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깐읽기]‘디지털 이민’ 톡톡 튀는 상상력이 돋보이는 SF소설
■바람이 되기에는 아직/ 사사하라 치나미
사사하라 치나미 <바람이 되기에는 아직> 책 표지. 출판사 제공
수십 권의 책 사이에서 ‘디지털 이민’이라는 단어가 눈을 사로잡았다. SF소설 ‘바람이 되기에는 아직’은 미래를 배경으로 신체적 장애가 있거나 질병으로 죽음을 앞둔 사람들을 디지털로 옮기는 기술이 개발돼 있다. 디지털로 넘어가는 사람들은 ‘정보 인격’ 혹은 ‘디지털 이민’이라고 지칭된다. AI와 인간의 경계가 흐려지는 시대에 적절하면서도 참신한 소재, 잔잔하면서도 섬세한 묘사 덕분에 소설에 몰입하는 것은 쉬웠다.
이 소설은 각자 다른 6개 이야기를 묶은 연작 소설이다. 표제작 ‘바람이 되기에는 아직’은 현실 세계의 모임에 참석하기 위해 살아 있는 신체를 빌리는 이야기로 시작된다. 소설에서는 체격이 비슷해야 ‘동기화’할 수 있다는 제약부터 디지털 세계에서도 인간다운 삶을 살지 않으면 정보 인격이 소멸한다는 기술적 한계 등 작가의 톡톡 튀는 상상력이 돋보인다.
그러면서도 ‘디지털에 재현된 인격이 정말로 나일까’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던짐으로써 독자들에게 사유하는 시간을 자연스레 선물한다. 다른 5개의 이야기도 저마다 다른 상황에 처한 인물들이 등장하며 ‘인간다움’이 무엇인지를 고민하게 만든다.
이 작품의 매력은 SF소설이지만 디지털로 인격을 옮기는 기술 외에는 현실과 흡사하기에 세계관 이해에 큰 노력이 필요하지 않다는 것이다. 2020년 등단한 작가 사사하라 치나미 씨는 이 작품으로 2022년 제13회 소겐SF단편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다가오는 주말 인간과 소멸, 죽음에 대해 사유할 수 있는 SF소설은 어떨까. 사사하라 치나미 지음/유태선 옮김/요다/372쪽/1만 8000원.
김준현 기자 joon@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