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명섭 칼럼] “대통령 탄핵 청원” 국민들의 아우성

곽명섭 논설위원 kms01@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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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설위원

국정 동력 정점으로 올려야 할 시기
윤 대통령 탄핵 청원 100만 명 돌파

국민의 집단 정치적 의사 표현 주목
현 정부의 불통 등 불만 표출로 봐야

법률적 측면 떠나 민심의 흐름 중요
그런데도 여전히 변화 노력 안 보여

또 ‘대통령 탄핵’이라는 용어가 공식적으로 정치권 한복판에 등장했다. 그것도 현 정권의 임기가 정확히 절반을 넘지도 않은 때에 국민들의 청원으로 이슈가 됐다. 박근혜, 문재인 전 대통령에 이어 윤석열 대통령도 탄핵이라는 용어와 엮이는 불명예스러운 꼬리표를 달게 됐다.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을 발의해달라는 국회의 국민동의 청원 참여자가 3일로 100만 명을 넘어선 것은 국민들의 집단 정치적 의사 표현으로 그 함의가 매우 복합적이다.

윤 대통령에 대한 탄핵 청원은 지난달 20일 공개된 지 사흘 만에 5만 명을 넘어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로 회부됐지만 사실 그 시점만 해도 대다수 국민은 이런 청원이 있는지조차 잘 몰랐다. 그런데 윤 대통령이 ‘이태원 참사 조작 가능성’을 언급했다는 김진표 전 국회의장의 회고록 내용이 공개된 이후 청원 참여가 급증하며 13일 만에 100만 명을 훌쩍 넘었다. 대기 인원이 몰리면서 서버 증설을 할 정도로 청원 사이트는 북새통을 이뤘다. 지금도 많은 인원이 대기 중인 점을 고려하면 청원 마감 시한인 오는 20일에는 그 수가 더욱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아직 정확히 임기 전반기를 마치지도 않은 윤 대통령이 한창 국정의 동력을 정점으로 끌어올려야 할 시기에 100만 명이 훨씬 넘는 많은 국민이 대통령 탄핵 청원에 동참했다는 것은 정략적 관점을 떠나 매우 걱정되는 상황이 아닐 수 없다.

물론 탄핵 청원은 그 숫자가 아무리 많다고 해도 이것만으로 탄핵의 효력이 발생하지는 않는다. 국민들의 탄핵 청원은 국회 청원심사소위원회로 넘겨져 여기서 법안 반영·청원 취지의 달성·실현 불능·타당성 결여 등 여부가 종합적으로 검토된다. 현재로선 대체로 청원소위나 법제사법위에 장기 계류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무엇보다 탄핵은 국민 청원이 아니라 현역 국회의원 3분의 2의 동의가 있어야 첫 관문을 통과할 수 있고 거기다 헌법재판소의 결정도 거쳐야 한다. 이 모두를 관통하는 핵심 조건은 대통령의 명백한 위법 행위가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하지만 지금은 탄핵 카드를 만지작거릴 만한 대통령의 위법 행위가 딱히 없다는 점은 더불어민주당 등 야권도 어느 정도 인정하는 부분이다. 대통령실이 밝힌 “명백한 위법 사유가 있지 않는 한 탄핵이 가능하다고 보지 않는다”는 입장도 결국 법률적인 측면에 본 관점인 것이다.

그러나 100만 명 이상이 동참한 탄핵 청원을 대통령실의 언급처럼 단순히 법률적 측면에서만 보는 관점은 현 정권의 불통 이미지만 더 굳게 할 수 있다. 청원에 참여한 100만 명이 넘는 국민들도 청원 자체만으로 대통령의 탄핵 절차가 진행되리라고 여긴 것은 아닐 터이다. 무엇이 이토록 급속하게 민심의 불길을 댕겼는지 생각해 봐야 한다. 현 정부가 들어선 2년여 동안 쌓이고 쌓인 국민들의 불만이 탄핵 청원으로 응결된 것이라고 보는 게 마땅하다.

이번 탄핵 청원의 과정을 보면 짐작할 수 있다. 처음엔 크게 주목받지 못했던 청원은 김진표 전 의장의 회고록 내용 공개가 불쏘시개 역할을 하면서 순식간에 확 타올랐다. 이는 매우 중요한 시사점을 던져 준다. 윤 대통령의 지지율이 20%대 바닥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지금 상황은 국정에 불만인 민심이 매우 불타오르기 좋은 때다. 곳곳에 바싹 마른 풀과 나무가 널려 있는 상태와 같다. 한 번의 작은 불쏘시개로도 온 산을 금방 불타오르게 할 수 있는 것처럼 낮은 지지율의 윤 대통령 사정도 크게 달라 보이지 않는다. 그런데도 작은 불씨가 큰 불길로 번지지 않도록 민심을 달래려는 노력을 현 정권에선 아직도 볼 수 없다.

문재인 전 대통령의 탄핵 청원이 146만 명에 달했던 2020년 2월 당시, 청와대는 “어느 의견도 허투루 듣지 않고 겸허히 받아들이겠다”며 자세를 한껏 낮췄다. 탄핵 청원에 반대하는 청원도 150만 명을 넘어 탄핵 동의자보다 많았다. 같은 탄핵 청원이라도 지금과는 상황이 아주 달랐다.

현 정권은 총선 참패와 계속되는 낮은 지지율에도 민심 관리에는 거의 손을 놓고 있는 모습이다. 그러는 사이 민심은 정권으로부터 갈수록 멀어지고 있다. 정가에서는 이번 탄핵 청원 역시 윤 대통령은 크게 신경 쓰지 않을 것이라는 의견이 많다. 법률적인 측면은 물론이고 국정 방향이 옳다고 믿는 신념은 더 강고해졌다.

그러나 이번 탄핵 청원은 국민들이 직접 행동으로 나서 의사 표현을 했다는 점에서도 그 무게감은 남다르다. 법률적인 실효는 없더라도 정치적인 파급력은 상당하다. 야권의 탄핵 시도도 더 노골화될 가능성이 높다. 이미 제시된 해법은 놔두고 자꾸 사면초가의 외진 곳으로만 가려는 듯한 현 정권의 모습이 안타깝기만 하다.


곽명섭 논설위원 kms01@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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