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달식의 일필일침] '피란수도 유산' 등재보다 먼저 물어야 할 질문들

정달식 논설위원 dosol@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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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설위원

올해 유네스코 예비평가 신청 예정
등재 가능성을 가늠하는 잣대 역할
7월 부산서 ‘세계유산위’ 기대감 커
자산 통합된 서사, 인류 공감 ‘관건’
보존·관리 중요… 개발과 충돌 인식
소유자와 소통·시민과 공감 더 필요

2016년 12월 초. ‘피란수도 부산 유산’의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를 향한 여정은 이때부터 본격화한다. 이에 앞서 그해 11월, 관련 조례가 제정되면서 부산시 세계유산위원회가 출범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첫 회의가 열린다. 이 회의에서 부산근대역사관, 부산지방기상청 등 모두 14곳을 피란수도 유산 목록으로 확정하고 이를 문화재청에 등재 신청하기로 의결한다. 그해 12월 20일 문화재청에 공식 신청서가 제출된다. 피란의 역사가 부산을 넘어 세계로 확장되는 첫걸음이었다. 그로부터 어느덧 10년이 흘렀다. 부산시는 ‘한국전쟁기 피란수도 부산 유산’을 올해 유네스코 예비평가에 신청할 예정이다. 예비평가는 국제 전문가의 검증을 거치는 사전 단계로, 등재 가능성을 가늠하는 잣대 역할을 한다. 특히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가 올해 7월 부산에서 열리면서 그 기대감은 더 커지고 있다.


피란수도 유산 등재 추진은 도시의 아픈 과거를 지우지 않고 인류가 함께 이해할 가치로 확장하려는 시도라는 점에서 분명 의미 있는 일이다. 그러나 세계유산은 흔히 기대하는 것처럼 도시의 기쁨이나 명예로만 오롯이 다가오진 않는다. 오히려 유네스코가 요구하는 것은 ‘탁월한 보편적 가치’와 그것을 유지할 수 있는 지속 가능한 체계다. 그런 점에서 등재는 끝이 아니라 시작이며 성과라기보다 책임에 가깝다.

그렇기에 바로 이 지점에서 냉정한 점검이 필요하다. 우선 유산 구성의 설득력이다. 당초 14곳에서 11곳으로 줄어들었지만 현재의 목록이 통합된 서사를 이루고 있는지는 의문이다. 정부 기능, 피란민의 삶, 국제 협력의 흔적 등 각 요소의 의미는 분명하다. 핵심은 이들이 하나의 이야기로 얼마나 설득력 있게 연결되는가다. 특정 지역 경험이 아니라 인류 전체가 공감할 수 있는 가치로 끌어올릴 수 있어야 한다. 이를테면 물 공급 시설이나 배수지 같은 기반 시설은 전쟁기 도시 유지에 필수적이었음에도 그 중요성이 직관적으로 드러나지 않는다. 그래서 하는 얘기다.

일부 유산의 진정성과 완전성 문제도 남아 있다. 부산시민공원(옛 하야리아 부대)처럼 원형이 훼손되거나 재구성된 공간은 피란수도라는 핵심 주제와의 연결이 충분히 설명되지 않는다는 지적도 있다. 세계유산은 무조건 많을수록 좋은 것이 아니라 명확할수록 좋다. 선택과 집중이 요구되는 이유다.

보존과 관리 역시 중요한 과제다. 등재는 강한 규제와 책임을 수반한다. 보호구역 설정과 건축 제한은 도시 전반에 영향을 미친다. 사유재산이 포함될 경우 갈등이 일어날 수 있다. 재산권 제약과 생활 불편에 대해 충분한 설명과 사회적 합의가 있어야 하는 이유다. 공감 없는 정책은 지속될 수 없다. 개발과의 충돌 가능성도 현실적이다. 부산항 1부두처럼 북항 재개발과 맞물린 지역은 세계유산 등재가 도시 발전 전략과 충돌할 수 있다. 우리는 근래 일어난 ‘서울 종묘 인근 경관 사태’에서 이를 확인한 바 있다. 이런 점에서 근대 건축자산 진흥 제도를 활용하는 것이 오히려 더 현실적이라는 시각도 있다. 세계유산 등재가 ‘답정너’가 아니라면 말이다.

같은 맥락에서 세계유산에 대한 과도한 기대도 경계해야 한다. 등재만으로 관광 활성화를 기대하지만, 현실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관리 비용은 지속적으로 발생하고 규제는 생활과 개발을 제약한다. 심지어 지역 갈등이 커지는 사례도 있다. 실제 영국 리버풀 등 몇몇 도시는 개발과 보존 사이의 간극으로 세계유산 지위를 유지하지 못하기도 했다. 세계유산은 만능 해법이 아니란 얘기다.

유산은 특정 기관의 소유물이기도 하지만, 시민의 삶과 기억이 켜켜이 쌓인 흔적이며 지역 공동체의 자산이기도 하다. 따라서 그 방향 역시 공동체의 참여 속에서 형성되어야 한다. 그동안 제대로 된 시민 공청회가 한두 번밖에 없었다는 건 말이 안 된다. 지역의 공감과 참여 없이 추진되는 정책은 지속 가능성을 담보하기 어렵다. 제대로 할 거라면 전담 조직도 꼭 필요하다. 지난 9일 부산연구원이 부산근현대역사관에서 개최한 '유네스코 예비평가 대응'을 주제로 한 피란수도 부산 제1차 학술포럼에서도 이 같은 지적이 제기됐다.

세계유산 등재를 반대하는 게 아니다. 다만 충분한 준비와 숙고가 필요하다는 얘기다. 무엇보다 ‘답정너’가 돼선 곤란하다. 피란수도 유산은 전쟁이라는 극단적 상황 속에서 공동체가 어떻게 버텨냈는지를 보여주는 살아 있는 기록이다. 그 가치는 외부의 인정 이전에 내부의 이해와 공감 속에서 먼저 완성되어야 한다. 지금 필요한 것은 속도가 아니다. 무엇을 지킬 것인가. 왜 그것이어야 하는가. 그리고 그 선택을 우리가 함께 감당할 수 있는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이 분명해질 때, 세계유산 등재는 비로소 우리 곁에 가까이 다가올 것이다.


정달식 논설위원 dosol@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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