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경택 감독 “소방관 떠올리면 늘 미안하고 고마운 마음”

남유정 기자 honeybee@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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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일 스크린 개봉 ‘소방관’ 연출
서울 홍제동 화재 사건 모티브
생생함 위해 CG 대신 직접 촬영
“겸손하게 만든 작품…많이 배워”

곽경택 감독이 영화 ‘소방관’을 들고 관객을 찾는다. 바이포엠스튜디오 제공 곽경택 감독이 영화 ‘소방관’을 들고 관객을 찾는다. 바이포엠스튜디오 제공

“소방관을 떠올리면 늘 미안하고, 고마운 마음이 들었어요. 그래서 영화를 만들게 됐죠.”

영화 ‘소방관’을 연출한 곽경택 감독은 이렇게 말했다. 4일 개봉하는 이 작품은 2001년 서울 홍제동에서 발생한 화재 사건을 모티브로 한다. 영화 ‘친구’(2001) ‘극비수사’(2015)를 만든 곽 감독이 ‘장사리: 잊혀진 영웅들’ 이후 5년 만에 내놓는 신작이다. 최근 서울 종로구의 한 카페에서 만난 곽 감독은 “실화를 바탕으로 한 가슴 아픈 이야기”라며 “여태까지 도전해보지 않은 연출이 필요했다”고 말했다.

곽 감독은 이 작품으로 ‘실화의 힘’을 전하고 싶었다고 했다. 영화를 준비하며 당시 화재 사건과 관련한 자료를 찾아봤고, 현장에서 일하는 소방관을 만나 여러 이야기를 들었다. 그는 “제가 만난 소방관들의 공통점은 의외로 단순명료하다는 점이었다”며 “기질도 세고, 타고난 희생정신이 있더라”고 했다. 감독은 “인상 깊었던 점은 이 일을 하면서 겪는 상처와 트라우마를 각자의 방식으로 자가치료를 하고 있던 그들의 모습”이라면서 “덤덤하게 아무렇지 않은 척 견뎌내는 방식이 제겐 슬프게 다가왔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영화적인 재미를 위해 억지로 신파를 끌어내거나 특별한 사건을 만들어내지 않으려고 했다”고 덧붙였다.

영화 ‘소방관’ 스틸컷. 바이포엠스튜디오 제공 영화 ‘소방관’ 스틸컷. 바이포엠스튜디오 제공

영화를 만들면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부분 중 하나는 ‘마음’이다. 홍제동 방화 사건의 유족이나 생존자의 상처를 건들지 않기 위해 각별히 신경을 썼단다. 이야기는 실화의 뼈대만 가져다 썼고, 대부분의 캐릭터를 재창조했다. 작품 준비 과정에서 유족이나 생존자 인터뷰도 하지 않았다. 곽 감독은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를 찍을 땐 창작의 자유가 어디까지 주어지는지는 항상 딜레마”라며 “(사건 관계자 중) 연락이 닿는 분들만 인터뷰했고, 그분들의 동의와 격려를 받았다”고 털어놨다. “아픔을 끄집어내고 싶지 않았어요. 대신 그 자리에 실제 소방관들의 이야기를 곳곳에 넣었죠. 순직한 소방대원의 작업복을 동료들이 관물대에 보관하는 장면 같은 거요. 실화를 바탕으로 한 작품은 구조가 워낙 튼튼해 그 위에 어떤 집을 지어도 잘 안 무너져요.”

영화 ‘소방관’ 스틸컷. 바이포엠스튜디오 제공 영화 ‘소방관’ 스틸컷. 바이포엠스튜디오 제공

영화의 생생함을 살리기 위해선 컴퓨터그래픽(CG) 대신 실제로 촬영하는 걸 택했다. 곽 감독은 “어떤 감독들은 요즘 CG로 다 되는데 왜 굳이 저렇게 해서 배우와 스태프를 고생시키냐고 한다”며 “하지만 저는 연기 때문에 눈이 보이지 않아 당황하는 배우의 표정, 불의 온도를 느끼며 달라지는 걸음걸이를 모두 담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대신 혹시 모를 사고를 예방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단다. 촬영 현장에 비번인 소방대원들이 함께해 안전에 힘썼고, 세트가 불에 녹거나 타서 허물어지지 않게 H빔 등 철제 구조를 사용했다고 말했다.

사실 이 작품은 지난 2020년 촬영을 마쳤지만, 코로나19 여파와 주연 곽도원의 음주운전 문제로 4년 만에 빛을 보게 됐다. 곽 감독은 “영화 개봉을 준비하면서 우여곡절을 겪었고, 여전히 살얼음판을 걷고 있는 기분”이라면서도 “날 힘들게 했지만, 겸손하게 만든 작품이기도 하다”고 했다. 그는 “세상일은 내가 열심히 한다고, 진심을 다한다고 그렇게 되지만은 않는다는 걸 새삼 깨달았다”며 “감독이자 한 인간으로서도 많이 배웠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이렇게 덧붙인다. “개봉이 미뤄지면서 후반 작업에 더 신경 쓸 수 있었던 건 다행이에요. 영화도 다 자기만의 운이 있다고 생각해요. 이미 이 영화의 주사위는 던져졌습니다.”


남유정 기자 honeybee@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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