쓸모없다? 다 생긴대로 쓰이는 법! 그러니 한바탕 웃는 게지요…광주 양림동 펭귄마을 탐방
빈집·노인만 늘던 마을 이젠 전국 명소 변모
촌장 김동균 씨 13년간 생활폐품 모아 전시
입소문에 관람객 늘자 지자체 공예거리 조성
어르신 뒤뚱뒤뚱 걷는 뒷모습 마을 이름 돼
‘조아라 기념관’ 등 역사문화 유산도 볼거리
광주 양림동 펭귄마을 촌장 김동균 씨가 가장 애착 가는 펭균마을 내 시계 거리에서 환하게 웃고 있다. 13년 전부터 쓰레기들을 주워 모아 펭균마을을 조성한 김 촌장의 노력으로 이곳은 연간 20만 명이 찾는 명소가 됐다. 김진성 기자 paperk@
무용지용(無用之用). 쓸모가 없는 것이 어떤 때는 도리어 크게 쓰인다는 말이다. 장자의 인간세편(人間世篇)에 나오는 이야기다. 세상에는 쓸모없는 게 없다. 무용지용이란 말이 가장 잘 표현된 곳이 있다. 광주시 남구 양림동의 펭귄마을이다. 버려진 쓰레기만 가득했던 마을이 연간 20만 명이 찾을 정도로 핫플레이스로 변모한 곳. 지역 소멸 위기가 한창인 요즘, 정말 반가운 곳이다.
■뒤뚱뛰뚱 펭귄마을 핫플로 거듭나다
펭귄마을 입구에 광주 남구 평화의 소녀상이 눈에 띄었다. 소녀상 혼자가 아닌 할머니와 소녀가 함께 있는 소녀상이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의 상징적인 인물인 이옥선 할머니의 소녀시절 모습과 90세가 넘은 이옥선 할머니 모습이 함께 있다. 과거와 현재는 서로 분리될 수 없고 서로 연결돼 있음을 암시하는 듯 했다. 과거로의 시간여행을 할 수 있다는 펭귄마을과 많이 닮아 있다.
마을 입구 펭귄 조형물
펭귄마을에 들어서자 미켈란젤로의 ‘천지 창조’를 패러디한 ‘펭귄 창조’가 반긴다. 아담 대신 펭귄이 전능하신 신과 연결돼 있는 모습이 익살스럽다. 벽화를 지나니 이번엔 실물이다. 한옥 마루에 천장에 닿을 듯 커다란 펭귄 조형물이 앉아 있다. 관람객마다 펭귄 조형물 옆에서 사진 찍기에 여념이 없다. 포토존이다.
펭귄마을 골목을 들어서자 곳곳에 설치된 벽화와 고장 난 벽시계, 부엌에 있어야 할 찌그러진 양은냄비가 담벼락에 붙어 있다. 마치 1970~1980년대 시간여행을 온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다. 심지어 당시 사용한 미용실 고데기 기계마저 전시돼 있어 당시 어머니와 이모들의 헤어스타일을 생각나게 했다.
정말 무용지용이었다. 쓰레기로 버려도 될 만한 것들을 모아 ‘전시’를 하니 어엿한 작품이 된다. 무엇보다 이들은 추억을 소환하는 묘한 매력이 있다. 관람객들의 걸음 속도를 저마다 다르게 하는 것은 추억 소환 때문이다. 1970년대 공중전화를 전시해 놓고는 그 위에다 ‘부모님께 안부 전화 하기’란 글을 붙여 놔 부모님 생각도 들게 한다.
마을 입구 평화의 소녀상
우일선 선교사 사택
물건뿐 아니다. 담장에 쓰여진 글귀도 시간 여행을 떠나기 충분하다. ‘유행 따라 살지 말고 형편 따라 살자’, ‘술과 밤이 있는 한 남녀 사이는 친구가 될 수 없다’. 참! 옛날 말이다. 세대를 초월한 주옥 같은 글귀도 여럿 있다. ‘걱정 마! 넌 지금도 충분히 잘 하고 있으니까’ 1970년대 나무 대문에 적힌 글귀를 보면서 추운 겨울 언 귀를 녹여주시던 할머니의 따뜻한 품이 생각난다.
추억의 먹거리도 즐길 수 있다. 어릴 적 먹던 쫀드기와 달고나, 뽑기, 알사탕 등 추억의 과자를 판매하는 ‘펭귄 주막’이 성업 중이다. 인심 좋게 보이는 주인장이 한번 먹어보라고 슬쩍 권한다.
펭귄마을은 마을 촌장 김동균(72) 씨가 2013년부터 생활폐품을 활용해 펭귄마을을 꾸미면서 시작됐다. 시작은 미미했다. 갈수록 빈집이 늘어나고 노인들만 사는 마을에 뭐라도 해야겠다고 생각한 촌장은 버려진 시계를 주워오기 시작했다. 벽시계, 탁상 시계, 손목 시계 등 닥치는 대로 시계를 모았고, 그것으로 골목 벽을 꾸몄다. 해보니 재미도 있고 썰렁한 마을 느낌도 사라지는 것 같아 오래된 주전자, 낡은 라디오, 전화기 등 온갖 버려진 물건들을 모아 전시했다. 김 촌장은 “처음엔 재미 삼아 시작했는데 동네 분들이 좋다고 하니까 점점 더 거리를 넓혀가면서 작업을 이어갔다. 하다 보니 손재주도 생기고 좋더라”고 말했다.
