었다.
충TV의 인기가 어느 정도냐 하면 충주시 인구가 약 20만 명 정도인데 충TV 구독자는 약 76만 명으로 충주시 인구의 3배가 넘는다. 윤석열 대통령이 국무회의에서 정책홍보 혁신 사례로 충TV를 직접 언급하면서 전국의 거의 모든 지자체와 공공기관은 너나 할 것 없이 유튜브 홍보에 뛰어들었다.
유튜브를 활용한 지자체의 홍보 활동은 바람직한 시도라고 여겨진다. 지금까지의 정책홍보는 딱딱한 광고 포스터, 정형화된 스타일로 제작된 홍보 책자 등 정책 제공자 중심으로 이루어져 정책 수요자인 시민들의 관심을 끌지 못하였다. 반면 유튜브를 활용한 홍보는 쉽고 재미있게 내용을 전달해야 하므로 자연스레 정책 수요자인 시민의 관점에서 홍보가 이루어지게 된다. 즉 지자체의 유튜브 활용 홍보는 정책 제공자 중심에서 정책 수요자 중심으로 홍보의 패러다임을 바꾸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그러나 많은 지자체에서 충TV와 같은 성공 모델을 벤치마킹하면서 자체 차별성이 없는 따라 하기식 콘텐츠를 양산하는 것은 또 다른 문제를 일으킨다. 가령 충TV가 B급 감성 공무원이 직접 출연하여 각종 밈을 활용하는 콘텐츠로 성공하자 다른 지자체에서도 비슷한 콘셉트로 비슷한 콘텐츠를 만들기에 바쁘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콘셉트를 따라 하는 것에 급급한 나머지 정작 중요한 어떤 메시지를 어떻게 전달할 것이냐는 부분이 부차적 과제로 떨어진다는 점이다.
실례로 경기 포천시의 사례를 살펴보자. 지난 6월 경기 포천시 행정사무감사에서 유튜브 홍보 영상의 질과 효과성에 대한 비판이 제기되었다. 포천시의회 손세화 의원은 시의 유튜브 홍보 영상을 검토한 뒤 시의 쇼츠가 메시지를 찾아볼 수 없는 공무원들의 신변잡기가 대부분이라고 지적하였다. 그리고 메시지도 없고 의미도 없는 영상을 올리는 것은 홍보가 아니라 오히려 시의 명예 실추로 이어진다고 비판하였다. 이러한 비판은 비단 포천시 유튜브만의 문제가 아니라 대다수 지자체의 따라 하기식 유튜브에 동일하게 적용된다.
콘텐츠 내용 따라 하기 못지않게 콘텐츠 제작 방법을 따라 하는 것도 문제다. 여러 매체를 통해 알려진 것처럼 충TV는 충주맨 김선태 주무관이 연간 60만 원의 예산으로 결재 과정을 배제하고 혼자서 기획, 연출, 출연, 촬영, 편집까지 모든 작업을 도맡아 했다. 이를 본받아 최근 부산시도 유튜브 크리에이터 채용 공고를 냈는데, 이 크리에이터가 향후 콘텐츠 기획, 구성, 출연, 연출, 제작의 전 과정을 담당한다고 밝혔다.
지속적으로 양질의 콘텐츠를 제작하려면 각 분야의 전문가를 채용하여 팀과 시스템을 만들고 충분한 지원이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그런데 열악한 상황에서 일궈낸 하나의 이례적 성공 사례를 모두가 따라야 할 성공 모델이나 기준으로 삼는 것은 아닌지 우려된다.
획일적으로 양산되는 지자체 유튜브 활동 현황을 보고 있으면 2000년대 초반 전국 지자체가 경쟁적으로 진행한 벽화 마을 조성 사업이 떠오른다. 한때 낙후된 구도심의 마을 담벼락에 벽화를 그려 넣자 범죄가 예방되고 관광객들도 찾아와 지역 상권이 활성화되었다는 등 성공 사례가 언론 매체를 통해 알려졌다. 이에 전국 지자체에서는 이를 벤치마킹해 곳곳에 벽화 마을을 조성하였는데 그 수가 무려 200곳이 넘는다고 한다.
그런데 성공 사례를 벤치마킹하는 과정에서 꽃과 천사 날개 등 판에 박힌 듯한 똑같은 그림들이 전국 벽화 마을에 그려지자 획일적 벽화 마을에 식상한 사람들은 발길을 끊고 말았다. 그 결과 벽화의 그림은 색이 바래지고 곰팡이가 슬면서 흉물이 되었다. 작금의 지자체 유튜브도 천편일률적인 콘텐츠를 찍어낸다면 버려진 벽화 마을의 길을 걷게 될 것이다.
