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물썰물] 근조 화환의 역설

김건수 논설위원 kswoo333@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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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야구 손아섭 선수가 롯데 자이언츠에서 NC 다이노스로 이적한 2021년 12월 끝자락. 부산 팬들의 섭섭함이 무던히도 컸던 모양인지, 창원 NC 구장 앞에 근조 화환이 세워졌다. ‘가도 하필 거길 가?’ 등의 아쉬움 가득한 글귀가 거기 나부끼고 있었다. 정작 롯데는 아무 말이 없는데, 손 선수는 ‘보내주신 사랑을 평생 잊지 않겠다’는 사과와 감사의 광고를 〈부산일보〉에 게재해 팬들 마음을 달랬다. 그즈음 롯데의 심장부인 서울 잠실 롯데타워 시그니엘에도 근조 화환이 놓였다. ‘우승 없이는 존재 가치도 없다. 우승하기 싫으면 해체해라’는 격한 문구와 함께.

근조 화환은 망자에 대한 추모의 상징이지만, 더 이상 장례식장에 갇히지 않는다. 애초의 취지를 넘어 의사를 표현하고 현실을 꾸짖는 수단으로 쓰인 지 오래다. 2006년 충북 지역의 한 군청 앞에 주민들이 근조 화환을 세운 때를 변신의 시발점으로 본다. 이후 근조 화환은 대통령 탄핵 사태 등을 거치면서 법원·국회 같은 상징적 공간의 단골 소품이 됐고, 집회나 시위 현장에서도 대표적 풍경의 하나로 자리 잡았다.

근조 화환은 특정 공간을 일순 빈소로 바꾼다. 이목을 끄는 힘이 대단해서 대중들에게 사회적 가치의 상실을 강조하거나 특정 주체의 결정 행위를 규탄·경고·조롱하는 효과적인 수단이 된다. 띠 문구에 담기는 메시지는 구체적이고 통렬하다.

올해만 해도 주요 이슈를 떠받친 근조 화환의 위세는 대단했다. 지난달 11일 서울 성수동 SM엔터테인먼트 사옥 앞 진풍경은 그 정점이었다. 무려 1000개의 화환이 도열해 장관을 연출했는데, 아이돌 팬들이 보낸 거센 항의의 표현이었다. 비슷한 시기, 서울 동덕여대 백주년 기념관(남녀공학 전환 반대) 앞에도, 경기도 분당 네이버 본사(웹툰의 여성혐오 내용 규탄) 앞에도 근조 화환이 세워졌다. 지난여름에는 대한축구협회(홍명보 감독 선임 반대), 봄에는 보건복지부(의대 증원 반대)에 화환이 대거 배달되기도 했다.

덩달아 화훼 농가도 호황을 누리고 있다는 소식이 겹친다. “장례식·결혼식보다 시위 현장에 보내는 화환이 더 많다”고도 한다. 이런 역설적인 뉴스 앞에서는 유쾌해야 할지, 불쾌해야 할지 헤아리기 힘든 심정이 된다. 근조 화환을 보는 시각은 교차한다. 평화로운 방식으로 자유롭게 메시지를 전달하는 한국 문화의 상징. 정의로움이나 경건함이 없는 혐오 표현의 장이자 시각적 공해. 독자들의 생각은 어떠하신지. 김건수 논설위원 kswoo333@


김건수 논설위원 kswoo333@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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