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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명섭 칼럼] 폐수 흐르던 태화강은 기적을 이뤘건만…
부산과 인접한 광역시인 울산은 자타가 인정하는 우리나라의 ‘대표 공업도시’다. 번영을 구가하는 현재 대한민국의 기틀이 울산에서 마련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석유화학, 자동차, 조선 등 이른바 ‘중후장대’ 산업의 심장이 울산이다.
이런 이력으로 울산은 대표 공업도시의 타이틀을 얻었지만 한편으로는 ‘공해의 도시’라는 오명도 함께 떠안았다. 초기 산업화 과정에서 겪어야 했던 통과의례 같기도 했다. 울산의 공해와 오염 현장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던 곳이 도심 정중앙을 지나 동해로 흘러가는 태화강이었다. 1990년대까지 온갖 폐수와 오수의 유입으로 악취가 진동해 ‘죽음의 강’으로 불렸다.
하지만 이제는 모두 옛날이야기가 됐다. 2000년대 초부터 울산시가 ‘태화강 살리기’에 본격적으로 나서면서 태화강 일대는 그야말로 환골탈태했다. 2019년 7월 국가정원으로 지정되면서 연간 500만 명이 찾는 생태관광지로 변신한 것도 놀라운 일인데, 최근에는 ‘2028 국제정원박람회’의 개최지로도 선정되는 기염을 토했다. 우리나라에선 전남 순천에 이어 두 번째라고 한다. ‘공업도시이면서 정원도시’라는 언뜻 양립하기 어려울 듯한 두 가치의 공존을 실제로 증명하는 국제적인 본보기가 된 것이다. 환경오염과 공해로 신음하던 국내 최대의 공업도시 울산이 태화강의 기적 스토리를 발판으로 세계가 인정하는 국제적인 정원도시로 변신에 성공했다고 볼 수 있다.
2028년 4월부터 6개월간 열리는 울산 국제정원박람회의 개최 장소도 이런 취지에 맞게 태화강 국가정원과 인근 삼산·여천쓰레기매립장으로 정했다고 한다. 모두 한때 폐수와 쓰레기로 악취가 진동하던 곳이다. 특히 태화강은 역한 냄새와 오염, 이를 견디지 못한 물고기들의 떼죽음 등 수질 등급을 말하기조차 민망했지만 지금은 지자체와 시민, 기업의 지난한 노력으로 1급수 수질에다 연간 5만 마리의 철새가 찾는 생태 공원이 됐다.
울산시는 반전의 스토리를 품은 이곳에 박람회가 열리면 전 세계에서 1300여만 명의 관람객이 방문할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박람회를 계기로 도시 이미지도 자연스럽게 산업도시에서 ‘세계적인 정원도시’로 업그레이드될 것이라는 계산이다. 비록 이웃 광역시의 일이긴 해도 매우 기분 좋은 얘기가 아닐 수 없다.
울산 태화강의 유쾌한 반전 스토리는 자연스럽게 부산의 동천 상황을 떠올리게 한다. 하지만 아쉽게도 결론은 같지가 않다. 똑같이 도심을 흐르는 하천이건만 동천은 20년의 세월에도 불구하고 아직 수질 개선의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최근엔 성지곡 수원지의 물을 활용한다는 방안까지 나왔는데 시민들은 여전히 반신반의한다.
울산의 태화강과 비슷한 시기인 20년 전 무렵에 함께 수질 개선에 착수했지만 지금 양쪽의 처지는 하늘과 땅 차이다. 길이 46㎞에 달하는 태화강은 성공했는데 왜 동천은 아직도 제자리걸음인지 시민 입장에선 답답하기만 하다.
결국 이는 부산시의 행정 역량에 대한 의구심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그 정점에는 지자체 행정의 수장인 시장의 의지와 노력 부족을 들 수 있다. 근래 부산에서 큰 논란이 제기됐던 사례도 대체로 이런 관점에서 생각해 볼 수 있다. 바로 구덕운동장 복합 재개발 철회나 백양터널 통행료 무효화, 이기대 공원 입구 고층 아파트 건립 논란을 꼽을 수 있겠다. 모두 시가 밀어붙이다 종국에는 반대 여론에 밀려 뜻이 꺾인 사례들이다.
결과적으로 시가 체면을 구기게 됐으나 이는 큰 문제가 아니다. 이보다는 지금 부산 시정의 긴장감이 현저히 떨어져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점이 더 우려스럽다. 박형준 시장이 ‘15분 도시’, 시민행복도시, 혁신 거점도시 등 큰 어젠다 위주에 빠져 있는 사이 정작 시민들의 실생활 현안은 뒷전으로 밀리고 있다는 지적이다. 시 공직 사회 내에는 이런 분위기에 편승해 알게 모르게 대충주의와 보신주의가 똬리를 틀고 있다는 비판이 곳곳에서 나온다.
하나를 들어 전체를 거론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할 수도 있지만 역으로 하나를 통해 다른 열 가지를 알 수도 있다. 부산 시정이 점점 시민들의 삶과 동떨어지고 있다는 지적은 박형준 시장의 8기 임기 후반부를 맞아 더 많이 제기될 가능성이 있다. 최근 드러난 시정의 여러 난맥상은 이의 전조일 수 있다. 지역에선 벌써 박형준 시장의 3선 도전설에다 대권 도전설까지 온갖 확인되지 않는 말들이 들린다. 하지만 시장 임기는 2년이나 더 남았고 시민들의 삶은 여전히 가시밭길이다. 미덥지 않은 말에 솔깃하기보다는 시민들의 삶에 더 천착하는 모습이 지금으로선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러다 보면 부산에도 울산처럼 좋은 소식이 자연스레 오지 않을까.
2024-09-12 [1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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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명섭 칼럼] 인기 시들한 파리 올림픽, 한국은 또 서울 올림픽?
2024 파리 올림픽이 점차 종반전을 향하고 있다. 애초 역대 최약체라는 평가를 받던 우리나라 선수단은 막상 뚜껑을 열고 보니 그게 아니었다. 초반부터 금메달 낭보를 전하며 국민들에게 폭염 대피소 같은 역할을 했다. 국민들도 우리 선수단의 계속되는 선전에 파리 올림픽을 더 자주 대화의 소재로 삼는 모습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반적으로 올림픽에 대한 관심은 갈수록 시들해지는 추세다. 시대와 세대가 변하면서 한때 전 세계인이 열광하던 올림픽은 점점 과거의 일이 되고 있다. 올해 파리 올림픽은 이를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최근 구글 트랜드에 따르면 올림픽에 대한 전 세계의 7월 검색량은 24로, 하계 올림픽 기준 역대 최저치였다고 한다. 검색량이 가장 많을 때를 100으로 한 것인데, 2008년 이후 매년 그 수치가 뚝뚝 떨어지고 있다. CNN방송도 파리 올림픽 개막식을 시청한 미국인은 1700만 명으로, 역대 가장 적었던 2016년 리우 올림픽 개막식보다도 무려 36%나 줄었다고 밝혔다.
