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란수도서 해양수도로, 현대사 중심엔 언제나 부산 [부산일보가 기록한 부울경 80년사]

김동우 기자 friend@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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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 최후의 보루 국가 기틀
휴전 후 큰 화재 딛고 도시 재건
수출 중심지·민주화 주역 역할도
세계 물류허브 가덕신공항 추진
해수부 이전 명실상부 해양수도

부산·울산·경남이 지나온 80년은 대한민국 현대사 그 자체다. 부울경은 늘 선봉에 섰다. 피란민의 애환, 산업화의 긍지, 민주화의 함성, 문화강국 도약까지 모두 도시의 기억 속에 남아 있다. 위기도 있었지만 시민들은 절망하지 않고 일어서는 법을 배웠다. 서로 손을 맞잡고 용기 있게 나아가는 시민의 역동성이 〈부산일보〉에 기록된 부산의 힘이다. 이제 부산은 대한민국 해양 수도이자 글로벌 허브 도시로서 미래로 향하고 있다.

■피란민 품은 ‘최후의 보루’

1950년대 부산은 격동의 현대사가 펼쳐진 무대다. 한국전쟁의 참상 속에 부산은 ‘최후의 보루’이자 피란 수도로서 국가의 기틀을 지켰다. 떠나온 고향과 잃어버린 가족을 그리며 타지에서 생존 투쟁을 해야 했던 피란민들을 품은 도시도 부산이었다. 전쟁 직전 47만 명 수준이었던 부산 인구는 1951년 1·4후퇴 이후 120만~130만 명으로 급속도로 늘었다. 부산일보는 1951년 2월 1일 자 기사에서 “터질 듯한 부산은 주택난·식수난·식량난의 소동 속에 먼지와 쓰레기에 싸여있다”고 당시의 열악한 도시 환경을 묘사했다.

그럼에도 시민들은 기꺼이 피란민들에게 곁을 내주었다. 그 후 70년이 지난 2020년, 자신을 피란민의 자녀라고 밝힌 한 시민은 부산일보에 실은 편지 형식의 광고 ‘부산 시민들께 드리는 감사의 말씀’에서 “함경도 출신 선친과 서울 출신 어머니가 몇 번이나 하셨던 말씀은 ‘그때 부산 사람들 아니었으면 피란민들 다 얼어 죽고 굶어 죽었다. 자신들도 어려운 형편에서 대한민국 어디 사람도 그렇게 할 수가 없었다’이었습니다”라고 전했다.

휴전 직후 잇따른 두 차례의 대형 화재는 부산에 큰 상처를 남겼다. 1953년 11월 부산역전, 이듬해 12월 용두산에서 발생한 대화재로 약 4만 명의 이재민이 발생했다. 부산일보는 그해 11월 29일 자 기사에서 “이번 화재는 우리나라 역사 초유의 대화일 것”이라고 당시의 참상을 보도했다.

■산업화, 민주화의 기수

그럼에도 시민들은 무너진 집을 다시 세웠고, 폐허 위에 도시를 재건했다. 1960~1970년대 부산은 섬유, 조선 등 수출 산업의 중심지로 대한민국 경제를 이끌었다. 특히 신발 산업에서 부산의 위상은 세계적이었다. 1970년대 후반 부산에는 종업원 수가 1만 명 이상인 신발 업체만 국제상사 등 4곳이었다.

민주화 역사에서도 부울경이 주역이다. 1979년 10월 부산과 마산 시민 수만 명이 박정희 정권의 유신체제에 대항해 일어났다. 부마항쟁은 유신정권을 무너뜨린 결정적인 계기이자, 반군부·독재 민주화 운동의 출발점으로 평가받는다.

1995년 부산은 인구 400만 명에 육박하는 ‘거대 도시’가 됐다. 이 시기 명실상부한 대한민국 제2도시이자, 국제도시의 위상도 다졌다. 오늘날 부산을 이루는 16개 구·군 체계가 완성됐고, 직할시에서 광역시로의 전환도 이뤄졌다. 부산일보는 그해 1월 4일 자 사설에서 “중앙정부의 시혜적인 배려에 의지하고 매달릴 때는 지났다”고 제언했다.

■전 세계 매료된 ‘영화의 바다’

부산의 저력은 독립성에 있다. 부산은 수도권 중심의 불평등한 구조에 종속되기를 거부하고 독자적인 문화 생태계를 구축했다. 1996년 9월 막을 올린 부산국제영화제는 이후 30년 동안 한국을 넘어 아시아의 대표 영화 축제로 성장했다. 영화제와 함께 부산은 명실상부 ‘영화 도시’로 자리 잡았고, 매년 17만 명이 찾는 영화제는 영화인들만의 축제가 아닌 문화와 예술, 산업을 잇는 장이 됐다.

부산일보는 1996년 9월 14일 자 기사에서 “한국 영화의 본산지인 서울을 제치고 문화 불모를 지병처럼 앓아 온 부산이 부산시의 결단으로 국제영화제를 개최하게 된 것은 역사적 사건임에 틀림없다”며 “첫술에 배부르랴? 그러나 시작이 반이다라는 말은 기필코 입증되어야 한다”고 ‘전설의 시작’을 알렸다.

■해양수도, 글로벌 허브 도시

2026년 1월 1일 부산 곳곳은 미래를 향해 새롭게 디자인 중이다. 부산역에 내리면 펼쳐지는 155만㎡ 면적의 북항 재개발 1단계 구역은 오페라하우스 등 각종 공사가 한창이다. 산업화 시기 화물선의 뱃고동 소리가 가득했던 이곳은 앞으로 문화와 상업, 관광이 어우러진 시민 중심의 친수공간으로 탈바꿈한다. 자연과 인간이 공존하는 친환경 주거와 첨단 업무 지구가 결합한 미래 도시의 표본으로 강서구에 조성 중인 에코델타시티도 순항하고 있다.

해양수산부 이전은 부산이 정책과 산업 인프라가 집약된 진정한 ‘해양수도’로 자리 잡는 계기다. 침체했던 동구 원도심은 해수부 청사가 들어서면서 활기를 되찾았고, 남구에 조성된 문현금융단지는 동남권 산업 생태계 지원과 해양 금융을 이끄는 거점이다.

현재 추진 중인 가덕신공항 건설은 부산을 전 세계 물류 중심지로 끌어올릴 핵심 프로젝트다. 항만과 철도, 공항이 유기적으로 결합한 ‘트라이 포트’ 물류 인프라가 구축되면 전 세계를 연결하는 허브로서 부산의 입지는 더욱 높아진다. ‘부산시대’는 아직 시작하지도 않았다.


김동우 기자 friend@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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