전문가들은 벽화 마을의 실패 원인이 지역의 특성을 살리지 못하고 주민 참여를 끌어내지 못한 데 있다고 진단한다. 지자체 유튜브 역시 마찬가지다. 지역의 특색 있는 콘텐츠를 발굴하고 홍보하며, 나아가 지역 주민이 함께 참여하고 주민과 소통하는 장으로 활용될 때 본연의 기능을 다하고 지속적으로 사람들의 사랑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2024-08-22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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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훈의 생각의 빛] 도둑맞은 정의
무덥던 여름도 말복을 지나 아침에 집을 나설 때면 제법 가을바람이 느껴진다. 곧 계절이 바뀌게 된다. 예상 밖의 좋은 성적을 거둔 파리 올림픽도, 논란 속에 맞이했던 광복절도 지나갔다. 이렇게 어김없이 시간이 흐르면서 개인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는 ‘성숙’하는 것이리라. 성숙은 단지 이전보다 나아지는 상태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곡식이 비바람과 가뭄을 견디면서 끝내 알곡으로 영글듯, 성숙하기 위해서는 뜻하지 않은 난관과 풍파를 겪어야만 한다는 사실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현 정부는 공정과 상식을 내걸면서 출범했다. 어느덧 2년이 지났지만 정치권의 극단적인 대치는 더욱 심화된 형국이다. 지금도 각종 이슈를 둘러싸고 정국이 요동치고 있다. 하루하루 벌어먹기에 급급한 대다수 국민은 이러한 정치권의 행태에 냉소와 불신을 보낸 지 오래되었다. 공정과 상식을 외치는 이들에게 애초 그 단어의 의미를 되묻고 싶은 심정을 느끼지 않은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이렇게 실타래처럼 복잡하게 얽혀 도무지 풀릴 낌새조차 보이지 않는 지금의 한국 사회에서 삶의 행복과 만족을 얻기 위해 생각해 봐야 할 문제는 무엇일까. 우리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훤히 드러나는 사태의 속성을 보게 된다. 이와 함께 ‘발견’과 ‘예측’이라는, 사건의 전말과 가능성을 확인한다. 사태의 과정에 놓여 있을 때는 진실 여부를 알아채기가 쉽지 않다. 대개는 시간이 지난 뒤 돌이켜 보았을 때 당시 정황을 뚜렷이 파악할 수 있다. 최근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일본 사도광산만 해도 그렇다. 한국인에 대한 ‘강제 동원’ 표기를 묵살한 일본 정부가 한국 정부와 애초에 어떤 메시지와 ‘협약’을 주고받았는지 시간이 지나면 훤히 드러날 것이다.
그런데 사도광산뿐만이 아니다. 여러 정황상 이제는 국민들에게 거의 확신에 가까운 느낌을 주는 것이 현 정부의 ‘대일 굴욕외교’이다. 오래전부터 역사의식에 문제가 있었던 사람을 독립기념관장으로 임명한 인사권 세력의 이면에는 어떤 실체가 자리 잡고 있는 걸까. 생각하면 할수록 이해하기 힘든 일들이 하루가 멀다고 벌어지고 있다. 국가 재정은 차치하고서라도 당장 일자리와 청년 취업 문제, 그리고 고령화와 마이너스에 가까운 출산율에 따른 경제인구 소멸 등 풀어야 할 사안이 쌓여 있는 지금의 상황에서 우리는 과연 어떤 가능성과 행복의 모습을 예측해야 할까.
산업사회에서 우선시되었던 물질적 가치가 오늘날에도 적용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아직도 수두룩하다. 그래서 물질적 소유와 이익이 곧 행복과 삶의 가치로 직결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물질은 인간 삶의 질적인 만족도와 가치를 위해서 중요하다. 그러나 수단이 목적으로 둔갑하는 사회적 착란과 가치 전도는 개개인에게 떨쳐내기 힘든 이데올로기를 심어주었다. 돈을 벌기 위해 사는 게 아니라 가치 있는 삶을 이루기 위해 일을 한다는 태도는 좀체 보기 힘든 요즘이다. 우리 정부의 대일 외교 밑바탕에도 오랫동안 누적된 한일 간의 반목을 ‘양보’라는 제스처를 통해 해소하고, 향후 ‘발전적인’ 양국 관계를 형성한 뒤, 결국은 서로의 ‘경제와 산업적 이익’을 도모하려는 의도가 있었을 것이다.
정부의 이런 의중이 나만의 상상일 뿐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사실 두 존재 사이의 발전은 지난 시간에서 겪은 숱한 사건과 감정을 지운 자리에서 생겨나는 것이 아니다. 또한 어느 한쪽이 양보하거나, 다른 한쪽이 양보를 통해 받은 이익을 다른 차원의 이익으로 상대에게 되돌려주는 것도 아니다. 현 정부가 자주 쓰는 공정과 상식을 그대로 실현하면 된다. 여기에는 더하고 빼는 복잡한 셈법을 작동시킬 여지조차 없다. 하지만 이 간단한 원리가 얼마나 어렵고 힘든 일인지는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알만한 사람은 안다. 가장 쉬운 논리를 실현하는 일이 가장 어려운 법이다.
미국 작가 에드거 앨런 포의 작품 중에 ‘도둑맞은 편지’(1844)가 있다. 어느 귀부인의 도둑맞은 편지를 탐정의 추리로 되찾게 되는 간단한 줄거리의 소설이다. 이 작품의 핵심은 편지를 훔쳐 간 사람을 도난당한 사람이 알고 있다는 데 있다. 그러나 훔쳐 간 사람 몰래 다시 원래의 위치로 편지를 되돌리는 ‘고난도’ 해결 능력을 탐정 오귀스트 뒤팽은 선보인다. 지금 우리에게 정의는 실종된 듯한 형국이다. 하지만 사라진 정의를 되찾기 전에 그것을 앗아간 존재가 누구며 무엇인지 제각각 다른 판단을 내리는 상황이다. 정의를 잃어버린 주체가 탐정이 되어 되찾아야 하는 이중의 임무가 국민에게 주어졌다. 정의를 찾게 되면 행복과 삶의 가치는 뒤따라오게 되어 있다.
2024-08-15 [1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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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학수의 문화풍경] 다시 보는 헤라클레이토스의 전쟁 사상
〈신약성경〉의 에베소서(書)는 사도 바울이 에페소스의 교인들에게 보내는 편지이다. 에페소스(Ephesus)는 이오니아 해변에 위치한 고대 그리스의 도시인데, 현재 튀르키예의 셀추크 근처이다. 이 도시는 튀르키예의 관광 중심지이며, 유네스코 세계문화지구로 지정될 정도로 유명하다. 기원전 550년에 건립된 아르테미스 신전이 여기에 있었는데, 이것은 고대 세계 7대 불가사의의 하나이다. 이뿐 아니라 에페소스는 기원전 500년 경의 철학자 헤라클레이토스의 탄생지이기도 하다.