이 같은 흐름은 우리나라도 다르지 않다. 한국갤럽이 올림픽 직전 시행한 여론조사를 보면 파리 올림픽에 관심이 간다는 응답자의 비율은 53%에 불과했는데, 실제로 파리 올림픽 개막식의 지상파 3사 시청률은 0.6~1.4%로 역대 최저치였다. 저조한 관심으로 인해 일부에선 조만간 올림픽이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말까지 나올 정도다.
겉으로 드러난 수치가 아니라도 올림픽은 국제올림픽위원회(IOC)의 도를 더해 가는 상업주의에다 자기중심의 개인주의 성향의 강화로 점점 대중의 주목을 받지 못하고 있다. 국위 선양, 집단주의 등 과거에 통용됐던 올림픽의 의미는 이제 갈수록 찾아보기 어렵다. 국민들도 그렇지만 직접 경기에 나서는 선수들도 애국심 등 국가주의적 관점보다는 자기 명예나 자아실현에 더 가치를 둔다.
세계인의 관심도 저하는 IOC 처지에서는 가장 주요한 수입원인 방송중계권이나 기업의 협찬 감소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안 그래도 IOC의 지나친 상업주의에 대한 반감이 적지 않은 상황에서 지금과 같은 흐름은 올림픽 개최 자체가 바로 그 개최 도시에 커다란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게다가 올림픽 개최를 통한 경제적인 흑자 달성은 갈수록 더 어려워지고 있다. 친환경 올림픽을 표방하며 경기장 건설 등에 대한 시설 투자를 최대한 줄이고 줄인 파리 올림픽조차 간신히 흑자를 낼 정도라고 하니 ‘올림픽 퍼주기’를 작정하지 않는 이상 앞으로 대회 개최는 더욱 신중하지 않을 수 없다. 이미 알려져 있듯이 올림픽 개최에 따른 손실은 1976년 몬트리올 올림픽이 약 57억 달러, 2012년 런던 올림픽이 약 52억 달러, 2004년 아테네 올림픽이 약 43억 달러였다고 한다. 특히 아테네 올림픽의 경우 개최국인 그리스의 재정 부담이 너무 커 2015년 국가채무 불이행 선언의 한 요인이 됐다. 올림픽 개최는 이처럼 그리 만만하게 볼 사안이 아니다.
이런 현실에서 최근 2036년 하계 올림픽 유치전에 뛰어든 서울시의 행보를 놓고 갑론을박이 이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하다고 하겠다. 서울시는 조만간 정부에 개최계획서를 제출할 예정이라고 한다. 이미 올림픽을 치른 경험이 있고 기존 시설을 리모델링하면 국고 투입도 최소화할 수 있다는 점을 주요 강점으로 들고 있다.
이런 요인을 굳이 따지지 않더라도 지금 대한민국에서 어떤 분야라도 서울을 능가할 곳은 없다. 지금은 물론이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하지만 서울에서 또 올림픽을 개최한다면 지방에 있는 국민의 심정은 어떨까. 안 그래도 서울을 포함한 수도권 집중으로 나라가 망해가고 있다는 진단과 분석이 곳곳에서 속출하는 상황이다. 2036년 올림픽을 유치한다면 서울보다 먼저 지방을 염두에 두는 게 맞는다. 여건만 놓고 본다면 서울만 한 곳이 없고 또 모든 게 열악한 지방의 역량으로는 올림픽 개최를 감당하지 못할 것이라고 주장할 수 있다. 그렇지만 따지고 보면 1988년 서울 올림픽도 오롯이 서울의 힘만으로 이뤄진 것은 아니다. 국가의 역량을 총동원한 거국적 행사였음은 모든 국민이 아는 사실이다.
올림픽에 대한 인식 변화를 무릅쓰고 다시 이를 유치하려고 한다면 모든 여건이 포화 상태인 서울 개최는 국가 전체적으로 커다란 의미를 찾기도 어렵다. 차라리 서울보다는 지방을 개최지로 선택해 지방 살리기의 대전환으로 삼는 것이 당면한 국가적인 대의에 훨씬 더 부합한다. 36년 전 서울 올림픽이 한강의 기적을 전 세계에 과시한 것처럼 다시 올림픽을 유치한다면 이는 위기에 처한 지방 부활의 대전환점으로 각인돼야 할 것이다. 향후 정부의 검토 과정에서 이 부분은 핵심적인 사항으로 다뤄져야 한다.
2024-08-08 [17: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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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명섭 칼럼] “대통령 탄핵 청원” 국민들의 아우성
또 ‘대통령 탄핵’이라는 용어가 공식적으로 정치권 한복판에 등장했다. 그것도 현 정권의 임기가 정확히 절반을 넘지도 않은 때에 국민들의 청원으로 이슈가 됐다. 박근혜, 문재인 전 대통령에 이어 윤석열 대통령도 탄핵이라는 용어와 엮이는 불명예스러운 꼬리표를 달게 됐다.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을 발의해달라는 국회의 국민동의 청원 참여자가 3일로 100만 명을 넘어선 것은 국민들의 집단 정치적 의사 표현으로 그 함의가 매우 복합적이다.
윤 대통령에 대한 탄핵 청원은 지난달 20일 공개된 지 사흘 만에 5만 명을 넘어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로 회부됐지만 사실 그 시점만 해도 대다수 국민은 이런 청원이 있는지조차 잘 몰랐다. 그런데 윤 대통령이 ‘이태원 참사 조작 가능성’을 언급했다는 김진표 전 국회의장의 회고록 내용이 공개된 이후 청원 참여가 급증하며 13일 만에 100만 명을 훌쩍 넘었다. 대기 인원이 몰리면서 서버 증설을 할 정도로 청원 사이트는 북새통을 이뤘다. 지금도 많은 인원이 대기 중인 점을 고려하면 청원 마감 시한인 오는 20일에는 그 수가 더욱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아직 정확히 임기 전반기를 마치지도 않은 윤 대통령이 한창 국정의 동력을 정점으로 끌어올려야 할 시기에 100만 명이 훨씬 넘는 많은 국민이 대통령 탄핵 청원에 동참했다는 것은 정략적 관점을 떠나 매우 걱정되는 상황이 아닐 수 없다.
