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시선으로] 여자대학의 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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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현 동아대학교 젠더·어펙트연구소 공동연구원

여자대학이라는 말에는 지난 100년에 걸친 여성 고등교육의 역사가 묻어있다. 100년 전 일제 강점기 때는 여성에게 학교를 보낸다는 인식이 그리 굳건하지 않았고, 남녀 분리 교육은 그 자체로 당연하던 시절이었다. 오늘날까지 여성대학이 아니라 여자대학이라 부르는 까닭은, 그 시절 여자고등보통학교(현 여자중·고등학교)와 오늘날 여자대학의 전신인 여자전문학교에서 그 말이 유래했기 때문이다. 나아가 과거 여자대학의 커리큘럼은, 가정학 등 그 시절 여성이 배울 법하다 여겨진 것들로 종종 제한되기도 했다.

여자대학에 묻은 여성 공간의 뜻은 이처럼 시대에 따라 변한다. 오늘날 여성 고등교육에서 여자대학이 갖는 여러 의미들 중 하나는, 여성들로 하여금 누군가의 배우자를 넘어 여성 자신의 삶을 그리도록 하는 데 있다. 여성이 다양한 진로로 사회에 진출할 수 있고, 여성이 누군가의 아내를 넘어 세상 무엇이든 될 수 있다는 꿈을 품게 만드는 것이 여자대학의 중요한 기능 중 하나다.

마땅히 남녀공학에서도 행해져야 할 그러한 교육의 기능이 구태여 여자대학에서 추구되는 까닭은 다음과 같다. 사회 속 여성의 역할과 지위가 지금도 여전히 남성과 연애하고 결혼하고 자식 낳는 것으로 강제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물론 어떤 여성 개인에게는 그 역할이 얼마간 행복한 일일 수 있지만, 인생의 많은 가능성을 스스로 점쳐볼 20대에 그것이 제 삶의 전부인양 강제되는 일은 바람직하지 않다. 그러니 그렇게 제도적으로 주어지는 성 역할을 떠나, 4년이라도 여자대학에서 인생의 주체적인 꿈을 점쳐보는 일이 여성에게 중요한 것이다.

따라서 여자대학의 성별 분리를 유의미하게 만든 것은 일차적으로 평생에 걸쳐 특정 방식으로 여성의 꿈을 다듬어온 사회다. 물론 그런 분리를 통해 어떤 의식이 성취되는 것은 궁극적으로 여성 개인에게 좋은 일이 아니다. 하지만 세상의 많은 일은 궁극이 아니라 지금 여기의 제약들로 이루어진다. 그럴 때는 그 제약을 창조적으로 활용하는 노력들이 이따금 필요하다. 앞선 예처럼 여자대학의 성별 분리를 운명이 아닌 전략적이고 일시적인 경계로 사고하여, 그 의미와 효용을 여성의 입장에서 새롭게 정의내리는 일이 그렇다.

여자대학 공학 전환 반대 시위에 여자대학 출신 한 트랜스젠더 여성이 연대했다. 인생에서 4년만이라도 남성에게 매력적인 존재로 ‘팔릴’ 신세를 면해보는 것은, 그 필요의 측면에서 시스젠더 여성에 비해 트랜스젠더 여성이 더했으면 더했지 결코 덜하다 할 수 없다. 여자대학을 낳은 것은 여성을 비롯한 누군가를 특정 역할과 공간에 집요하게 몰아넣는 제도적 이성애다. 여자대학을 비롯하여 거기에 저항하기 위한 거점은 많을수록 좋고, 그곳에서 바깥으로 향한 천 개의 길이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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