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을 여는 시] 엄마가 있다

부산닷컴 기사퍼가기

 송재학(1955~)

여자는 방금 장례식장에서 어린 딸을 고이 보냈다 묵주만 자꾸 굴리면서 입성이고 뭐고 추레해져서 여자는 누군가를 간신히 부른다 딸의 이름은 아니지만, 귀 기울이며 여자는 엄마 엄마를 되풀이한다 바짝 말라버린 하천을 맨발로 뛰어가면서 미간을 찡그리고 엄마를 부른다 딸아이가 자신을 부르는 것처럼 엄마 엄마, 입찬소리를 되풀이한다 엄마 속에 여자의 딸과 여자의 엄마와 딸의 엄마가 번갈아 나타난다 붙잡거나 저미거나 어루만지며 사무치던 엄마가 오롯이 이름을 부르고 있다

-시집 <습이거나 스페인> (2025) 중에서

슬픔은 어디까지 가서 엄마를 불러오는 걸까요. 딸을 떠나보낸 엄마가 부르는 엄마. 딸의 이름이 아닌 엄마를 부르는 딸. 누군가 간절히 필요할 때 터져 나오는 이름. 엄마의 딸이었고 딸이 있는 엄마가 되어보니 슬픔을 붙잡고 있는 저 울부짖음이 무언지 알 것만 같습니다. 그 어떤 것으로도 비유될 수 없는 상실 앞에서 어린 딸이 되어버린 엄마. 엄마 속에 여자의 딸과 여자의 엄마와 딸의 엄마가 번갈아 나타난다는 문장이 마음을 사무치게 합니다. 엄마가 되어서도 딸인 엄마. 말라버린 하천을 맨발로 뛰어가는 또 하나의 모정이 시리도록 아픕니다. 딸이 불러주었고 그래서 엄마였던 엄마가 자신을 대신 불러보는 것. 신은 모든 곳에 있을 수 없기에 어머니를 만들었다 합니다. 세상에 나와 처음으로 불렀던 엄마, 셀 수 없이 불렀던 엄마를 처음인 듯 불러봅니다.


당신을 위한 AI 추천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