물론 탄핵 청원은 그 숫자가 아무리 많다고 해도 이것만으로 탄핵의 효력이 발생하지는 않는다. 국민들의 탄핵 청원은 국회 청원심사소위원회로 넘겨져 여기서 법안 반영·청원 취지의 달성·실현 불능·타당성 결여 등 여부가 종합적으로 검토된다. 현재로선 대체로 청원소위나 법제사법위에 장기 계류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무엇보다 탄핵은 국민 청원이 아니라 현역 국회의원 3분의 2의 동의가 있어야 첫 관문을 통과할 수 있고 거기다 헌법재판소의 결정도 거쳐야 한다. 이 모두를 관통하는 핵심 조건은 대통령의 명백한 위법 행위가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하지만 지금은 탄핵 카드를 만지작거릴 만한 대통령의 위법 행위가 딱히 없다는 점은 더불어민주당 등 야권도 어느 정도 인정하는 부분이다. 대통령실이 밝힌 “명백한 위법 사유가 있지 않는 한 탄핵이 가능하다고 보지 않는다”는 입장도 결국 법률적인 측면에 본 관점인 것이다.
그러나 100만 명 이상이 동참한 탄핵 청원을 대통령실의 언급처럼 단순히 법률적 측면에서만 보는 관점은 현 정권의 불통 이미지만 더 굳게 할 수 있다. 청원에 참여한 100만 명이 넘는 국민들도 청원 자체만으로 대통령의 탄핵 절차가 진행되리라고 여긴 것은 아닐 터이다. 무엇이 이토록 급속하게 민심의 불길을 댕겼는지 생각해 봐야 한다. 현 정부가 들어선 2년여 동안 쌓이고 쌓인 국민들의 불만이 탄핵 청원으로 응결된 것이라고 보는 게 마땅하다.
이번 탄핵 청원의 과정을 보면 짐작할 수 있다. 처음엔 크게 주목받지 못했던 청원은 김진표 전 의장의 회고록 내용 공개가 불쏘시개 역할을 하면서 순식간에 확 타올랐다. 이는 매우 중요한 시사점을 던져 준다. 윤 대통령의 지지율이 20%대 바닥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지금 상황은 국정에 불만인 민심이 매우 불타오르기 좋은 때다. 곳곳에 바싹 마른 풀과 나무가 널려 있는 상태와 같다. 한 번의 작은 불쏘시개로도 온 산을 금방 불타오르게 할 수 있는 것처럼 낮은 지지율의 윤 대통령 사정도 크게 달라 보이지 않는다. 그런데도 작은 불씨가 큰 불길로 번지지 않도록 민심을 달래려는 노력을 현 정권에선 아직도 볼 수 없다.
문재인 전 대통령의 탄핵 청원이 146만 명에 달했던 2020년 2월 당시, 청와대는 “어느 의견도 허투루 듣지 않고 겸허히 받아들이겠다”며 자세를 한껏 낮췄다. 탄핵 청원에 반대하는 청원도 150만 명을 넘어 탄핵 동의자보다 많았다. 같은 탄핵 청원이라도 지금과는 상황이 아주 달랐다.
현 정권은 총선 참패와 계속되는 낮은 지지율에도 민심 관리에는 거의 손을 놓고 있는 모습이다. 그러는 사이 민심은 정권으로부터 갈수록 멀어지고 있다. 정가에서는 이번 탄핵 청원 역시 윤 대통령은 크게 신경 쓰지 않을 것이라는 의견이 많다. 법률적인 측면은 물론이고 국정 방향이 옳다고 믿는 신념은 더 강고해졌다.
그러나 이번 탄핵 청원은 국민들이 직접 행동으로 나서 의사 표현을 했다는 점에서도 그 무게감은 남다르다. 법률적인 실효는 없더라도 정치적인 파급력은 상당하다. 야권의 탄핵 시도도 더 노골화될 가능성이 높다. 이미 제시된 해법은 놔두고 자꾸 사면초가의 외진 곳으로만 가려는 듯한 현 정권의 모습이 안타깝기만 하다.
2024-07-04 [1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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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명섭 칼럼] 돌아오지 않는 민심
집권 3년 차에 들어선 윤석열 대통령의 지지율이 취임 이후 최저치를 기록했다고 한다. 지난달 31일 한국갤럽이 여론조사를 통해 발표한 수치다. 윤 대통령의 직무수행에 대한 긍정 평가는 21%로 취임 이후 가장 낮았다. 4·10 총선 전까지 30% 초반에 머물다 총선 이후 두 달째 20% 초반대다. 반면 부정 평가는 70%로 최고치다. 대통령은 지지율에 연연하지 않는다고 했으나 이렇게 지지율이 밑바닥이면 대통령의 말발도 잘 먹히지 않는다. 국정 동력도 생길 리 없다. 유승민 전 의원은 “충격적인 수치”라며 “10%대로 떨어지지 않았으면 좋겠지만 그럴 가능성이 있다”고 우려했다.
대통령은 총선이 끝나고 엿새 뒤 국무회의에서 “더 낮은 자세와 유연한 태도로 더 많이 소통하고 저부터 민심을 경청하겠습니다”라며 자세를 낮췄다. 그런데도 여전히 민심은 차갑다. 차가운 민심 위에선 어떤 정책도 생명력을 갖기 어렵다. 현 정권을 지지하든, 하지 않든 간에 국정 불안감이 싹트지 않을 수 없다.
원인이야 많은 국민이 벌써 짐작하는 바다. 총선 전과 비교해 ‘하나도 바뀌지 않았다’는 것이다. 말과 행동은 여전히 서로 겉도는데 고집은 외려 더 단단해졌고 행동은 또 거침이 없다. 총선 이후만 보더라도 이런 사례는 한둘이 아니다. 최근 대통령실 개편 때 박근혜 전 대통령의 최측근인 ‘문고리 3인방’ 중 정호성 전 비서관을 발탁한 일은 여권 인사들까지 고개를 갸우뚱하게 했다. 국정 농단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한 터에 예전 본인이 수사했던 사람을 기용하니 국민들이 당황할 수밖에 없다.
