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정하지만 탓할 수도 없는
■나쁜 의도는 없었습니다/손원평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소년의 성장기를 다룬 장편 <아몬드>를 쓴 손원평의 두 번째 소설집이다. 프리미엄 문화센터, 최고급 호텔, 공부방, 명품매장, 회사 사무실 등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열 편의 단편을 통해 비정하면서도 함부로 탓할 수 없거나 비루하면서도 고개가 끄덕여지는 우리 시대를 돌아본다.
‘당신의 손끝’은 대기업 산하 문화센터 미술 강사 효원이 주인공이다. 생각보다 급여가 적지만 경력 자체가 스펙이 된다는 말에 끌려 일을 시작한다. 효원은 부유한 수강생 주영의 응원을 믿고 ‘자신만의 화실’을 갖겠다는 꿈을 펼쳐보려다 좌절한다. 인간적 신뢰라고 믿었던 주영과의 관계가 사실은 허약하기 짝이 없는 계약관계였음을 깨달으면서.
‘태양 아래 반짝이는’과 ‘모자이크’는 남루한 현실을 벗어나려는 청년의 위태로운 행보를 좇으며 허망한 욕망의 끝을 비춘다. 자극적 가짜 뉴스를 생산하는 데 거리낌 없는 수습기자의 하루(통행증은 마스크)와 명품 구매 대행 아르바이트에 나선 인물의 분투기(그 아이) 역시 자본주의가 설계한 톱니바퀴 틈새에서 위태롭게 살아내야 하는 군상을 대변한다.
그런 면에서 ‘온전한 사과도 아니고 미숙한 변명도 아닌 말’로 읽히는 책 제목 <나쁜 의도는 없었습니다>는 소설집을 관통하는 주제어다. 누군가의 낙오나 상처에 가담했으면서도 시스템 탓으로 가볍게 책임을 떠넘기는 한 마디. 이 교묘하고도 서늘한 문장을 툭 던진 작가는 무슨 뚝심인지 값싼 희망이나 손쉬운 위로를 건네는 것조차 주저한다. 다만, 시스템 아래에서 태동하는 미세한 떨림의 순간(딸과 깍 사이)을 전할 뿐이다. 손원평 지음/창비/248쪽/1만 7000원.
김희돈 기자 happyi@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