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왜 가족 때문에 고통받는가?

김형 기자 moon@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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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은 한때 공기처럼 당연한 삶의 배경으로 여겨졌던 적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누군가에게는 도달하기 힘든 ‘사치’이고, 또 다른 이에겐 벗어나고 싶은 무거운 ‘굴레’다. 가족학 전문가인 서울대 진미정 교수는 신간 <가족이라는 사치>에서 묻는다. 왜 우리는 가족을 갈망하면서도 정작 그 안에서 고통받는가?

저자는 우리가 ‘가족은 갈등이 없어야 한다’는 이른바 ‘가족 신화’에 갇혀 있다고 진단한다. 이러한 가족 신화는 실질적인 문제 해결을 가로막고, 서운함을 죄책감으로 변질시켜 관계를 악순환에 빠뜨린다. 또 단란함을 이상화하는 ‘서정적 가족주의’는 구성원에게 과도한 의무감과 죄책감을 지운다. 우리 가족만 행복하면 된다는 이기주의가 ‘노키즈존’ 같은 타자화를 낳는다는 분석은 날카롭다. 특히 더 심각한 것은 ‘가족 양극화’다. 소득이 낮아 가족을 못 이루고, 혼자 살아 더 가난해지는 악순환이 관계의 빈곤을 고착화하며 고독사라는 사회적 절벽을 만든다.

흥미로운 대목은 인생의 관계망을 세 개의 동심원으로 분류한 ‘사회적 호위대 모델’이다. 부모에게 자녀는 늘 첫 번째 원에 있지만, 자녀에게 부모는 두 번째나 세 번째 원일 수 있다는 ‘관계의 비대칭성’을 인정하라는 조언이다. 이 거리감을 받아들일 때 비로소 서운함이라는 감옥에서 탈출할 수 있다.

결국 저출생과 고령화라는 거대한 파고 속에서 이제 가족은 ‘제도’가 아닌 ‘관계’로 재정의돼야 한다. 조립식 가족, 동거 등 전형화되지 않은 다양한 삶의 모델이 존중받을 때 우리는 비로소 ‘관계 절벽’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 진미정 지음/김영사/236쪽/1만 6800원.


김형 기자 moon@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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