이에 반해 내각의 진용 개편은 더디기만 하다. 총선 다음 날 사의를 표명한 국무총리와 대통령실 비서실장의 후임은 감감무소식이다. 22대 국회 개원이라는 변수와 후임 인선의 어려움을 감안하더라도 내각 수반과 대통령실 총괄 책임자가 사의 발표 두 달이 되도록 여전히 그대로인 점은 국정 운영의 긴장감을 생각할 때 바람직하지 않다. 5일 일부 부처 장관의 교체 검토 소식이 나왔지만 관가에선 공무원의 업무 수행 열의가 예전 같지 않다는 소리가 들린다. 복지부동, 무기력증이 심각하다는 얘기마저 나온다. 정권의 지지율이 떨어질 때면 어김없이 나타나는 관가의 모습이다. 최근 불거진 해외 직구 금지 논란, 연구개발 예산의 삭감과 부활, 노동시간 주 69시간제 도입을 둘러싼 혼선과 같은 일이 그냥 생긴 일이 아닌 것이다. 모두 국정의 신뢰성을 훼손하고 대통령과 민심을 유리되게 하는 요인이다.
민심은 시계의 추에 비유할 수 있다. 대통령이 이미 언급한 것처럼 더 낮고 유연하게 그리고 여기에 덧붙여 진중하게 행동하면 다시 돌아오는 게 민심이다. 그런 점에서 지난 3일 대통령의 동해 유전 가능성 직접 발표는 적잖은 아쉬움이 남는다. 생색낼 때는 대통령이 나서고 책임져야 할 상황에선 발을 빼는 모양새가 되어선 안 된다는 말이다. 석유 매장 사실이 최종 확정된 것도 아니고 탐사·시추 계획 승인을 굳이 대통령이 직접 발표할 만큼 ‘중요한 사안’이냐는 지적이다. 괜히 대통령이 나서는 바람에 또 뜻하지 않는 논란만 불거지는 판이다. 차라리 담당 장관에게 맡겨 놓고 대통령실은 이를 지원하겠다는 정도의 언급이 나왔다면 훨씬 나았을 듯싶다. 어떻게든 대통령을 띄우고 싶은 참모들의 과욕이 빚은 일로 생각된다.
아직 확정되지도 않은 일에 이처럼 대통령을 내세우면 반대로 곤란한 일에 대한 책임 역시 비례적으로 부각될 수밖에 없다. 당장 해병대 채 상병 사망 사건 수사 과정에서 대통령과 당시 국방부 장관 사이의 통화 여부에 대한 국민과 야권의 진실 규명 요구가 빗발치는 데서도 충분히 알 수 있다. 결국 이런 사례의 반복이 계속 대통령의 지지율을 빠지게 한다. 최종적으로 대통령과 대통령직에 대한 무게감만 훼손될 뿐이다.
대통령과 대통령직의 무게감이 이런저런 요인으로 갈수록 약해진다면 국민도, 나라에도 좋을 게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많은 국민은 안다. 이는 정략의 문제가 아니다. 4·10 총선에서 압승한 야권 일부에서 마치 유행어처럼 ‘탄핵’을 들먹이지만 국민들이 여기에 크게 의미 있는 반응을 보이지 않는 것도 이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고 대통령이 지금과 같은 국민의 낮은 지지율을 무심하게 여겨서는 안 된다. 윤 대통령에겐 아직도 3년 가까운 임기가 남았다. 계속 낮은 지지율로 남은 임기를 보내는 것은 많은 정치적 실패와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는 말과 같다. 108석의 여당이 언제까지 든든한 우군이 되어줄지는 모르겠지만 대통령 스스로 민심을 확보하는 것에는 비할 바가 아니다. 이미 해결책은 알다시피 많이 나와 있다.
2024-06-06 [1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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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명섭 칼럼] 22대 국회의원의 십계명
지난 4·10 총선으로 정치권 제 세력 간 위상이 결정된 이후 관심은 자연스레 제22대 국회로 집중된다. 국민들은 새롭게 형성된 정치 구도가 잘 작동할는지 걱정스러운데 정치권 제 세력 간에는 벌써 경쟁과 견제의 분위기가 물씬하다. 특히 더불어민주당보다 더 현 정부와 정치적 대립각을 세우고 있는 조국혁신당의 약진으로 22대 국회는 21대보다 정치적 풍랑과 격동이 더할 것이라는 예측도 많다. 22대 국회의 앞날이 순탄하지만은 않으리라는 얘기인데 국민들이 또 정치 걱정을 해야 할 판이다.
이런 상황에서 최근 조국혁신당 조국 대표가 윤석열 대통령을 향해 이른바 ‘십계명’을 촉구하고 이에 반박해 대통령취임준비위원회 대변인 출신의 김연주 시사평론가가 조국 대표에게 ‘오계명’을 제시하면서 서로 십계명 또는 오계명 형식의 요구 사항을 경쟁적으로 내놨다. 조국 대표가 제시한 십계명은 몇 가지 특검법의 수용과 민생 회복 및 과학기술 예산 복원, 야당에 대한 표적수사 중단 등 정치적 사안부터 대통령의 음주 자제, 극우 유튜브방송 시청 중단 등 사적인 것까지 다양한 요구 사항을 담았다.
이에 반격한 김연주 시사평론가의 오계명은 2심 재판부의 징역 2년 실형 선고에 대한 조국 대표의 입장과 대국민 사과, 대통령과의 만남 조르기 금지와 같은 정치적 성격부터 SNS 과다 사용 금지, 컴퓨터 스킬을 이용한 특정 목적 문서의 작성 자제, 웅동학원의 사회환원 약속 실천을 담았다. 사법부의 최종 판단을 앞둔 조국 대표의 사법 리스크 등을 꼬집은 것이다.
윤 대통령을 향한 십계명이나 조국 대표에 대한 오계명이나 모두 총선으로 변화된 정치 구도를 투영한 것으로 일견 경청할 만한 내용이 없지는 않아 보인다. 상대를 몰아세우려는 의도가 뻔히 들여다보인다고 해도 스스로 성찰하는 데 도움이 된다면 굳이 마다할 필요는 없다.
마찬가지로 의정 활동의 꿈에 부풀어 있을 22대 국회의원에 대해서도 십계명을 생각해 볼 수 있겠다. 십계명으로 이름을 붙인다고 해서 거창한 내용만 있는 건 아닐 테다. 지난 선거 과정에서 다양하게 분출된 민의의 최대공약수가 그 바탕이다. 이런 관점에서 22대 국회의원의 십계명을 고려해 본다면 당연한 사항을 조금 정제해서 말하는 정도가 될 것이다. 참고할 만한 십계명은 이미 몇 가지가 나와 있다.
