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사진으로 읽는 역사] 25. 케테 콜비츠 '궁핍'
자본주의에 희생당한 노동자들의 비가
고뇌의 외침은 아름다운 것이 아니며 인생의 즐거운 면만을 보려는 것은 불성실한 태도라고 표현주의자들은 말한다. 인간의 고통, 가난, 부조리, 폭력을 예민하게 느끼는 표현주의자들에게 미술에서 조화나 아름다움만을 고집하는 것은 정직하지 못한 태도이다.
독일의 여성 미술가 케테 콜비츠(Kathe Kollwitz·1867~1945)는 가난한 사람들과 학대 받는 이들에게 깊은 연민을 느꼈고 그들의 주장을 옹호하려고 했다. 작품 '궁핍'은 1844년 독일에서 일어난 슐레지엔 직조공 반란을 주제로 한 게르하르트 하우프트만의 연극 '직조공들'을 본 영감을 토대로 케테 콜비츠가 판화로 제작한 것이다. 6장으로 이루어진 연작의 첫 번째 작품이다. 영양 결핍으로 죽어가는 아이를 보며 아무 것도 해 줄 수 없는 어머니의 오열하는 모습 뒤에 방직기가 멈추어 있다. 어두운 실내만큼이나 아버지와 누나의 표정 또한 어둡다 못해 공포감마저 느껴진다.
슐레지엔의 봉기로부터 50년이 지났지만 비참한 노동환경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1893년에 시작해 1898년에 완성한 '직조공 봉기' 연작은 당시 노동자들의 아픔과 울분을 담았다. 콜비츠는 이 그림들을 지금까지 예술가의 길로 이끌어 준 아버지에게 바쳤다. 언젠가 케테 콜비츠의 부모는 그녀에게 "삶에는 즐거운 일도 있단다. 그런데 왜 너는 이토록 어두운 면만 그리니?"라고 물었을 때 케테 콜비츠의 대답은 이러했다. "구제 받을 길 없는 사람들, 상담도 변호도 받을 수 없는 사람들, 정말 도움을 필요로 하는 이시대의 사람들을 위해 한 가닥의 책임과 역할을 담당하려 한다." 이후 '전쟁은 사라져야한다' 등의 반전 메세지와 함께, 폭력 속에 고통 받는 시민들과 죽어가는 어린 아이들의 모습을 연민과 사랑의 감정에 담아 표현한다.
전쟁, 죽음, 빈곤, 슬픔 등 소외된 시민들의 대변자이자 기록자였던 케테 콜비츠. 산업화의 속도와 자본주의의 맹렬한 발전 속에 묻혀 버릴 노동자와 서민들의 슬픈 아름다움을 연민과 관찰력 그리고 뛰어난 소묘력으로 지금도 생생하게 우리에게 전해주고 있다.
이욱상
부산영상예술고 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