그는 사상이 ‘혐인(嫌人)’ 성향을 보여, 우는 철학자로 알려졌다. 반면 원자론의 창시자 데모크리토스는 웃는 철학자로 불렸다. 그리스 말에서 유래한 혐인(misanthropy)은 증오와 인간을 각각 의미하는 미소스(misos)와 안트로포스(anthropos)로 구성되어, 인류에 대한 혐오를 가리킨다. 인간은 별것 아닌 존재라는 인류 혐오적 태도는 인간에게는 나쁜 성향이 불가피하다는 판단 때문에 일어난다. 인간은 본성적으로 이기적 존재여서 탐욕과 질투를 피할 수 없다고 누군가 믿고 있다면, 그는 인류에 대해 혐오적 태도를 취하기 쉬울 것이다. 혐인 성향의 반대 개념은 애인 성향(philanthropy)이다. 맹자처럼 인간의 본성이 선량하다고 인정하는 사람은 인류를 사랑하는 애인적 태도로 행동할 것이다.
헤라클레이토스의 혐인 성향은 투쟁과 경쟁에 긍정적 역할이 있다는 통찰에 바탕을 두고 있다. 사람들은 예로부터 평화를 좋아하고 싸움을 싫어한다. 그런데 투쟁이 인간 사회의 유지와 발전에 필수 불가결한 요소라는 점을 누군가가 인정한다면, 그는 인류 혐오적 태도를 취하게 될 것이다. 헤라클레이토스 하면 떠오르는 것은 ‘모든 것은 변화한다’는 만물 유전 사상이다. 그의 사상은 여기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다. 그는 변화를 일으키는 힘이 무엇인지 캐물었다. 이 세상은 서로 대립하는 것들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서로 싸우고 그 결과 모든 것이 변화한다는 것이 헤라클레이토스의 핵심 사상이다. 차가운 공기와 뜨거운 공기가 서로 대립하여 기후의 변화가 일어나고, 가난한 집단과 부유한 집단이 서로 갈등하여 사회의 변화가 일어난다. 파리 올림픽에서도 선수들이 메달을 놓고 경쟁하는 가운데 서로가 변화한다. 대립은 국가 사이에도 발생한다.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그리고 이스라엘과 아랍이 투쟁하며 세계의 경제와 정치에 변화를 일으키고 있다.
“전쟁은 만물의 아버지이며 왕이다. 그는 어떤 것은 신으로, 어떤 것은 인류로 드러내고, 어떤 사람은 노예로, 어떤 사람은 자유인으로 만든다.” 여기서 헤라클레이토스는 전쟁을 아버지나 왕으로 의인화하고, 갈등이 자연이나 사회에서 변혁과 창조의 원동력이라는 점을 지적한다. 황제나 천자는 신의 자리를 차지하고, 백성은 그에게 복종한다. 무엇이 이런 차이를 결정하는가? 투쟁이다. 고대 사회에서 어떤 사람은 자유인으로, 어떤 사람은 노예로 살아간다. 전쟁에 지는 국가의 사람들은 승자의 노예가 되었던 것이다. 헤라클레이토스는 전쟁에 긍정성이 있음을 통찰한다.
반면 평화주의는 전쟁에 반대하며 전쟁의 역할을 인정하지 않는다. 비폭력 사상은 폭력 없이 갈등을 해결하자고 주장한다. 철학적 형태의 평화주의는 폭력은 그 자체로 나쁘다는 믿음에 토대를 두고 있다. 폭력 행동이 일으키는 결과와 상관없이 폭력 자체가 도덕적으로 옳지 않으므로 폭력은 사용하지 말아야 한다. 이런 단순한 논리가 철학적 평화주의의 입장이다. 평화주의에 몇 가지 종류가 있다. 절대적 평화주의는 어떤 경우에도 비폭력의 원칙은 지켜야 한다는 입장이며, 상대적 평화주의는 자위권이나 타인에게 임박한 위험이 닥칠 경우와 같은 극단적 경우에만 폭력의 사용을 허용한다. 실용적 평화주의는 협상 같은 평화적 수단이 전쟁보다 더 좋은 결과를 낳는다고 믿는 입장이다.
그러나 철학적 평화주의가 인간 존재를 너무 이상화하여 삶의 조건을 제대로 보지 못한다는 비판이 제기되어 왔다. 필자도 이런 입장이다. 인간은 평화뿐 아니라 투쟁이나 공격의 본성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사람들은 타인과 평화롭게 살아가려고도 하지만, 타인보다 나은 인간이 되기 위해 경쟁하기를 바란다. 나아가 폭력 그 자체가 나쁘다는 평화주의의 명제도 근거가 충분하지 않다. 폭력이 그르다는 점에 많은 사람들은 감성적으로 동조한다. 그러나 그 명제는 입증되지 않았다. 사실 이런 윤리적 명제의 객관적 증명은 불가능하다.
대중은 평화주의를 높이 평가하여 붓다, 예수, 간디 같은 평화주의자를 존경한다. 그런데 평화주의는 실현될 수 없는 이상이며 이론적 결함을 내재하고 있다. 전쟁과 투쟁이 불가피한 삶의 조건이라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전쟁은 나쁘다고 비판만 하지 말고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도록 대비해야 할 것이다.
2024-08-08 [17: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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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동윤의 비욘드 아크] 역시, 부산이다!
폭염은 사그라질 기세가 아니다. 앞으로 겪게 될 여름 중 올해 여름이 가장 시원하다고 한다. 지구온난화 시대가 끝나고 지구열대화 시대가 왔다는 걸 피부로 느끼게 된다. 연일 열대야까지 이어지니 자다 깨기 일쑤다. 덕분에 자다 깬 밤에는 파리 올림픽과 함께한다. 때마침 휴가다.