2020년 4·15 총선을 앞두고 가나안농군학교장 김평일 장로가 제시한 십계명이 있는데 주요 내용은 이렇다. 윤리, 도덕, 가정생활의 모든 일에 모범이 되고 인성이 바로 된 사람, 사리사욕이나 당리당략보다 나라와 국민을 위해 일하는 사람, 겸손하고 희생정신을 가진 사람, 정치 입문 당시 초심의 자세로 일하는 사람을 열거하면서 인성과 초심을 우선하여 강조했다. 이어 자존심을 버리고 일꾼의 자세로 항상 연구·노력하는 사람, 100년이 지난 후에도 잘했다는 칭찬을 받는 사람 등 의정 활동의 자세까지 성직자다운 내용을 담았다.
정치권에서도 스스로 부과한 십계명의 사례가 있다. 2016년 1월 당시 더불어민주당 내 소장파 의원들로 구성된 뉴파티위원회가 표방한 ‘거부 십계명’이 그것이다. 정치 불신을 조장하는 막말 거부, 보통 사람들이 알아듣지 못하는 정치방언 거부, 보좌진이나 공무원 막 대하기 등 정치갑질 거부, 선거 때만 얼굴 비추고 끝나면 외면하는 속물정치 거부, 돈 있고 힘 있는 사람들과만 밥 먹고 소통하는 행위 거부, 패권정치와 진영논리 거부 등이 주요 내용이다. 정치인답게 의정 활동에 기반한 십계명으로, 지금 그대로 원용하더라도 괜찮은 내용이다. 당시 십계명에 동참한 의원들이 이를 얼마나 명심하고 잘 지켰는지는 알 수 없다. 다만 스스로 십계명을 추출해 명시적으로 밝히고 이를 의정 활동의 나침반으로 삼겠다고 다짐한 점은 평가받을 수 있는 대목이다.
22대 국회의원 당선자들도 지금쯤 스스로 십계명을 고려해 볼 때다. 선거 기간 본인이 내뱉었던 수많은 공약과 다짐, 선언을 정리해 매일 되새기면서 스스로 각인되도록 해야 한다. 그게 지난 총선 기간 밑도 끝도 없는 온갖 말들을 짜증과 피곤함 속에서도 묵묵히 들을 수밖에 없었던 유권자들에 대한 도리이다.
십계명이든 오계명이든 어떤 형식으로라도 임기 시작 전 공복으로서 최소한의 자기규정을 엄격하게 세운다는 의미는 본인은 물론 유권자들에게도 매우 특별하게 다가올 것이다. 공약 실현과 의정 활동의 각오부터 현안 처리에 대한 나름의 기준까지 각자 처지에 맞춘 다양한 내용을 포함해도 좋겠다. 대수롭지 않게 여길 수도 있겠으나 일단 한 번 시도해 본다면 분명히 그 전과 이후의 차이는 스스로 확연해지리라 여겨진다.
2024-04-30 [1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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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명섭 칼럼] 정부와 싸워도 국민에 모멸감 줘선 안 돼
정부의 의대 증원 확정 발표 이후 의정 갈등이 다시 증폭되는 양상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전공의들에 대해 유연한 대처를 주문하면서 출구가 마련되는가 했지만 의료계의 증원 전면 백지화 요구와 의대 교수들의 사직서 제출이 이어지면서 대화 분위기는 원점으로 돌아갔다.
지난달 전공의의 병원 이탈로 시작된 의료 대란 이후 의사들의 강력한 단일 대오의 위력을 새삼 실감하게 됐다. 우리 사회의 여러 분야 중 이처럼 수십 일간 정부와 맞서면서도 여전히 기세등등할 수 있는 직역이 또 있을까. 아마 없을 것이다. 국민들은 “의사들이니까 저렇게 정부와 맞장을 뜨지, 다른 직역이었다면 어림도 없었을 것”이라고 여긴다. 이쯤 되면 전 의사협회장이 의료 대란 초기 “정부는 의사를 이길 수 없다”라고 했던 자신감이 빈말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증원 발표 이후 정부는 대통령부터 총리, 장관까지 의료계와 대화를 시도하고 있다. 그러나 의료계는 정부의 대화 제의가 진정성이 없거나 기만술일지도 모른다는 의구심을 떨치지 못한다. 그동안 대화 노력이 없다가 증원 발표 이후 느닷없이 대화 제의를 한 정부의 순수성을 의심하는 듯하다.
그런데 대통령의 유연한 대처 주문 이후 정부가 처벌이라는 수단을 일단 내려놓고 여당에서도 출구 전략을 촉구하면서 사태의 주도권이 의료계로 기우는 듯한 양상이다. 특히 차기 회장을 결정한 의협이 지난 27일 대통령에게 의대 증원 결정을 직접 철회할 것을 요구하고 새 회장으로 선출된 당선자는 더 나아가 복지부 장·차관의 파면과 대통령의 사과까지 주장하며 발언 강도를 더 끌어올렸다.
정부에 대한 불만이 얼마나 쌓였길래 저러나 싶으면서도 한편으론 이런 강경 발언을 듣는 국민은 안중에도 없다고 여기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특히 의협 회장 당선자는 선거 기간 중 “의대 정원을 지금보다 500~1000명 더 줄여야 한다”며 의대 증원을 대체로 지지하는 국민 여론과 정반대의 주장을 펼쳤다. 국민의 바람은 외면하고 오직 의사들의 직역 이익에만 골몰한다는 비판을 받을 수밖에 없는 언급이다. 열흘 이전의 발언이기는 하지만 “의협 회장에 당선되면 의사 총파업을 주도하겠다”는 언급도 국민들을 아연실색하게 만든다.
이 같은 강경 발언은 의사들의 내부 결속을 위한 것이겠지만 이를 듣는 국민들은 열패감과 모멸감의 씁쓸함을 감출 수가 없다. 어떻게든 정부와 의료계가 마주 앉아 해결책을 모색하기를 학수고대하는 국민들과는 갈수록 괴리되는 발언이다. 지금은 정부와 싸우는 의사들만 신경이 예민해져 있는 게 아니다. 국민들도 매우 피곤하고 감정이 예민해져 있는 상태다. 환자나 환자 가족의 경우는 말할 필요조차 없을 것이다. 국민들의 이런 정서를 의료계도 헤아려야 한다.
