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필남의 영화세상] 마녀는 어떻게 탄생하는가?
영화평론가
인기 뮤지컬 원작 영화 '위키드'
마녀 '글린다'의 성장 이야기 다뤄
영화적 상상으로 마법 세계 구현
마녀는 판타지 영화에만 나타나는 존재가 아니다. 그녀들을 ‘마녀’라고 지목하고, 사냥을 해야 종교 제도가 유지된다고 생각했던 시대는 분명 존재했다. 실제로 ‘마녀’ 담론은 중세 유럽을 휩쓸었고 갖가지 말도 안 되는 명목으로 마녀사냥이 자행되었다. 영화 ‘위키드’는 사악한 서쪽 마녀의 죽음 소식을 알리며 시작한다. 날개가 달린 기이한 원숭이들이 날아다니는 이상한 나라, 평온하고 아름다운 도시의 사람들은 마녀의 죽음에 기뻐한다.
영화는 죽은 마녀가 누구인지 알려주기 위해 과거로 돌아간다. 마녀는 초록 피부를 가진 ‘엘파바’(신시아 에리보)다. 사람들은 나와 다른 그녀를 훔쳐보느라 바쁘다. 엘파바는 그런 시선이 낯설지 않다는 듯 행동하지만 상처받지 않을 리 만무하다. 그녀는 남과 다르다는 이유로 부모에게 외면당했고 주변 사람들로부터 차별받았다. 자신을 사랑하는 법도 잊은 채 스스로의 존재를 숨기기에만 급급했던 그녀는 걷지 못하는 여동생을 돌보기 위해 입학한 대학교에서 비로소 꿈을 꾸기 시작한다. 오즈의 마법과 현실이 교차하는 학교에서 엘파바의 능력을 알아봐 준 이는 총장 ‘모리블’(양자경)이다.
이 학교에는 또 다른 마녀가 있다. ‘글린다’(아리아나 그란데)는 엘파바와 모든 것이 다르다. 아름다운 외모와 상냥한 성격으로 주변을 챙기는 글린다는 모두의 사랑과 관심을 받는다. 하지만 천사 같아 보였던 글린다는 자신이 원하는 바는 어떻게든 가지고 마는 성격이다. 글린다는 모리블을 스승으로 둔 엘파바를 질투하여 그녀를 따돌리는 주동자가 된다. 영화 초반부는 겉으로 보이는 모습이 남과 달라 외톨이가 되는 엘파바와 겉과 속 마음이 다른 글린다의 관계에 집중한다. 어쩌다 룸메이트까지 된 두 사람은 불편한 동거를 이어가며 갈등이 최고조에 이른다.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던 두 사람은 우연한 사건으로 서로의 결핍을 확인한다. 모리블에게 마법을 배우고 싶었던 글린다와 약간의 관심이 필요했던 엘파바는 서로를 채워주는 유일한 존재가 되어 우정을 나눈다. 두 사람의 우정과 연대에 감동을 받을 즈음, 불현듯 영화는 우정 이야기가 아니라 마녀의 탄생을 알리는 영화임을 상기한다. 엘파바를 각성시키는 사람은 오즈의 최고 마법사이다. 마법사와 만나게 된 엘바파는 기대감에 들뜬다. 난생처음으로 자신을 증명할 기회를 얻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 가슴 뛰는 여정을 함께하는 친구도 글린다이다.
엘파바를 향한 차별과 편견, 그리고 엘파바와 글린다의 갈등과 우정을 그린 ‘위키드’는 마치 물 흐르듯 자연스러운 전개를 보여준다. 이때 인물 중심의 영화라고 볼 수 있지만 영화를 특별하게 하는 건 인물이 아니다. 뮤지컬을 원작으로 한 영화답게 춤과 음악이 빠지지 않는데, 특히 뮤지컬 넘버를 그대로 살린 점이 영화의 매력이다. 또한 ‘위키드’는 원작 뮤지컬의 스토리를 충실하게 따르면서도 환상적인 마법 세계의 재현, 즉 판타지 장르를 강조하고 있어 영화만의 매력을 더한다.
분명 ‘위키드’는 볼거리가 풍성한 영화이다. 그러나 영화 속 현실은 그리 아름답지 않다. 초록 피부로 태어난 엘파바가 살아가는 현실은 녹록지 않기 때문이다. 마녀는 ‘나’와 다르다는 이유로 혐오의 대상이 되어 결국 사회로부터 배제당한다. 영화에서 마녀사냥이 있기 전 동물들을 먼저 탄압했다는 점도 의미심장하다. ‘적’을 만들어야 사회를 통치할 수 있다는 믿음은 폭력과 희생을 정당화한다. 권력자들은 오즈의 찬란함과 신비함을 지킨다는 명목으로, 자신들과 다르거나 약한 자들, 복종하지 않는 자들을 적으로 규정했다. 그리하여 엘파바는 마녀가 되었다. 물론 그녀가 마녀가 된 것은 자신의 선택이었지만 말이다. 빗자루를 타고 하늘을 날아오르는 그녀의 모습은 어느 때보다 자유로워 보인다. 마녀로의 삶을 선택한 엘파바가 무엇을 증명할지 2편이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