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봇-사람 '일자리 전쟁' 시험대 오른 울산 산단

오상민 기자 sm5@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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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D현대중, 용접 로봇 등 투입
노조 “합의 없이 일방적 도입”
혁신·생존 놓고 노사 갈등 고조
현대차 노조 ‘아틀라스’에 반발
임협 요구안에 고용 보장 명시

휴머노이드 로봇 도입으로 인한 생산 인력 대체 움직임이 올해 제조업 임금 협상의 큰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사진은 지난해 현대자동차 울산공장 본관 앞에서 열린 현대차 노조의 총파업 결의대회 장면. 연합뉴스 휴머노이드 로봇 도입으로 인한 생산 인력 대체 움직임이 올해 제조업 임금 협상의 큰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사진은 지난해 현대자동차 울산공장 본관 앞에서 열린 현대차 노조의 총파업 결의대회 장면. 연합뉴스

산업수도 울산이 공정 무인화라는 거대한 시험대에 올랐다. 인력난과 산업 안전을 앞세워 로봇 투입을 서두르는 사측과 일자리 사수에 사활을 건 노동계가 정면충돌했다. 특히 이번 갈등은 단순한 지역 사업장 문제를 넘어, 대한민국 전체 제조업의 임금 협상과 인간 일자리 구조 재편에 막대한 영향을 미칠 최대 뇌관으로 부상했다.

27일 지역 경제계와 노동계에 따르면 HD현대중공업과 현대자동차 등 핵심 사업장 노사는 인공지능(AI)과 휴머노이드 로봇 도입을 둘러싼 치열한 기 싸움에 돌입했다. 사측은 생산성 향상과 구인난 해소를 위해 무인화를 밀어붙이고, 노조는 이를 생존권 위협으로 규정하며 팽팽하게 맞서고 있다.

가장 전운이 짙은 곳은 HD현대중공업이다. 노사가 최근 K조선 미래 항로 개척을 위한 노사 공동협의체를 가동 중이나 갈등의 골은 깊다. 금속노조 현대중공업지부는 “사측이 2024년 6월 이후 노사 합의 없이 82대에 달하는 로봇을 현장에 일방 투입했다”고 반발한다. 가공소조립부 용접 로봇과 판넬조립부 슬릿(틈새 용접) 로봇, 드론 촬영 등이 무분별하게 도입됐다는 입장이다.

노조는 기존 단체협약을 보완할 강력한 산업전환협약 체결로 사측을 압박하고 나섰다. 로봇의 카메라와 센서가 노동자 감시망으로 전락하는 것을 막고자 데이터 관리 권한의 노사 공동 행사를 요구하고 있다. 특히 2028년 투입이 예고된 휴머노이드 앨리스를 두고 기술 설계 단계부터 노조가 참여하는 참여형 전환으로 배수진을 쳤다. 인력 대체가 아닌 작업 보조와 안전 향상으로 자동화의 기준을 명확히 하겠다는 의도다.

금속노조 현대중공업지부 관계자는 “자동화가 노동자 감시와 구조조정의 도구로 전락하는 것을 막기 위해 단체협약을 보완하는 포괄적 개념의 산업전환협약 체결이 반드시 선행돼야 한다”고 밝혔다.

보스턴다이나믹스의 '차세대 전동식 아틀라스' 비구동 모델이 현대자동차 양재동 본사사옥에 전시돼 있다. 연합뉴스 보스턴다이나믹스의 '차세대 전동식 아틀라스' 비구동 모델이 현대자동차 양재동 본사사옥에 전시돼 있다. 연합뉴스

현대자동차 노조 역시 올해 임금협상 요구안 전면에 AI 도입에 따른 고용과 노동조건 보장을 명시했다. 노조는 “노사 합의 없이는 단 1대의 로봇도 현장에 들어올 수 없다”며 휴머노이드 로봇 아틀라스 도입에 제동을 걸었다.

현대차 노사 갈등의 핵심은 일자리 축소와 임금 삭감 방어다. 노조는 무인화 공정으로 근로 시간이 단축되더라도 기존 임금 수준을 유지하기 위해 완전 월급제 쟁취를 벼른다. 사측은 아틀라스의 국내 투입 계획이 없다고 선을 그었으나, 노조는 선제적 방어막 구축에 총력을 쏟고 있다.

반면 석유화학 산업은 무인화가 생산 인력 대체보다 중대재해 예방에 초점이 맞춰져 상대적으로 마찰이 덜하다. 가상공간에 공장을 구현하는 디지털 트윈 기술로 이상 징후를 찾거나, 대규모언어모델(LLM) 기반의 안전 AI 에이전트를 KPX케미칼 등 산단 전반에 구축하며 실시간 대응 체계를 강화하고 있다.

지역 노동계와 학계는 울산에서 촉발된 이번 무인화 갈등이 향후 전국 모든 사업장의 노사 관계를 규정할 중대한 이정표가 될 것으로 분석한다. 자본의 이익 극대화 논리와 노동자의 일자리 방어 논리가 정면으로 부딪히는 첫 사례이기 때문이다. 로봇이 창출한 부가가치를 자본이 독식할 것인지, 근로 시간 단축과 임금 보전을 통해 노동자와 나눌 것인지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울산에서 처음 시험대에 오른 셈이다.

국가통계포털(KOSIS)에 따르면 지난해 전체 취업자 중 제조업 비중은 15.2%로 역대 최저치를 찍었고 관련 취업자 수도 3년 연속 내리막이다. 55세 이상 숙련 인력 이탈이 가속하는 상황에서 로봇으로 생산 공백을 메우려는 사측과 생존권을 지키려는 노동계의 격돌은 피할 수 없는 수순이다.

전문가들은 신기술 도입이 인간의 일자리를 소외시키지 않도록 제도적 완충 장치가 필수적이라고 지적한다. 디지털 자동화 컨설팅 회사인 어고노믹스 백승렬 대표(전 현대자동차 고용안정위원회 노사 자문위원)는 “현재의 휴머노이드는 숙련된 사람의 동작 데이터가 있어야 학습과 실행이 가능하다”며 “이 핵심 데이터의 주권이 노동자에게 있는 만큼, 노사가 이를 공유하며 기술 발전의 이익을 나누는 ‘윈윈’ 지점을 찾아야 한다”고 분석했다. 이어 “단순 반복 노동은 기계에 맡기되 사람은 로봇을 교육·관리하는 고차원적 업무로 전환되는 과정에서 노사가 합의한 정의로운 산업 전환 모델이 필수적”이라고 조언했다.


오상민 기자 sm5@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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