국민들의 심사를 불편하게 하는 언사는 또 있다. 의료 대란 초기 ‘의사 불패’를 언급했던 전 의협 회장이 대통령의 전공의에 대한 유연한 대처 지시를 놓고 “이젠 웃음이 나온다. 제가 그랬죠. 전공의 처벌 못 할 거라고…”라고 비꼰 것도 마찬가지다. 앞서 전공의들이 병원을 이탈한 뒤 “이런 나라가 싫어 용접을 배우고 있다”, “포도 농사를 짓겠다”와 같은 우월감이나 특권 의식이 묻어 나는 발언도 국민 사이에 위화감만 일으켰다. 곧바로 대한용접협회가 “의사들이 용접을 우습게 보는 듯하다”며 유감을 표하면서 모양만 구겼다.
여기다 병원에 남아 있는 생각이 다른 공보의를 조롱한다든지, 대학병원에 투입되는 군의관, 공보의들에게 태업을 종용하는 지침 등은 누가 봐도 국민들의 정서에 정면으로 반하는 행위가 아닐 수 없다. 아무리 정부와 갈등을 빚고 있더라도 이런 식으로 대응하는 것은 결국 의사들의 고립만 자초할 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특히 지역·필수의료 강화의 한 방편인 지역의사제는 지역의 오랜 염원임을 알아야 한다. 그 전제가 의대 증원이다. 충분한 논의 없이 일방적으로 강행한다며 의협은 반발하지만 큰 틀에서 이를 위한 의대 증원을 미룰 수 없다는 국민적 공감대는 확고하다. 이미 경상국립대는 전국 처음으로 올해 입시부터 의대 정원의 5% 수준인 10명가량의 지역의사 전형 도입 계획을 밝혔다. 그 과정에 어려움이 있다면 이 때문에 제도를 철회하는 것보다는 보완해 나가는 것이 더 지역민의 이익에 부합할 것이다.
어쨌든 지금은 사태의 책임이 있는 정부가 의료계 설득 등 돌파구를 찾아내야 한다. 그리고 의료계도 정부와 싸우더라도 그 사이에 낀 국민들의 마음까지 아프게 해서는 안 될 것이다. 고통을 겪고 있는 쪽은 지금 국민들이 가장 심하기 때문이다.
2024-03-28 [1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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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명섭 칼럼] 한국 축구대표팀과 세계탁구선수권대회
64년 만에 우승을 노렸던 2023아시안컵 축구대회에서 망신당한 한국 축구대표팀을 둘러싼 논란이 아직도 그치지 않고 있다. 대표팀을 성원했던 국민들은 깊은 허탈감에 빠졌고, 이를 수습해야 할 대한축구협회가 보여준 일 처리 역시 실망감을 주기는 마찬가지다. 선임 1년 만에 경질된 위르겐 클린스만 감독이 자신의 책임은 인정하지 않은 채 이를 선수들에게 떠넘기는 듯한 태도를 보인 것이나 이런 감독을 두둔하는 듯하다가 마지못해 손절매하듯 자른 축구협회의 우렁잇속 같은 조처도 국민들의 불쾌지수를 높였다.
선수들도 예외는 아니다. 경기의 승패야 그렇다고 쳐도, 중요한 시합 전날 화합은커녕 선후배 간 서로 핏대를 올리며 대거리한 일이나 이후 감독에게 몰려가 특정 선수의 출전 제외를 요구한 것 모두 하나같이 하극상의 관점에선 다를 바가 없다. 한 마디로 대표팀이 복마전 같다고 느끼게 할 만하다. 대표팀 내부의 추태는 국민들에게 한국 축구를 다시 생각하게 하는 계기가 됐을 것이다.
한국 축구대표팀의 이러한 추태는 대표팀에 쏟아지는 분에 넘치는 대접에 기인한 바 크다고 할 수 있다. 수십 개에 달하는 스포츠 종목의 대표팀 가운데 축구대표팀이 누리는 국민적인 인기와 대접은 다른 종목과는 차원이 다르다. 다른 종목이 올림픽에서 메달을 많이 획득하면 으레 ‘효자 종목’이라고 치켜세운다. 그런데 효자 종목의 의미가 묘하다. 평소에는 있는 듯 없는 듯하다가 올림픽 때만 되면 많은 메달을 국가에 안겨 주고 대회 이후엔 다시 예전처럼 존재감이 희미해지는 종목을 효자 종목으로 부른다고 한다. 물론 실없는 사람의 우스갯소리에 지나지 않지만 뒷맛이 씁쓸함은 부인할 수 없다.
그러나 축구는 그렇지 않다. 축구대표팀이 월드컵 16강에만 진출하면 온 나라가 열광의 도가니에 빠진다. 대표팀 선수들은 ‘영웅’이 된다. 그로부터 축구계와 대표팀의 특권 의식은 싹트고 점점 이런 대접을 당연한 양 여긴다. 그게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실제로 올림픽과 같은 종합 대회가 열릴 때마다 축구대표팀은 별도로 움직인다고 한다.
아시안게임이나 올림픽 때 한국선수단은 대한체육회가 마련한 전세기로 움직이는데 여기에 유일한 예외가 축구대표팀이다. 현지에 도착해서도 다른 선수단과 함께 선수촌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시내의 최고급 호텔을 숙소로 사용한다. 이는 대한축구협회의 재정이 넉넉하기 때문이다. 재정이 넉넉한 만큼 다른 종목보다 여유롭게 이동하고 지내는 것이 잘못이냐고 반문할 수도 있지만 다른 종목의 선수라면 분명 위화감을 느낄 수밖에 없을 터이다. 태극 마크라도 같은 태극 마크가 아니었던 것이다.
종목에 따라 이처럼 보이지 않는 차별을 완전히 없앨 수야 없겠으나 이를 대놓고 드러내는 방식은 이제 지양할 때도 됐다. 관심과 투자에 따라 인기가 들쭉날쭉하다고 해도 대표팀 선수들의 땀과 열정에 층차를 두는 일은 없어야 한다. 이를 생각하면 현재 부산 벡스코에서 오는 25일까지 진행되는 2024부산세계탁구선수권대회가 중복된다. 그런데 씁쓸하기도 하고 애잔하기도 하다. 탁구로서는 세계 최고 권위의 대회이고 참여 선수도 40개국 2000명에 달한다. 관람객만도 5만 명에 이를 정도로 세계 탁구인들의 관심이 집중되는 행사임에도 국내의 관심과 열기는 기대만큼 후끈하지 않다. 부산지역 외 다른 언론 매체에선 대회 소식조차 찾기 어렵다. 오히려 아시안컵 축구대회에서 대표팀 일부 선수의 탁구 게임이 내분 폭발의 발단이 됐던 측면만 부각되면서 이번 탁구대회가 희화화의 소재가 되고 있으니 쓰린 입맛이 더 쓴 듯하다.
