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동윤의 비욘드 야크] 우리는 어떠한 도시를 꿈꾸는가
(주)상지엔지니어링건축사사무소 대표이사
부산시장 후보 공약, 미래 설계 철학 시각 차
전재수, 바다 문명 바탕 새 산업 생태계 구축
박형준, 글로벌 도시로 체질 바꿔 성장 모색
흔히 도시를 건물과 도로, 산업과 인구가 밀집한 물리적 공간으로 이해한다. 하지만 사실 도시는 한 사회가 어떤 삶을 꿈꾸는지를 드러내는 집단적 상상력의 결과물에 가깝다. 도시에는 시대의 욕망이 압축되어 인간이 무엇을 두려워하며 무엇을 갈망하는지가 공간의 형태로 새겨져 있다.
고대의 성벽 도시가 외부의 침입으로부터 공동체를 지키기 위한 생존의 구조였다면, 근대의 산업도시는 생산과 속도를 중심으로 설계되었다. 오늘날의 글로벌 도시는 자본과 정보, 이동과 소비의 흐름 속에서 끊임없이 재편된다. 도시의 형태는 결국 인간 존재 방식의 변화를 반영한다.
독일 철학자 하이데거는 인간을 ‘거주하는 존재’라고 설명했다. 여기서 거주란 단순히 집을 소유한다는 의미가 아니다. 인간이 세계와 관계를 맺고 시간을 축적하며 삶의 의미를 형성해 나가는 방식을 의미한다. 그런 점에서 도시는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인간 존재를 가능하게 하는 조건이다. 도시의 구조가 시민들의 삶의 태도와 감각, 관계의 방식까지 결정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오늘날 많은 도시들이 더 이상 ‘거주의 공간’이 아니라 ‘경쟁의 공간’으로 바뀌면서 몰개성하게 서로 닮아간다는 점이다. 도시들은 앞다투어 더 높은 빌딩을 세우고 더 화려한 야경을 만들지만, 정작 그 안에서 살아가는 시민들의 삶은 점점 더 피로해진다.
프랑스 철학자 앙리 르페브르는 도시를 단순한 행정구역이 아니라 ‘삶이 생산되는 공간’으로 보았다. 경제 논리만으로 설명할 수 없는 인간 경험의 총체라는 의미다. 그는 시민들에게 ‘도시에 대한 권리’를 주창했다. 이는 단순히 도시를 이용할 권리를 넘어 도시의 방향과 의미를 함께 결정할 권리다. 도시를 누가 만들고 누구를 위해 운영할 것인가의 문제는 결국 민주주의의 본질과 직결된다.
인간 경험의 총체로서 도시를 고민할 때 부산은 이러한 도시의 본질적 질문과 생존 전략이 가장 첨예하게 교차하는 도시다. 부산은 한국전쟁 시기 피란수도였고, 산업화 시대에는 항만과 조선, 수출의 전진기지로 대한민국의 현대사를 지탱해 왔다. 그러나 산업구조의 변화 이후 청년 유출과 고령화, 지역경제 침체라는 구조적 위기를 겪으며 ‘지역 소멸’이라는 거대한 흐름 앞에 서 있다. 그렇기에 이번 부산시장 선거에서 등장한 도시 공약들은 부산이라는 도시가 어떤 미래를 선택할 것인가를 묻는 질문이기도 하다.
흥미로운 점은 박형준 후보와 전재수 후보의 공약이 겉으로는 다른 길을 말하는 듯하면서도 도시의 생존 전략이라는 측면에서 상당한 접점을 가진다는 것이다. 양측 모두 AI와 데이터 산업을 부산의 미래 먹거리로 제시한다. 청년 일자리와 산업 생태계 복원을 핵심 과제로 내세우는 점도 같다. 그러나 도시의 미래를 설계하는 철학에서는 명확한 시각 차이가 드러난다.
전재수 후보의 비전은 부산의 장소성과 역사성에 무게를 둔다. 부산항과 해양 산업, 해사법원 설립, 부울경 연합 같은 구상은 부산을 ‘바다를 중심으로 한 문명권’으로 재정의하려는 시도다. 여기에 해양 AI 데이터센터와 자율운항 선박, 해상풍력 같은 미래 산업을 접목해 새로운 산업 생태계를 만들겠다는 구상이다. 이는 도시가 오랜 시간 축적해 온 기억과 자산 위에서 미래를 만들어가려는 ‘축적의 전략’이라 할 수 있다.
반면 박형준 후보는 글로벌허브도시 특별법, 가덕도신공항, 산업은행 이전, AI 및 데이터 기술 생태계 구축 등을 통해 부산을 세계 도시 네트워크 속에서 경쟁 가능한 플랫폼으로 바꾸려 한다. 그의 비전은 부산을 글로벌 자본과 인재, 기술의 흐름 속으로 과감하게 재배치하려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이는 도시의 체질 자체를 바꾸어 새로운 성장 구조를 만들려는 ‘전환의 전략’에 가깝다.
건축과 도시계획의 관점에서 보면, 이 두 가지 시선은 대립하는 것이 아니다. 좋은 도시는 과거의 기억과 미래의 가능성이 어떻게 공존하느냐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오늘날 세계 도시들이 추구하는 ‘스마트시티’의 본질 역시 기술이라는 효율적 수단을 통해 시민의 인간적인 삶과 공동체를 어떻게 지속 가능하게 만들 것인가의 문제로 귀결된다.
선거가 며칠 남지 않았다. 그러나 선거의 진정한 가치는 승패가 갈리는 그날 밤이 아니라, 그 이후에 시작된다. 선거 과정에서는 서로 다른 비전이 충돌할 수밖에 없지만, 선거 이후의 정치는 결국 그 비전들을 하나의 도시 미래로 통합해 가는 과정이어야 한다. 중요한 것은 부산이라는 도시가 앞으로 어떤 삶의 방식을 선택하고 어떤 시간을 다음 세대에 남길 것인가 하는 것이다. 도시란 인간이 함께 살아가기 위해 만들어내는 가장 거대한 삶의 형식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