파리 올림픽은 시작 전부터 무성한 말과 잇단 실수로 여기저기서 불만이 쇄도하고 있다. 2020 도쿄 올림픽에 처음 도입됐던 골판지 침대가 이번 파리 올림픽에도 등장하고, 에어컨 없는 버스와 숙소, 채식 위주의 식단은 올림픽 개최지인 파리가 올림픽에 드는 막대한 비용을 감당하기 어렵기 때문이라는 비아냥거림도 심심찮게 보인다. 일리는 있다. 올림픽에 출전하는 선수들이 최상의 컨디션으로 시합에 임해야 하는데 그럴 환경이 제공되지 않으니 불만이 터져 나오기 마련이다. 하지만 이번 파리 올림픽의 친환경 건축, 재생가능 에너지 사용, 탄소 제로 등 지속가능한 올림픽을 구현하겠다는 목표를 알게 되면 이해가 되지 않는 건 아니다.
‘기후위기에 맞서는 올림픽’이라는 선한 의지에 공감함에도 계속되는 질문은 ‘선수들과 현장에서 올림픽을 즐기려는 사람 모두의 건강과는 상관없는 결정이 맞느냐’ 하는 것이다. 조금 선선한 시기로 일정을 조정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겠지만 IOC(국제올림픽위원회)가 최대 수익을 얻고 있는 TV 방영권료가 걸려 있어 일정 조정이 힘들다는 의견에 슬쩍 동의하게 된다. 선함을 등에 업은 자본의 논리에 익숙해진 탓도 한몫했다. 봄에는 계속 이어지고 있는 스포츠 리그, 가을에는 미국 메이저리그나 유럽 프리미어리그 같이 세계적인 인기를 얻고 있는 스포츠 리그가 열리기에 TV 방영권료가 줄어들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친환경 올림픽’이라는 타이틀 외에도 남녀 선수의 성비 비율을 맞춘 ‘성평등 올림픽’, 메인스타디움이 아닌 야외에서 열리는 개막식 등 파리 올림픽은 그동안 진행됐던 올림픽 개최국의 관습을 거부했다. 절정은 센강을 중심으로 파리 곳곳에서 펼쳐진 개막 행사였다. 도시 전체가 무대로, 유료 관람객뿐만 아니라 곳곳에서 열린 공연은 무료 관람객도 함께 즐기기에 충분해 보였다. 노트르담 대성당, 루브르박물관, 오르세미술관, 콩코르드 광장, 에펠탑 등 그 자체만으로도 너무나 훌륭한 배경이다. 근대5종 경기와 승마 경기는 베르사유궁전에서 열리니 ‘올림픽의 프랑스혁명’이라는 평을 받았다. TV로 개막식을 보는 동안 ‘역시, 프랑스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개막식 이후 일부 장면은 논란에 휩싸이기는 했지만 프랑스니까 가능했다는 생각이다.
그렇다면 부산은? 2030 월드엑스포 유치를 성공했다면 부산은 지금 어떤 그림을 그리고 있을까. 가덕신공항 건설은 삐걱대지 않고 일사천리로 진행되고 북항은 엑스포를 개최하기 위한 그림을 그리고 있을까. 생각에 생각이 꼬리를 물기 시작한다. 엑스포 유치가 불발됐다고 부산이 부산이 아닌 건 아니지 않나.
부산의 핵심 현안은 ‘부산 글로벌 허브도시 조성 특별법’ 제정이다. 더불어 글로벌 허브도시가 되기 위한 인프라와 산업경제, 인재 양성, 공간 혁신, 문화관광 등의 여건 조성에도 힘쓰고 있다. 여기에 더해 부산시는 2030년 온실가스 발생량을 40% 감축해 ‘기후위기 없는 글로벌 허브도시로 도약한다’는 청사진도 제시했다.
올해 7월 25일 부산시는 중소벤처기업부가 공모한 ‘스타트업 파크 조성사업’에 북항 1부두가 ‘글로벌 창업 허브’ 조성지로 최종 선정됐다고 발표했다. 시는 북항 제1부두 물류창고를 원형은 그대로 두고 내부만 리모델링해 글로벌 창업 허브로 만들 계획이라고 한다. 그리고 북항 1부두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도 동시에 추진하겠다고 발표했다.
박형준 부산시장은 “대한민국의 근대화를 이끈 창업의 발상지인 부산항 제1부두에 조성되는 글로벌 창업 허브는 저출생 등으로 인한 잠재성장률 저하를 극복하고 부산의 새로운 성장동력을 창출할 수 있는 혁신의 거점”이라 말했다.
부산항 개항 150주년을 맞아 부산세관 옛 청사를 복원하고 북항 1부두의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도 추진하고 북항 제1부두 물류창고를 리모델링해서 글로벌 창업 허브로 만든다고 하니 북항에 조금씩 부산의 미래가 담기는 것 같다. 그 위에 ‘탄소제로 북항’ 혹은 ‘탄소중립 북항’을 더해 큰 그림을 그려 가면 기후위기에 맞서는 부산에 안성맞춤이라는 생각이다.
목표가 선하다고 과정이 모두 선한 건 아니다. 사람들이 모여드는 부산을 만들기 위해 부산에서 뿌리내린 기업들을 지켜내는 것이 먼저라는 것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마침내 “역시, 부산이다!”라고 누구나 말할 수 있게 말이다.