아무래도 축구가 아닌 탁구이다 보니 안팎에서 마이너 종목의 설움을 피할 수가 없다. 게다가 대회 개최지도 서울이 아닌 부산이어서 그런지 수도권 효과를 타지 못하는 측면도 있지 싶다. 어느 분야든지 한쪽 쏠림 현상이 유달리 심한 우리나라 특유의 고질이 스포츠 종목에서도 어김없이 되풀이되는 모습을 생생하게 확인할 수 있다.
단시간에 이런 고질이 사라지기를 기대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렇다고는 해도 스포츠 종목이든 지역이든 그 분야에서 압도적인 인기나 비중을 누리는 쪽이 좀 더 겸손하고 낮은 자세를 지녀야 한다. 윤리의 측면이 아니라 지속 가능한 자기 생존을 위해서는 그래야 한다. 지금 스포츠에서는 축구가 그런 존재이고 국가적으로는 수도권이 이에 해당한다.
고대 그리스 윤리·종교 사상에 자만 또는 교만을 뜻하는 ‘휴브리스(hubris)’라는 말이 있다. 다양한 버전으로 인용되고 있지만 요즘에는 자기 과신이나 오만으로 인해 스스로를 망치는 의미로도 사용된다. 근래 우리나라 축구계나 수도권을 보고 있으면 이 말이 뇌리에서 떠나지 않을 때가 많다.
2024-02-22 [1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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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명섭의 플러그인] 깜깜이 사회
문명사회의 특징 중 하나를 들자면 다양한 정보의 공유를 꼽을 수 있을 것이다. 사실 지금은 개인용 기기를 통해 지구촌 곳곳의 생생한 정보를 거의 실시간으로 접할 수 있다. 보통 사람으로서는 신기하면서도 또 한편으론 놀랍기도 하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면 이는 생산된 정보가 유통되는 현상에만 주로 해당할 뿐이다. 정보를 생산할지 말지, 이어 생산된 정보를 공개할지 등은 여전히 생산자의 의중에 달려 있다. 일반인이 접하는 정보는 결국 가공되거나 통제된 정보라고 할 수 있다.
그 이전 단계까지는 절대적으로 생산자가 ‘갑’이다. 정보 생산의 영역에 있고, 생산된 정보를 공유해야 할 주체가 이를 내팽개치면 그다음 단계는 깜깜이 상태가 될 수밖에 없다. 이런 일이 국가 차원에서 벌어진다면 그 나라는 깜깜이 상태라고 해도 크게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지금 우리 정치권이 바로 이런 일을 벌이고 있다. 내년 4월 10일 치러지는 국가적 대사인 22대 국회의원 선거를 아예 깜깜이 선거로 만들고 있는 것이다.
이미 12일부터 선거에 나설 예비후보자들의 등록이 시작되면서 4·10 총선은 막이 올랐다. 그동안 정치권 혁신을 바라는 열망이 높았던 만큼 국민의 관심도 매우 높다. 그런데 총선의 서막이 올랐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선거구 획정이나 비례대표 국회의원을 뽑는 방식은 확정된 게 없다. 그저 설왕설래만 가득하다. 헌법 기관으로 4년간 국정 운영을 책임지는 국회의원을 뽑는 국가 중대사가 이렇게 뒤죽박죽이다.
지금 국회를 양분하고 있는 거대 양당이 선거구 획정과 비례대표 선출 방식을 둘러싼 이견 줄이기에 크게 신경을 쓰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선거 기득권이 현역 의원들에게 있다 보니, 굳이 급하게 서두를 이유가 없는 것이다. 다른 안건에는 손톱만 한 이익을 두고도 싸우는 거대 양당이 여기에는 서로 이심전심이다.
정치 신인들은 죽을 맛이다. 한마디로 캄캄한 밤중에 등불도 없이 길을 나서는 것과 같은 꼴이지만, 억울해도 현역 의원들이 규칙을 정할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무소불위의 기득권을 가진 이런 현역 의원들의 목에 아무도 방울을 달 수 없는 게 지금 우리의 현실이다. 정치 신인들은 이로 인해 선거사무소 설치는 물론 얼굴이나 이름이 적힌 홍보 현수막도 내걸 수가 없다. 유권자는 자기 지역에 누가 나오는지 알 수 없다. 정치의 계절, 유권자의 계절이 왔지만, 모두가 깜깜할 뿐이다.
온갖 비난에도 불구하고 이런 일은 거의 매번 총선 때마다 되풀이된다. 선거 때만 다가오면 여야의 기존 정치권력들은 총선 정국을 깜깜이 상태로 몰아넣는다. 선거일 1년 전까지 국회의원 지역구를 확정해야 한다는 공직선거법은 있으나 마나다. 여야 정당 어느 데서도 신경 쓰지 않는 유령의 법이나 마찬가지다. 그러는 동안 국민의 참정권과 피선거권은 깜깜이 상태에서 길을 잃을 수밖에 없다.
선거구 문제만 그런 게 아니다. 11일부터 시작된 임시국회 역시 깜깜이 상태를 벗지 못할 것이라는 예상이 지배적이다. 핵심인 내년도 예산안 처리부터 더불어민주당이 예고한 이른바 ‘대장동 50억 클럽 의혹’과 ‘김건희 여사 주가조작 의혹’과 관련한 특검법안, 그리고 김 여사 일가 관련 서울-양평 고속도로 특혜 의혹을 포함한 3건의 국정조사 여부에 따라 이번 정기국회 역시 어디로 흘러갈지 오리무중이다. 안건 자체보다 이를 통한 내년 총선에서의 유불리 여부에만 거대 양당의 관심이 쏠려 있기 때문이다. 이들의 행위에 국민의 생활이 영향을 받는데도, 국민은 정작 일이 어떻게 흘러가는지 전혀 알 수가 없다.
우리가 국가적인 중대사에 대해 얼마나 깜깜이 상태에서 살고 있는지는 지난 월드엑스포 유치 결과를 봐도 짐작할 수 있다. 잘잘못 여부는 제쳐두고, 프랑스 파리에서 개표 결과가 발표되기 전까지는 국민 누구도 참담한 패배를 예상하지 않았다. 경쟁국인 사우디아라비아에서는 부산을 어떻게 평가했는지 몰라도, 대한민국에선 모두 끝까지 기대를 품었다. 흔히 말하는 것처럼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들어서 그런지는 알 수 없다. 다만, 우리가 그동안 깜깜이 상태에 있었다는 것만은 부인할 수 없어 보인다.
