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0년 전통 ‘소싸움’ 놓고 싸움 난 진주시
140년 전통 소 힘겨루기 놓고 이견
“동물 학대” vs “전통 문화유산” 충돌
예산 상정…시의회 심의 결과 주목
지난달 12일 열린 진주 소 힘겨루기대회 모습. 김현우 기자
140년이 넘는 전통을 보유하고 있는 경남 진주시 ‘소 힘겨루기대회(소싸움대회)’를 놓고 동물보호단체와 소 힘겨루기협회가 정면충돌했다.
동물보호단체가 동물 학대라며 대회를 중단해야 한다고 주장하자, 협회 측은 전통이자 지역의 자존심이라고 반박하고 나섰다.
동물학대소싸움폐지 전국행동과 진주 소싸움대회 폐지를 원하는 시민모임 등 시민단체는 20일 진주시청 브리핑룸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진주시는 살아있는 생명을 학대하고 지역 경제 활성화에도 도움 되지 않은 소싸움대회를 즉각 폐지하라”고 촉구했다.
이들 시민단체가 갑자기 기자회견에 나선 건 진주시가 내년도 예산안에 소 힘겨루기대회 관련 예산 6억 원 규모로 편성했기 때문이다. 상설 대회와 전국 대회, 기타 운영비가 포함된 이 예산은 다음 달 15일 진주시의회 정례회 본회의를 통과하면 확정된다.
이들 시민단체는 “전국에서 살아있는 동물을 수백 마리 모아 대회를 치르는 행사는 ‘소싸움’이 유일하며 이러한 방식의 대회는 축산농가에도 실질적인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지난해 9월 전문 여론조사기관이 실시한 전국 여론조사에서는 ‘소싸움 관람 의향이 없다’는 응답이 70.1%에 달했고 지자체 소싸움 예산 지원에 대해 56.9%가 반대했다”고 지적했다.
현재 경남도 내에서 소싸움대회 개최를 위해 내년 예산을 편성한 곳은 진주시·창원시·의령군·창녕군 등 4곳이다. 이들은 예산 전면 삭감과 관련 운영 조례 폐지를 요구하고 있다.
동물학대소싸움폐지 전국행동 등 시민단체가 20일 진주시청 브리핑룸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소싸움대회 폐지를 촉구했다. 김현우 기자
소 힘겨루기협회 진주시지회는 반박 기자회견을 열고 진주 소 힘겨루기는 후손들에게 온전히 물려줘야 할 귀중한 문화유산이라고 강조했다. 김현우 기자
그러자 소 힘겨루기협회 진주시지회도 같은 날, 같은 장소에서 반박 기자회견을 열며 맞불을 놓았다.
협회는 “소 힘겨루기 대회는 오랜 세월에 걸쳐 이어져 온 우리 민족의 전통 민속놀이”라며 “특히 진주 소 힘겨루기는 전국적으로도 독보적인 위상을 지니고 있으며 1909년 위암 장지연 선생의 ‘진양잡영’에 기록될 만큼 그 역사성과 생동감이 깊게 새겨져 있다”고 강조했다.
진주 소 힘겨루기는 일제강점기 3·1운동 이후 집회 금지 정책으로 중단됐다가 진주 시민이 1923년 자발적으로 부활시킨 바 있다. 협회 측은 “소 힘겨루기가 ‘민족의 자존심’이고 ‘지역의 정신’이고 ‘항일의 의지’를 상징하는 문화”라고 주장했다.
시민단체가 강조한 동물학대 주장에 대해서도 엄격한 동물 복지 기준 아래 운영되고 있는 대회라고 반박했다. 협회 측은 “현행 ‘동물보호법’에서 동물 학대 목적의 싸움은 모두 금지되지만 오로지 소 힘겨루기만은 전통 민속경기라는 문화적 가치를 인정받아 농림축산식품부령으로 예외 규정이 마련돼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소 힘겨루기를 놓고 시민단체와 협회가 맞붙으면서 예산 심의를 앞둔 진주시의회는 난감한 표정을 짓고 있다.
정용학 진주시의회 기획문화위원장은 “아직 예산에 관해 결정된 건 없다. 양측의 입장이 상반되기 때문에 시민의 의견을 좀 더 많이 들어보고 의원끼리도 논의를 해봐야 한다. 보다 면밀히 살펴볼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김현우 기자 khw82@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