2024-08-01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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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정은의 문화 캔버스] 7월의 화가, 프리다
7월이 되면 어김없이 떠오르는 화가가 있다. 바로 멕시코를 대표하는 화가 프리다 칼로(Frida Kahlo·1907~1954). 그녀의 작품과 생애가 담고 있는 타오르는 열정은 꼭 여름을 닮았다. 신기하게도 그녀가 태어나고 사망한 것은 모두 한여름인 7월이었다. 올해는 그녀가 세상을 떠난 지 70주년이 되는 해이다. 특히 지난달 멕시코 프리다 칼로 미술관의 알바레스 관장은 한국을 찾아 국립현대미술관 특강, 한국화랑협회 회장 면담, 윤석남 화가 작업실 방문 등을 통해 한국의 현대미술과 여성 화가에 대한 관심을 보여주기도 했다.
프리다 칼로에 대한 화제와 찬사, 관심은 쉽게 끝날 것 같지 않다. 피카소가 극찬한 천재, 프랑스 루브르가 최초로 작품을 구입한 중남미 예술가, 1984년 멕시코 정부가 작품 전체를 국보로 지정해 국외 반출을 법으로 금지한 화가, 2021년 뉴욕 소더비 경매에서 자화상이 412억 원에 낙찰되어 중남미 미술품 최고가 경신…. 바로 그 자화상은 올해 4월 이탈리아에서 개막한 2024 베니스 비엔날레 본전시에서 관객을 맞고 있다.
프리다 생전에는 멕시코 벽화 운동을 주도했던 남편 디에고 리베라(1886~1957)가 그녀보다 훨씬 더 유명한 화가였다. 프리다는 1939년 프랑스 파리 ‘멕시코전’을 통해 주목을 받기도 했지만, 당시엔 그다지 큰 반향을 일으키지는 못했는데, 아마 시대를 앞선 화가였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1940년대 그려진 프리다 작품의 가치는 1970년대 여성주의 운동이 일어나면서 새롭게 평가되기 시작했다.
독일계 사진사였던 아버지는 그녀를 특별히 아꼈고 ‘프리다’라는 이름을 붙여주었다. 프리다는 독일어로 ‘평화’를 뜻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47년간 그녀의 삶은 평화로운 적이 없었다. 6살 때 소아마비로 장애를 갖게 되었지만 의사의 꿈을 품고 명문 고등학교에 진학했다. 그러나 끔찍한 교통사고로 움직일 수 없게 되자 의사의 꿈을 접고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사고 후유증으로 평생 30여 차례 수술을 하고 모르핀에 의존해 살아가야 했던 그녀의 작품에는 고통, 상처와 함께 삶에 대한 깊이 있는 성찰과 진정성이 담겨 있다. 비평가들이 그녀 작품을 ‘초현실주의’라고 평하는 것에 대해 자신의 작품은 철저하게 ‘현실’이라고 반박하기도 했다.
프리다 작품의 주제는 출산, 유산, 낙태, 월경 등 당시 서구 미술계에서 거의 다루어지지 않았던 여성만의 고유한 경험에 관한 것이었는데, 이는 이후 여성주의 운동에서 매우 중요시된 것들이다. 초기 여성주의 운동은 여성들이 그동안 표현할 수 없었던 자신들의 이야기를 풀어내는 자기고백적, 자의식적 작품들이 많은데, 프리다 작품은 이런 초기 여성주의 미술의 선구적 역할을 했다. 프리다 작품은 ‘초현실주의’나 ‘페미니즘’이라는 수식어보다는 대다수가 ‘자화상’이라는 특징으로 더 잘 설명된다. 사실 자화상만을 평생의 주제로 삼고 끈질기게 그린 화가는 흔치 않다. 영혼의 깊이를 드러내는 걸작 자화상을 남긴 것으로 유명한 렘브란트나 고흐도 주요 작품을 그리는 도중 간간이 자화상을 그렸던 것이지, 프리다와 같이 전적으로 자화상에 집중하지는 않았다. 프리다 필생의 예술적 주제는 오로지 자기 자신이었고 평생 자신을 그리는 데 열과 성을 다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아마도 그녀는 인생의 고비가 올 때마다 자화상을 그려 자신을 돌아보면서 위로와 힘을 얻었던 것 같다. 그녀의 작품을 보면 평생 극심한 육체적 고통에 시달리면서도 얼마나 자기 자신을 사랑하고 최선을 다해 삶을 살아냈는가를 느낄 수 있다.
프리다는 캔버스 작품으로 여성 자아를 표현하고 남편 디에고는 대규모 벽화로 정치적 주제를 다룬다는 점에서 작품 양식이나 경향은 매우 다르다. 그러나 두 사람 모두 멕시코 전통 ‘아즈텍’과 ‘마야’ 문명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는 점에서 이들의 예술 세계는 서로 맥이 닿아 있다. 디에고는 11살부터 미술 공부를 시작해 20대에는 유럽 거장들의 화풍을 익혔다. 멕시코에도 수많은 벽화를 남겼을 뿐 아니라 미국에서도 큰 인기가 있어서 샌프란시스코 증권거래소 벽화를 주문받아 그리기도 했다.
프리다 칼로의 삶을 잘 이해시켜 줄 영화가 한 편 있다. 줄리 테이머 감독의 영화 ‘프리다’(2002년). 놀랍게도 이 영화의 기법은 프리다 작품의 특징을 정확하게 반영한다. 그녀 작품들 모두는 철저히 그녀의 삶으로부터 나온 것이라는 점. 영화는 작품 이미지를 화면 구성에 자주 사용한다. 그림이 화면에 등장하고 그것이 그림이라고 생각하는 순간 갑자기 등장인물이 움직이면서 영화가 전개된다. 또, 역으로 움직이던 인물들과 배경들이 그대로 프리다의 그림으로 변한다. 뜨거운 여름, 절망적인 상황과 계속되는 시련 속에서도 빛나는 예술을 통해 삶의 고귀함을 보여준 프리다 칼로를 만나보시길 권한다.