조아라 기념관
조아라 기념관 내부
내내 궁금한 걸 물었다. “왜? 펭귄마을인데요?” 답변은 의외로 간단했다. “어느 날 우리 동네 어르신 한 분이 걸어가는 데 뒤에서 보니 뒤뚱뒤뚱 걷는 모습이 꼭 펭귄 같아 그렇게 부르게 됐다”고 했다.
펭귄마을에 전시된 모든 작품은 촌장이 직접했다. 무려 13년 동안 버려진 폐품들을 모아 추억의 공간을 만든 것이다. 촌장에게 가장 애착이 가는 공간은 시계가 있는 곳이다. 그는 “요즘은 시계 자체를 잘 쓰지 않으니까 많이 버린다. 시계 자체가 추억이 되기도 하고, 펭귄마을을 만들 때 제일 처음 작업한 곳이라 많은 애착이 간다”고 말했다.
촌장의 노력으로 2016년부터 마을에 관람객들이 찾기 시작했고, 입소문이 타면서 한때 연간 20만 명이 찾을 정도로 핫플레이스로 떠올랐다. 방문객이 늘어나자 광주시와 남구청 등은 2019년 낡은 한옥을 리모델링해 ‘펭귄마을 공예거리’를 조성했다. 현재 10여 개의 공방이 입주해 있다. 도자기, 유리, 금속, 섬유 등 다양한 공예품을 전시·판매도 한다. 물론 체험도 가능하다.
김 촌장은 “동네 주민들이 워낙 고령이어서 20년 정도 지나면 이 마을이 사라질지도 모른다. 내가 없어도 펭귄마을이 계속 유지됐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내비쳤다.
오웬 기념각
■광주의 어머니, 소심당 조아라 기념관
펭귄마을이 있는 양림동은 광주의 대표적인 역사문화마을이다. 1904년 광주읍성 밖의 광주천 건너에 있는 양림동에 유진 벨, 오웬 등 서양인 선교사들이 모여 교회와 학교, 병원을 개설해 근대 문화가 일찍부터 받아들여졌다. 이 덕분에 양림동은 과거와 현재를 잇는 역사문화 관광지로 알려져 있다. 양림역사문화마을은 골목골목이 단아하고 고풍스럽다. 식당과 카페도 근대식 건물로 지어진 곳이 많아 주변 경관과 잘 어우러져 있다.
문화마을을 거닐다 ‘광주의 어머니’로 불리는 소심당 조아라 기념관을 찾았다. 조아라 선생은 1912년 3월 전남 나주군 반남면에서 태어나 평생을 여성운동과 민주화·인권 운동에 헌신한 선구자다. 일제강점기였던 1936년에는 신사참배와 창씨개명 거부 등으로 옥고를 치렀고, 광주민주화운동 때는 수습대책위원으로 활동하다 6개월간 투옥되기도 했다. 1980년대 가족법개정운동에 앞장섰고 광주어머니회, 걸스카웃, 광주여성단체협의회 등을 육성·발전시키며 여성들의 권익향상을 위해 평생을 바친 분이다.
기념관은 2층으로 이뤄져 있는데, 1층은 주로 조아라 선생의 유품이나 상패, 사진 등이 전시돼 있다. 꽃을 든 조아라 선생의 입간판이 반긴다. 2층에는 선생의 독립운동 고난사와 생전 이룩한 각종 업적이 상세히 기록·전시돼 있다. 암울한 시대 사회복지사업의 선구자로, 여성 운동가로 민주화 운동의 대모로 불렸던 조아라 선생의 발자취가 숙연하다.
펭귄마을 골목
■우일선 선교사 사택과 호랑이가시나무 언덕
양림역사문화마을은 3개의 코스로 이뤄져 있다. 선교여행길, 문화예술여행길, 전통문화여행길 등이다. 어느 코스를 선택하던 양림역사문화마을의 진면목을 모두 체험할 수 있다. 코스별로 걸어서 1시간~1시간 30분 거리여서 다니는데 별다른 무리가 없다.
조아라 기념관에서 10분도 걸리지 않는 곳에 우일선 선교사 사택이 있다. 광주에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서양식 주택이다. 1908년 선교활동을 한 미국인 선교사 우일선(Robert M. Willson)에 의해 1920년대에 지어졌다고 전해진다. 고풍스러운 서양식 주택이다 보니 웨딩촬영지로도 많이 찾는다.
인근의 호랑이가시나무 언덕도 볼만하다. 이곳에는 수령 400년이 넘은 호랑가시나무(광주시 기념물 17호)가 자리하고 있다. 특히 2013년 언더우드 선교사 사택의 차고로 쓰였던 10여 평의 공간을 그대로 살린 호랑이가시나무 창작소를 비롯해 게스트하우스, 전시장인 호랑가시나무 아트폴리곤 등이 들어서 있어 다양한 볼거리를 경험할 수 있다.
글·사진=김진성 기자 paperk@busan.com
김진성 기자 paperk@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