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희창의 클래식 내비게이터]숨겨진 보석, 파니의 녹턴
음악평론가
펠릭스 멘델스존의 누나인 파니 멘델스존. 위키미디어
조희창, 음악평론가. 부산일보DB
펠릭스 멘델스존의 누나인 파니(Fanny Mendelssohn, 1805~1847)는 당대 최고의 피아니스트 중의 한 명이자 뛰어난 작곡가였다. 그러나 당시의 여성은 사회생활보다 집안일에 충실해야 한다는 보수적인 벽을 넘어설 수 없었다. 파니는 열다섯 살이 되면서 음악 수업을 그만둬야 했다. 아버지는 파니에게 이렇게 말했다. “펠릭스에게 음악은 직업이 될 수 있을 거야. 그러나 너에게 음악은 그저 장식품 정도일 뿐 삶의 중심이 될 수도 없고, 되어서도 안 돼... 그러니 앞으로 분별 있게 처신하도록 해라. 그것이 여자다운 것이다. 여성스럽게 행동하는 것이야말로 명예로운 일이다.”
아버지는 여성이 음악 작품을 출판하는 것이 적절치 못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파니는 아버지의 눈을 피해서 홀로 작곡하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나중에 하나씩 알려진 사실이지만, 펠릭스의 작품 중에는 누나가 작곡한 것이 꽤 많이 들어 있었다. 한 예로 펠릭스가 빅토리아 여왕 앞에서 작품번호 8번인 ‘12개의 노래’를 연주했을 때, 여왕은 그중 가장 마음에 드는 곡이 세 번째 곡 ‘이탈리안’이라고 했다. 이에 펠렉스는 그 곡을 누나 파니가 작곡한 것이라 밝혔다고 한다. 아버지가 말했다시피, 당시에는 여성이 작곡계에 발을 들여놓기가 너무 힘들었다. 그래서 동생의 이름으로 발표할 수밖에 없었다.
파니는 프로이센의 궁정화가 빌헬름 헨젤과 결혼해서 몇 번의 유산 끝에 힘겹게 낳은 첫아들의 이름을 제바스티안 루트비히 펠릭스로 지었다. 그녀가 좋아하는 음악가 세 명의 이름을 조합한 것이다. (바흐-베토벤-멘델스존) 이후 남편이 세상을 떠나자 그녀는 다시 음악에 몰두했다. 1846년에 첫 작품집 ‘7개의 가곡’을 출판했고, 이어 본격적으로 음악 활동을 하기 위해 힘을 쏟았다. 그러나 1847년 5월 14일 동생이 발표할 ‘발푸르기스의 밤’을 반주하기 위해 연습하던 파니는 갑자기 손을 떨구며 쓰러졌다. 파니는 그날 밤에 뇌출혈로 세상을 떠났다.
소식을 들은 멘델스존은 너무나 절망하여 그 자리에서 실신했다고 한다. 멘델스존은 자신의 마지막 현악 4중주에 ‘파니를 위한 레퀴엠’(Requiem For Fanny)이라는 제목을 붙였다. 그 후부터 시름시름 앓던 멘델스존은 누나의 사망으로부터 6개월도 지나지 않아 똑같이 뇌졸중으로 세상을 떠났다.
지금까지 밝혀진 것만 봐도 파니의 음악 세계는 매우 다채롭다. C장조 서곡, 현악 4중주와 피아노 3중주, 첼로와 피아노를 위한 판타지, 3개의 무언가, 피아노 모음곡 ‘일 년’(Das Jahr), 6개의 가곡 등을 남겨놓았다. 그중에서 ‘6개의 멜로디’ 3번 Db장조 녹턴 G단조를 듣는다. 파니가 남겨놓은 가장 아름다운 곡 중의 하나다.
파니멘델스존-노투르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