2024-07-25 [1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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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화의 크로노토프] ‘문화도시 부산’이 먼저다
부산시는 지난 6년간 인구 증가를 위해 4조 5000억 원을 지출했다. 하지만 부산시 자체가 ‘소멸위험단계’에 들어갔다는 경보가 울렸다. 올 3월 기준으로 부산시는 65세 이상 인구 비율이 23%에 달하여 전국 광역시 중 최초로 ‘초고령사회’로 진입했다. 올해 부산 시내 초등학생은 지난해 대비 5700여 명이나 줄었다. 1995년 390만 명에 육박하던 인구도 30년 만에 60만 명 가까이 줄어들었다.
1997년 아시아 금융위기 이후 부산은 쇠락의 길을 걸어왔다. 중국의 경제성장과 함께 수도권과 서해안으로 기업 이전이 일어났던 게 이유였지만, 기업이 부산을 떠나기 시작하는데도 미래를 준비하지 않았던 탓이 컸다. 1995년 일본 효고현 남부 지진으로 고베항에 집중되던 국제물류가 부산항으로 몰려들었지만 미래 산업 육성으로 이어지지 못했고, 그러는 사이 세계 항만 최상위권은 중국으로 넘어갔다. 글로벌허브나 첨단 산업은 구호로만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충분한 준비와 그에 상응하는 인프라가 갖춰져야 한다.
이런 현상은 지금도 마찬가지다. 부산을 기반으로 하는 기업이 있어야 부산이 살아나고, 시민이 누릴 수 있는 문화가 있어야 사람들이 부산에 살 수 있다. 그런데 부산은 지금, 아파트만 짓는다. 최근 협력업체가 100군데가 넘고 수백 명이 일하는 국내 5위의 철강회사가 새로 생긴 아파트 단지의 민원으로 부산을 떠나는 일이 벌어졌다. 부산이 가진 근본적인 문제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건이다. 국내 100대 기업은 하나도 없고 1000대 기업도 크게 줄어 28개에 불과하다. 부산은 무엇으로 먹고 살 것인가?
아파트 붐은 전국이 마찬가지겠지만 부산은 경제 규모에 비해 더 심각하다. 이 와중에 부산시가 발표한 ‘특별건축구역 활성화 시범 사업’도 결국 아파트를 짓는 일이다. 언론도 그런 현상이 가진 본질은 제대로 말하지 않고 ‘재개발’이란 선정적인 타이틀로 기사를 올려 사람들의 투기 심리를 부추긴다. 인구가 주는데 아파트 공급이 는다고 수요가 따라 늘어나겠는가? 근본을 제대로 생각하는 도시 전문가들이 잘 보이지 않는다. ‘로컬’이나 ‘원도심’ 등을 이야기하지만 정작 미래에 대한 깊은 고민은 느낄 수 없다.
정치권은 산업은행 본점 부산 유치 건으로 팽팽한 신경전을 보인다. 산업은행 본점 이전이 부산에 가져다줄 정확한 의미나 아는지 모르겠다. 기업 하나 옮기면 사람들이 자동으로 몰려온다고 쉽게 생각하는 건 아닌지 궁금하다. 경북 경주시는 인구 증가 시책으로 한국수력원자력 본사를 이전했지만 오히려 인구가 감소했다. 직원들은 주중에 홀로 지내다가 주말이면 가족이 있는 서울로 다시 돌아가기 때문이다. 단순히 ‘주말 가족’으로 만들고 마는 이 기이한 현상의 원인을 한 번이라도 생각해 보았을까?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문화다. 사람이 빵만으로 살 수 없다는 것은 인류의 오랜 생각이다. 우리의 삶이 여전히 고단하지만 가장 우선적인 것은 문화적인 충족이다. 내 아이가 다닐 교육 환경도 중요하고 교통 인프라 같은 사회기반시설도 중요하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문화적인 환경이라 생각한다. 몇 년 전 제대로 된 인프라가 없는 부산 영도에 갑자기 5성급 호텔을 몇 개나 짓겠다고 하다가 무산된 일이 있었다. 먼저 준비해야 할 것은 놀거리와 볼거리 같은 관광 인프라인데 호텔 먼저 만들고 보겠다는 계획이었으니 성공할 리가 없다. 지금 문제가 되고 있는 북항마리나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다시 태어나도 살고 싶은 도시, 부산’을 위해 ‘커피 도시’를 이야기하지만 납득하기 힘든 측면이 없지 않다. 커피 산업으로 어떻게 글로벌 경쟁력 강화를 꾀할 수 있을지, 이를 통해 부산을 어떻게 잘 사는 도시나 살기 좋은 도시로 만들 수 있을지 궁금하다. 부산에 커피 농장이나 네슬레 같은 기업이 있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우리나라 커피 수입량이 2년 연속 10억 달러가 넘었다는 기사만 봤다. 쇠락하던 부산 영도가 매달 160만 명이 찾는 소위 ‘핫플’로 바뀐 까닭은 빈집을 활용한 복합문화공간 때문이었다. 사례가 있음에도 다른 데서 답을 찾을 이유가 없다. 부산을 살리기에 가장 편하고 가장 쉽게 할 수 있는 일은 ‘문화도시 부산’을 만드는 것이다.
사족을 하나 덧붙이면, 이제는 조금 이기적으로 되어야 한다. 모든 일에서 부산 사는 사람들이나 부산 기업에 가산점을 주자. 부산에서 태어나 초·중·고등학교를 다녔거나 부산에 주소를 갖고 일정 기간 이상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가산점을 주자. 지역 인재 양성이란 지역에 사는 사람들에게 기회를 먼저 주는 데서 시작한다. 다른 도시에 살면서 잠시 부산에 들렀다가 이력만 쌓고 떠날 외부인들은 부산의 발전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부산에 둥지를 튼 부산 사람에게 기회를 먼저 주자.