이러한 집단 깜깜이는 당장 국가적 역량을 갉아먹는다. 국민은 자신감 상실과 실망감, 분노와 같은 후유증에 시달려야 한다. 그런데 어디서도 그런 마음을 위로받을 데가 없다. 몇 마디 건네는 말을 진정한 위로라고 하기에는 마음의 상처가 너무 깊다. 진정한 위로는 다시는 유사한 일이 없도록 하는 것인데, 지금 그런 일에 앞장서야 할 정치권은 스스로 국민을 깜깜이 상태로 몰아넣고 있으니, 국민은 어디서 마음을 풀어야 할지 답답하기만 하다.
2023-12-12 [17: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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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명섭의 플러그인] 서울 메가시티와 자가당착의 시대
국민의힘 김기현 대표가 불쑥 내던진 경기도 김포시의 서울시 편입 추진을 놓고 목하 전국이 요란하다. 여야는 총선의 정략적 잇속 계산에 분주하고, 다른 대도시들은 이참에 ‘서울 메가시티’에 편승해 곁불이라도 조금 쬘 수 있을지 눈치를 보는 모습이다.
야권의 지적처럼 여당 대표가 국토 대개혁의 큰 틀에서 서울 메가시티 방안을 내놓은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제1당인 더불어민주당이 여기에 적극적으로 찬성 또는 반대 의견을 밝히지도 않았다. 그런데도 단박에 전국 이슈가 된 것은 그 대상이 다름 아닌 서울이기 때문이다. 다른 곳에서 같은 이슈가 제기됐다면 그냥 변방의 북소리로 묻혔을 것이다.
수도권과 양립하는 대칭축이자 지역 생존의 차원에서 추진한 동남권 메가시티가 무화되는 과정을 속절없이 지켜봐야 했던 부울경으로선 새삼 수도권의 공고한 위상에 입맛이 쓸 수밖에 없다. 기실 일이 이렇게 흘러가는 데는 우리나라 거대 양당의 자가당착적인 행태가 크게 한몫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더불어민주당의 경우 여당이 총선을 염두에 두고 불붙인 서울 메가시티 방안에 대해 아직도 당 차원의 찬반 언급이 없다. 이낙연 전 대표가 최근 “서울 메가시티 구상은 국가를 가분수로 만드는 도박”이라며 “균형발전이라는 국가 목표를 흔들고 있다”라고 비판했고, 같은 당의 김두관 의원도 “서울 확장에 균형발전으로 맞서야 한다”며 이재명 대표에게 분명한 반대 입장을 요구했다. 국가균형발전이라는 큰 틀에서 볼 때 시대 역행적인 행태라고 분명하게 못 박은 것이다. 그럼에도 이 대표는 묵묵부답이다.
사실 이 대표는 경기도지사 선거를 한 해 앞둔 2017년 남경필 당시 지사의 ‘경기도 포기’ 주장에 대해 “지방자치 분권 시대에 역행하는 말도 안 되는 얘기”라며 “정치적으로 실현 불가능하고 효과도 없다”라며 일축했다. 서울 메가시티에 분명하게 반대한다고 밝힌 것인데, 어찌 된 영문인지 지금은 가타부타 말이 없다.
어떻게 보면 민주당은 겉으로는 균형발전을 당의 기본 가치라고 강조하면서도 실제로는 공공기관의 지방 이전에 줄곧 소극적인 태도를 보였다. 요즘에는 막바지 단계에 이른 산업은행의 부산 이전을 위한 법 개정에 팔을 걷어붙이고 반대하는 모습에서 그 좌고우면하는 속내를 엿볼 수 있다. 부울경이 고대하는 우주항공청 특별법 처리 역시 이를 뻔히 알면서도 서울과 수도권 눈치를 보느라 계속 어깃장을 놓는다.
김대중·노무현 정권 때부터 국토균형발전을 추구해 왔다고 하면서도 각론에서 결정을 내려야 할 시점이 오면 오히려 주춤거리기 일쑤였다. 이런 어정쩡한 태도가 여당의 서울 메가시티 밀어붙이기에도 불구하고 당 차원의 명확한 입장조차 못 내놓는 자가당착의 늪에 빠지게 했다고 여겨진다.
국민의힘 역시 자가당착의 늪에 빠진 점에서는 크게 다르지 않다. 우리나라에서 명실상부한 메가시티가 실현됐다면, 그 첫 지역은 당연히 부울경이여야 했다. 당초 계획대로라면 올해 1월 1일 출범해 지방분권과 국토균형발전의 역사에 한 획을 그었을 것이다. 그러나 모두 알다시피 국민의힘 출신 부울경 지자체장들이 취임하면서 무산되고 말았다. 대안으로 ‘경제동맹’을 제시했지만, 눈 가리고 아웅 하는 것 이상은 아니었다.
당시 부울경 메가시티가 좌초될 위기에 처하자, 지역 언론과 시민단체들은 국민의힘 차원의 적극적인 개입을 강력히 촉구했다. 어떻게 해서든 메가시티의 불씨만은 살려놔야 한다는 절박감의 발로였다. 그러나 국민의힘 중앙당 차원의 조율과 개입 노력은 끝내 없었다. 오히려 사실상 이를 방기했다는 표현이 과하지 않을 정도였다.
그런데 서울 메가시티 방안이 나오자, 언제 그랬냐는 듯이 부울경 메가시티도 다시 추진하겠다고 한다. 더구나 서울 메가시티 구상을 처음 천명하고, 이를 실행하기 위해 구성된 당내 특별위원회 위원장도 모두 부울경 출신이다. 정말 아이러니하다고 해야 할지, 어이가 없다고 해야 할지 어지러울 지경이다. 결국 메가시티도 서울이 먼저 시작해야만 다른 지역도 겨우 곁다리로 논의에 끼일 수 있다는 씁쓸한 사실만 재확인하게 됐다. 자가당착도 이쯤 되면 거의 고질이 됐다고 해야 할 판이다.
현재로서는 서울 메가시티 구상이 어떻게 결판날지 알 수 없다. 주민은 물론이고 이해관계가 걸린 지자체만 한둘이 아니다. 지금처럼 말만 요란하다가 총선 뒤 유야무야 될 공산도 충분하다. 다만 한 가지는 분명히 얘기할 수 있을 것 같다. 총선이 다가올수록 정치권의 자가당착적인 행태는 더욱 노골적으로 되풀이되리라는 점이다. 아직도 우리 정치권은 국민을 진심으로 두려워하고 있지 않다는 것을 이번에 다시 느꼈기 때문이다. 곽명섭 논설위원 kms01@busan.com
2023-11-07 [18: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