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취재가 시작되자

장병진 기자 joyful@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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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지 없는 이들을 움직이게 하는 힘
취재가 시작되자 밈 커뮤니티 유행
언론 혐오 불신 속 순기능 부각돼
공감가는 콘텐츠 독자 참여 필수

“배 째”를 외치며 그냥 버티는 이들이 있다. 배 째와 비슷한 종류로 “어쩌라고” “네가 그래서 무엇을 할 수 있는데” 등이 있을 것 같다. 종종 이런 류의 사람을 만난 이들은 대항할 방법을 찾기 위해 노력하지만 때로는 정말 법은 멀리 있다. 답답함이 극에 달하면 언론사에 제보를 하거나 커뮤니티에 글이라도 남긴다. 종종 이러한 사실을 알아챈 언론사에서 취재를 시작하면 상황이 바뀌기 시작한다.

최근 서울로 1박 2일 워크숍을 떠난 강원도 정선군청 공무원 40명이 단체 예약을 해놓고 노쇼(예약 부도)를 했다는 이야기가 자영업자들의 커뮤니티에서 화제가 됐다. 노쇼를 당한 업주는 커뮤니티에 ‘정선군청에서 40명 단체 예약을 해놓고 예약한 적이 없다고 발뺌한다’며 ‘녹음파일을 들려주니 그때서야 인정했다’고 글을 썼다. 이 업주는 피해보상을 받고자 정선군청에도 연락했으나 “보상은 힘들다”는 답변을 받았다. 하지만 ‘취재가 시작되자’ 정선군청은 행사를 맡긴 위탁 업체 측의 실수로 인해 노쇼 사태가 일어났고 업주에게 최대한 보상을 하겠다고 약속했다.

부산을 대표하는 절경이자 시민 휴식 공간인 이기대에 아이에스동서(주)가 고층 아파트 신축을 추진했다. 경관이 훼손된다는 우려에도 해당 관청인 남구청은 “법적 절차를 따랐을 뿐”이라는 입장을 내놓았다. 하지만 부산일보의 ‘취재가 시작되자’ 지역 여론이 들끓었다. 결국 여론 악화와 부산 시민 반발, 시민 정서에 배치된다는 점에 부담을 느낀 아이에스동서는 아파트 건설 포기라는 전향적인 결정을 내렸다.

이러한 사례들이 쌓이며 커뮤니티에는 ‘취재가 시작되자를 당해야겠네’와 같은 밈도 유행하고 있다. ‘취재가 시작되자’라는 말은 어디서, 누가 먼저 시작했는지 알 수 없다. ‘취재가 시작되자’를 풀이하면 논란이나 사건사고가 발생했을 때 해결 의지를 전혀 보이지 않던 이들이 언론의 취재가 시작되거나 보도가 진행되어 사건이 공론화되자 황급히 상황을 수습하는 현상을 말한다. 이 때문에 배 째를 외치는 이들의 태세를 바꾸게 하는 마법의 단어로 인식되기도 한다. 커뮤니티에서는 게시글 1개보다 민원 1건이 낫고, 민원 1건보다 취재 1회가 문제 해결에 더 용이하다는 우스갯소리도 있을 정도다.

‘취재가 시작되자’가 왜 마법의 단어가 됐냐를 두고는 다양한 의견이 있다. 어떤 이슈가 터져 시끄러워지면 당사자만 손해를 보기 때문일 수도 있고, 남의 시선이 중요한 한국 사회의 특성상 취재를 당한다는 것 자체가 불미스러운 일이라는 분석도 있다. 어떤 이유에서든 ‘취재가 시작되자’는 언론의 순기능 중 하나로 평가받는다.

우리나라의 언론 신뢰도는 낮은 편이다. 영국 옥스퍼드대학교 로이터저널리즘연구소가 지난 6월 발표한 ‘2024 디지털뉴스보고서’ 조사 결과 ‘뉴스를 전적으로 신뢰한다’고 답한 한국인은 31%에 그쳤다. 한국이 처음 조사에 참여한 2016년(22%) 이후 성적에 비춰보면 지난해 28%보다도 3%포인트 높아 역대 두 번째로 높은 수치긴 하다. 다만 조사국 평균 신뢰도(40%)보다 9%포인트 낮았고 아시아·태평양 11개 국가·지역 중에서는 최하점이었다.

언론의 힘은 ‘신뢰’다. 신뢰도가 낮다는 것은 그만큼 언론의 힘이 약하다는 뜻이다. 언론에 대해 혐오와 불신이 있는 상황에서 이러한 밈은 언론사들에게 힘을 주고 있다. ‘취재가 시작되자’ 같은 코너를 신설한 언론사들도 있다. 개인적으로도 커뮤니티에서 ‘취재가 시작되자 당해야겠네’라는 밈을 보면 괜히 기분이 좋다. 여전히 취재의 힘을 믿어주시는 독자들이 많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플랫폼에서는 클릭 수만큼이나 PIS(Post Interaction Score) 지표가 중요하다. 이는 좋아요, 댓글, 공유 등을 지수로 합산한 수치로 쉽게 말해 사람들이 페이지 게시물에 얼마나 참여했는지 알 수 있는 숫자다. 언론사로서는 독자들의 공감을 이끌어냈다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예전 같으면 부산일보로 전화가 온 숫자, 격려나 반론를 담은 편지의 숫자, 편집국을 찾아와 감사 인사나 고성을 지른 숫자 정도가 될 듯하다. 그래서 ‘취재가 시작되자’의 마법이 발휘된 기사는 늘 PIS 지표가 상위권이다. 독자들이 원하고 가려운 곳을 긁어주는 소위 먹히는 콘텐츠인 셈이다.

앞으로도 ‘취재가 시작되자’가 마법의 단어로 남기 위해서 언론사의 노력만큼이나 독자분들의 도움이 필수적이다. 다양한 플랫폼에서 접하는 부산일보의 콘텐츠에 댓글, 좋아요 등으로 콘텐츠 방향을 설정할 수 있는 중요한 키가 되어 주시길 바란다. 아울러 가려운 곳을 긁어주는 취재를 위해 많은 제보도 부탁드린다. 부산일보 제보 전화 051-461-4131, 또는 유튜브나 인스타 부산일보 채널은 ‘취재를 시작하기’ 위해 항상 열려있다. 장병진 디지털총괄부장 joyful@busan.com


장병진 기자 joyful@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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