2024-07-18 [1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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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재파의 생각+] 뜬금없는 부산시립대학원대학
최근 부산시가 부산시립대학원대학 설립 사업의 첫발을 내디뎠다고 밝혔다. 대학원대학이란 특정 분야의 전문 인력을 양성하기 위해 대학원 과정만 두는 대학을 말하는데, 시가 1500억 원을 들여 직접 첨단 분야 대학원대학을 설립해 고급 인재를 육성하고 이를 바탕으로 첨단 기업을 부산에 유치한다는 계획이다. 이를 위해 시는 연구용역비 3억 원을 투입해 대학원대학의 사업 타당성 조사를 실시할 방침이라고 한다.
물론 시에서 실시하는 타당성 조사는 이 사업을 위해 투입해야 할 유·무형의 비용과 실현되었을 경우 부산에 미치는 직·간접적인 경제 효과 등을 분석하는 조사이다. 그러나 이 글에서는 범박하게 국어사전에서 정의하는 타당성, 즉 ‘사물의 이치에 맞는 옳은 성질’에 기초하여 부산시립대학원대학 사업의 타당성을 검토해 보고자 한다.
먼저 시에서 대학원대학을 설립하려고 하는 이유와 목적이 필자가 보기에 타당하지 못하다. 현재 시의 대학원대학 설립 계획을 보면 대학원대학을 설립하려는 데에만 그 목적이 있지, 어떤 분야의 인재를 양성하고 어떤 기업을 부산에 유치할 것인지는 알 수 없다. 이는 “첨단산업 분야인 양자라든지, 이차 전지 이런 분야에서…” 등을 언급한 시의 담당 정책관 발언을 통해 여실히 드러난다. 양자면 양자고, 이차 전지면 이차 전지지 어떤 분야를 하겠다는 계획이 전혀 세워져 있지 않은 것이다.
가령 “부산이 글로벌 금융허브 도시로 발전하기 위해서는 미래 금융 기술의 핵심인 블록체인과 관련된 인재를 확보할 필요가 있고, 이를 위해 블록체인 대학원대학을 설립하겠다. 그리고 여기에서 배출된 고급 인재를 부산국제금융단지 내 기관에 취업할 수 있게 연계하는 등의 노력을 통해 이들이 지역에 정주하도록 하겠다. 그렇다면 국내외 금융 기관이 스스로 부산을 찾을 것이다”라고 이야기한다면 그 이유와 목적을 어쩌면 수긍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현재 시의 계획은 무엇을 어찌할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대학원대학을 설립해야겠으니 일단 1500억 원의 예산부터 투입하겠다는 말과 다르지 않다.
다음으로 대학원대학의 운영 방법이 타당하지 못하다. 시의 계획대로 첨단 분야의 석학을 초빙해 대학원대학을 설립·운영한다면 최고 수준의 교수 인건비, 최신 실험 장비와 재료 구입비, 연구실 운영비, 학생 장학금, 교직원 인건비와 각종 행정 비용 등에 어마어마한 운영비가 매년 들어가야 한다. 그러나 대학원대학 설립을 위한 예산 계획을 살펴보면 총예산 1500억 원 중 건축비가 1400억 원으로 예산의 93%를 차지한다. 그리고 향후 운영에 대한 구체적 계획은 전혀 생각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시의회에서 담당 정책관이 대학원대학 운영 방법에 대해 다음과 같이 발언하였는데, 여기에 그러한 인식이 잘 드러난다. 정책관은 “예산은 국비 사업을 유치하거나 기업에서 주는 연구 과제들을 수행하거나, 이런 식으로 해서 최대한 시비 투입을 줄일 예정이고…”라고 말했다. 시에서 밝힌 대학원대학 설립 목적을 달성하려면 장기적 관점에서 지속적인 투자가 이뤄져야 함에도 불구하고 설립 후에는 교수가 알아서 연구 과제를 따오고 알아서 운영하라는 것이다. 이를 보면 시는 대학원대학 설립, 더 구체적으론 건물 설립에만 목적이 있고 운영에는 관심이 없는 것으로 해석된다.
마지막으로 대학원대학 설립의 기대 효과가 미미하다. 시의 대학원대학 설립 논리는 부산에서 고급 인재를 양성하면 기업이 인재를 찾아 부산에 올 것이라는 설명이다. 그러나 현재 대한민국의 현실을 고려하면 대학원대학 학생 80명이 있다고 첨단 기업이 스스로 부산에 올 가능성은 희박하다. 오히려 부산에서 돈을 투자해 육성한 인재가 수도권으로 이탈할 가능성이 농후하다.
그렇다면 대학원대학에 입학한 학생들이 졸업 후 수도권으로의 이탈을 막고 계속해서 부산에 정주하도록 할 유인이 필요하나 이에 대한 고민이나 해결 방안은 사실상 없어 보인다. 다만 담당 정책관은 “대학원대학 안에서 연구 과제를 계속 수행할 수도 있기 때문에…”라고 말해 졸업생들이 박사후과정으로 부산에 계속 머물게 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고학력 계약직 연구원을 양성하여 인재 유출을 막겠다는 게 시가 기대하는 이 사업의 효과라는 것인지 의문이 드는 대목이다.
살펴본 바와 같이 부산시립대학원대학 사업은 설립 이유와 목적, 운영 방법과 기대효과에 이르기까지 모든 측면에서 타당성을 찾기 어려운 무모한 정책으로 판단된다. 따라서 시는 혈세 낭비가 예상되는 사업을 무리하게 추진하기보다는 관련 예산을 지역 대학에 투자하고, 시 본연의 업무이면서 현재 잘하고 있는 지·산·학 협력에 더욱 충실해야 할 것이다.
