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물썰물] 휴먼과 브리지

이상윤 논설위원 nurumi@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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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광 대국 이탈리아의 대표 도시 피렌체를 상징하는 수평 구조물은 아르노강을 가로지르는 베키오 다리다. 고대 에트루리아 시절 지어진 베키오 다리는 〈신곡〉의 저자 단테가 첫사랑 베아트리체를 만나 사랑에 빠진 곳으로도 유명하다. 르네상스의 주인공들이 오가면서 인문학적 서사를 쌓아온 대표적 ‘휴먼브리지’로도 꼽힌다.

고대나 중세에는 모든 교량이 사람 위주 보행교인 휴먼브리지였으나 산업혁명 이후 차량 보급이 보편화하면서 교량은 차량용으로 지어지는 것이라 여겨졌다. 차량용 교량 바깥쪽에 보행로를 만들기도 했지만 교량이 차량 위주 시설물이라는 점은 점점 확고해졌다.

그러다 1990년대 후반에 접어들면서 차량 위주의 ‘작용’에 사람 위주의 ‘반작용’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보행권이라는 이름으로 등장한 반작용은 도로 위 육교를 걷어내고 횡단보도를 만들어 사람 위주 교통을 강조하는 식으로 전개됐다. 그 반작용의 흐름은 마침내 차량 위주 교량에까지 미치게 됐고 지구촌 곳곳에서 휴먼브리지 개통 붐을 일으켰다.

대표적인 것이 2000년 영국 런던에 지어진 밀레니엄 브리지다. 세인트 폴 대성당과 테이트 모던 미술관을 잇는 길이 370여m의 이 휴먼브리지는 런던의 새로운 시그니처로 떠올랐다. 템즈강 남북을 잇는 유동인구를 늘려 상권 활성화와 부동산 가치 상승 등 막대한 경제 효과까지 낳은 것으로 알려진다.

2010년 건립된 싱가포르의 헬릭스 브리지도 휴먼브리지로는 세계적 명성을 누리는 교량이다. DNA의 사슬 구조를 연상하게 하는 세계 최초 이중나선형 다리라는 타이틀도 거머쥔 이 다리는 마리나베이센터와 마리나사우스를 이어준다. 태양광 발전과 실시간으로 변하는 스마트 조명 시스템 뿐만 아니라 각종 센서가 균열과 변형을 모니터링하는 IoT 기반 산업 테스트베드로도 눈길을 끈다.

여기에 부산의 수영강 휴먼브리지가 도전장을 냈다. 이달 초 개통된 수영강 휴먼브리지는 수영강 양안을 잇는 보행자 전용 교량이다. 수영구 주거지와 해운대구 APEC나루공원, 영화의전당 등을 곧장 이어줌으로써 보행자 만족도가 높다는 전언이다. 곧이어 울산에서도 남구 신정동과 중구 태화강 국가정원을 잇는 수상정원 형태의 휴먼브리지 설치가 추진된다.

잇따라 개통하는 휴먼브리지들이 탄소 배출은 낮추고 삶의 질은 높이는 상징으로 동남권 각 지역을 대표하는 시그니처가 되길 기대한다.

이상윤 논설위원 nurumi@busan.com


이상윤 논설위원 nurumi@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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