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을 여는 시] 가을 저녁의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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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춘수(1922~2004)

누가 죽어가나 보다.

차마 다 감을 수 없는 눈

반만 뜬 채

이 저녁

누가 죽어가는가 보다.

살을 저미는 이 세상 외롬 속에서

물같이 흘러간 그 나날 속에서

오직 한 사람의 이름을 부르면서

애터지게 부르면서 살아온

그 누가 죽어가는가 보다.

풀과 나무 그리고 산과 언덕

온 누리 위에 스며 번진

가을의 저 슬픈 눈을 보아라.

정녕코 오늘 저녁은

비길 수 없이 정한 목숨이 하나

어디로 물같이 흘러가 버리는가 보다.

-시집 〈김춘수 시 전집 1〉(2004) 중에서

‘가을 저녁’의 노을은 늘 스산하고 서늘하여 쓸쓸한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가을이 주는 시듦에 저녁이 주는 꺼짐의 이미지가 결합하여 ‘소멸’에 대한 두려움을 느끼게 하고, 궁극적 관심의 대상인 ‘죽음’에 대한 그리움을 갖게도 한다. 그렇다, 죽음도 그리움의 대상이 될 수 있게 만드는 가을 저녁의 풍경! 붉게 사위어가는 가을 저녁의 대기는 온몸에 쌀쌀한 소름을 돋게 하면서 하늘 저 너머에 그리운 이들이 모여 있을 것 같은 느낌을 준다.

‘온 누리 위에 스며 번진 가을의 저 슬픈 눈’을 보게 되었을 때 그런 감정에 들 수밖에 없지 않을까? 낯선 감정이 낯선 세계를 창조한다. 그래서 시인은 이 아름답고 이상한 풍경으로 인해 ‘비길 수 없이 정한 목숨이 하나 어디로 물같이 흘러가 버리는’ 것으로 생각한다. 죽음을 알 수 없는 세계로 ‘물같이 흘러가는’ 것으로 보는 것이다. 하여 죽음은 두려움이지만 영원한 그리움이 되기도 한다. 김경복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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