2024-07-11 [17: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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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훈의 생각의 빛] 나체와 속임수
장마 한복판이다. 장마가 끝나면 올해 중 가장 무더운 시간이 우리를 덮칠 것이다. 상반기 동안 지쳐버린 몸과 마음을 여름철 휴가를 맞아 시원하게 씻어 낼 방도를 계획하는 사람들도 많다. 열심히 살았건 그러지 못했건 여름은 어쨌든 우리에게 낭만과 추억을 쌓게 하는 계절이다. 필자 또한 이곳 부산에 살면서 여름에 얽힌 추억이 적지 않다. 아무래도 바다로 유명한 곳이니만큼 해운대나 광안리해수욕장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특히 여름밤 민락동 수변공원에 친구들과 삼삼오오 앉아 술을 마시면서 두런두런 얘기를 나누곤 했던 때가 떠오른다.
그땐 무슨 고민거리가 그리 많았던지. 지금 생각하면 대수롭지 않은 일인데도 마치 세상을 다 짊어진 것처럼 심각했던 날들이었다. 친구들도 마찬가지였으리라. 검푸른 여름 밤바다 저 멀리 펼쳐진 수평선 앞에서 당장 해결해야 할 일과 안개처럼 자욱하고 불분명했던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무시로 마음을 흔들던 시절이었다. 취기가 오르면 박인환 시인(1926~1956)의 시구절대로 ‘술병이 바람에 쓰러지는 소리를 들으며’(‘목마와 숙녀’ 중) 가슴 벅찬 운명의 예감에 몸서리치거나 미친 듯 파도를 몰아치는 바람에 몸을 실어 밤하늘에 휘발되고 싶었던 기억도 새록새록 떠오른다. 그러다 늦은 밤이나 새벽녘이 되어 자리를 뜰 때쯤이면 엉덩이에 깔았던 신문지며 술병이며 먹다 남은 안주가 밤바람에 이리저리 흔들리곤 했던 것이다.
지금 생각해 보면 ‘낭만’과 ‘청춘’이라는 허울이 풍광 좋은 도시 수변공간을 헤집고 다니지 않았나 싶다. 젊음은 아직 활짝 열리지 못한 시선으로 한 곳에만 깊이 파고드는 성향을 거느리기에, 우리가 어질러 놓은 고민의 흔적을 미처 살피지 못해 실수가 잦을 수밖에 없었다. 얼마 전 민락동 수변공원 부근에 갈 일이 있어서 그 옛날을 회상했다. 당시엔 수많은 인파가 만들어 내는 소음과 노랫소리, 그리고 더러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추태를 흔히 볼 수 있었다. 나도 이들 무리 속의 하나였다는 생각이 들자 괜히 속내를 들킨 듯 부끄러워졌다.
지난해 7월부터 수영구청이 민락동 수변공원 내 음주 행위를 금지한 이후로 주변 쓰레기 배출량이 크게 줄어 일대가 훨씬 청결해졌다는 소식이 들린다. 그동안 수변공원은 사람들이 붐비는 왁자지껄한 풍경도 좋았지만, 그 반대급부로 각종 소란과 무질서한 음주 행위로 말미암은 추악한 흔적 때문에 주민들의 민원이 끊이지 않았다고 한다. 이에 수영구청의 과감한 결단으로 수변공원은 깨끗한 장소로 탈바꿈한 것이다. 반면에 인근 상인들의 볼멘소리도 흘려들을 수는 없다. 수변공원 일대의 음주 행위가 금지되자 자연히 찾는 사람도 적어지고 횟집이 밀집한 주변의 상인들로서는 울상을 지을 수밖에 없는 결과로 이어졌다.
최근 달라진 수변공원에 관한 지상파 방송을 본 적이 있다. 청결해진 수변공원에 화색이 도는 인근 주민과 청소 봉사자, 그리고 이들과 달리 구청을 원망하는 주변 상인의 인터뷰들이 내심 생각거리를 던졌다. 확인된 바로는, 구청이 결단을 내리기 전부터 상인들에게 영업이익이 발생하는 만큼 청소나 부대 비용을 구청과 상인들이 서로 협조해서 분담하는 방식으로 처리하자고 여러 차례 권고했다고 한다. 아울러 오래전부터 광안리 해변의 음주 금지가 수변공원 내 음주 허가와 부딪쳐 형평성 문제가 제기되기도 했다. 이렇게 복잡한 문제가 얽혀 있었던 터라 구청으로서도 쉽게 결단을 내릴 사안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도시미관과 중소상공인의 현실, 그리고 주민과 이곳을 찾는 사람들 사이에 벌어지는 ‘고차방정식’을 생각하면 관할 구청의 결단과 집행은 어떤 식으로든 잡음을 남긴다는 사실을 민락동 수변공원의 경우를 보면서 알게 되었다. 어쨌든 행정기관과 주변 상인 및 주민의 이해와 요청 사이에서 협의 지점을 찾은 결과가 지금처럼 쾌적해진 수변공원이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여기에서 안데르센 동화 ‘벌거벗은 임금님’을 떠올리게 된다. 멍청하거나 바보 같은 사람 눈에는 절대 볼 수 없다는 재단사의 말만 믿은 나머지 ‘완성된 옷’을 걸치고 거리를 행진했던 임금 말이다. 벗은 몸으로 활보하면서도 부끄러워하기는커녕 오히려 으스대면서 뽐내었던 어리석은 임금님의 정신문화가 불과 몇 년 전 한국 사회의 풍경이었다면 지나친 말일까. 관광객 유입과 이윤에만 눈이 멀었던 지자체와 상인들의 마인드가 오늘날에도 여전히 개선되지 않고 지지부진한 상황이다. 저 동화 속 임금처럼 도시미관 같은 공동체 전체의 큰 그림을 그리지 못하고 당장의 이익에만 욕심을 부려 스스로를 꾀었던 우리 모두의 ‘속임수’가 이제는 환하게 벌거벗겨져야 할 때다.
2024-07-04 [18: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