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근길 옛 연인인 직장동료에게 살해당했다면…산재일까 아닐까
출근길에 전 연인이었던 직장 동료에게 살해당했다고 해도 업무상 관련성이 인정되기 어렵고 사적인 감정에 의한 범행이라면 업무상 재해로 보기 어렵다는 법원 판단이 나왔다.
연합뉴스 보도에 따르면 서울행정법원 행정3부(최수진 부장판사)는 최근 살인 피해자 A 씨의 유족이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제기한 유족급여 및 장의비 부지급 처분 취소 소송에서 원고 패소 판결을 내렸다.
2011년부터 보험회사에서 보험설계사로 일하던 A 씨는 지난 2023년 7월 출근을 위해 집을 나오던 중 과거 연인이자 같은 직장 동료였던 B 씨의 칼에 찔려 숨졌다.
B 씨와는 테니스 동호회에서 알게 됐고 2022년 6월부터 교제했다. 이후 B 씨는 A 씨의 권유로 같은 회사에 입사해 2022년 12월부터는 같은 지점에서 함께 일했다.
그러나 B 씨가 A 씨를 폭행하기 시작했고 A 씨가 헤어지자고 하자 B 씨는 A 씨의 출근 차량을 자신의 차량으로 따라가며 스토킹하다 고소당하기도 했다.
상황이 악화되자 회사는 B 씨를 다른 지점으로 전보했지만 B 씨는 이후에도 스토킹을 이유로 현행범으로 체포되는 일까지 발생했다. A 씨가 2023년 5월 B 씨를 스토킹으로 신고한 후 법원이 접근금지 명령을 내리자 B 씨는 결국 2023년 7월 17일 출근하던 A 씨를 자택 복도에서 흉기로 찔러 살해했다. A 씨가 어린 자녀 앞에서 살해당한 충격적인 정황이 더해져 당시 이 사건은 '스토킹 살인사건'으로 언론에도 크게 보도됐으며 B 씨는 징역 30년을 확정받았다.
A 씨의 유족은 업무상 재해에 해당한다며 근로복지공단에 유족급여 및 장례비 지급을 청구했지만, 공단은 "사적인 관계에 기인한 재해이고, 통상적인 출근길에서 발생할 것으로 예측될 수 있는 범위 내의 사고는 아니므로 업무상 재해 또는 출퇴근 재해로 인정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지급을 거부했다.
A 씨의 유족은 이에 불복해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유족은 두 사람이 같은 직장에서 근무해 연인 관계이기보다 상하관계에 따른 업무적 압박으로 많은 다툼이 있었고, 회사의 미온적 대처로 사망한 것이므로 업무상 재해에 해당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재판부는 가해자와 피해자 사이의 사적인 관계에 기인한 경우 등에는 '업무기인성'을 인정할 수 없어 업무상 재해로 볼 수 없다는 대법원 판례를 근거로 업무상 재해로 인정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한때 연인 관계였던 피해자에 대한 분노 등 사적 감정 때문에 발생한 사건으로 봄이 상당하다"며 "피해자와 가해자 간에 업무상 갈등이 있었다거나 피해자가 가해자에게 업무상 관계에서 원한을 살 만한 행위를 했다고 볼 만한 구체적 사정은 보이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박정미 부산닷컴기자 likepea@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