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승일 칼럼] 황석영처럼 누구나 AI로 소설 쓸 수 있을까
수석논설위원
팔순 노작가 챗GPT 협업해 신작 내놔
구성안·글쓰기 방식 상의해서 결정
작업 과정 따라 하니 중편 분량 나와
범용 AI 시대 임박, 예술 문법 급변
문학 창작에 자동화 도구 활용 늘어
작가 의도 반영하는 능력 가장 중요
‘〈어린 왕자〉 주인공에 시공간의 왜곡이라는 시련이 닥친다. 별 여행 후 지구로 오는 여정에서 시간이 50년 빨리 흐른 것이다. “저는 B-612 소행성에서 온 어린 왕자랍니다.” 부산 광안리해수욕장에 불시착한 우주선을 발견한 해양구조대는 자신을 어린 왕자로 칭하는 중년 사내를 보고 깜짝 놀란다.’
문학의 문외한이지만 AI(인공지능)로 소설을 써 보리라 작정했다. 여든 중반을 바라보는 황석영 작가가 신작 〈할매〉 집필에 챗GPT를 활용했다고 공개한 것이 계기다. 평소 자료 검색 도구로 생성형 AI를 요긴하게 쓰는 편이지만, 사색이 필요하고, 한 자 한 자 새겨야 하는 글쓰기는 ‘글쎄요’다. 경험과 직관, 의도가 용광로처럼 뒤섞이는 창작을 AI가 대체할 수 있을까. 이 관념을 황 작가가 깼다. 그의 인터뷰를 보면 자료 조사나 하이데거의 〈존재와 시간〉 개념 정리에 AI를 활용하는 데 그치지 않았다. 구성안이나 글쓰기 방식까지 상의해 결정했다. 이는 단순 조수 역할로 볼 수 없다. 창작의 협업을 넘어 능수능란하게 부렸다고 보는 게 맞다.
황 작가의 작업 방식을 유추해 과정을 설계했다. 제목은 〈늙은 왕자〉. 생텍쥐페리의 〈어린 왕자〉 세계관을 현대 도시로 확장한 스핀오프다. 동화 형식을 빌린 성장 소설의 틀과, 권력과 허영, 중독, 자본, 기계적 노동, 관념적 지식의 허상을 목격한 뒤 사랑과 관계의 본질을 깨닫는 원작의 서사를 유지했다.
챗GPT에 콘셉트를 입력한 뒤 광안리 불시착 이후 만날 인물의 예시와 상징체계를 완성했다. 부동산 중개업자(소유와 숫자), 인플루언서(허영과 인정 욕망), 환경미화원(책임과 헌신), 은퇴한 조선소 노동자(시간과 노동), 자갈치 아지매(길들임과 관계), 길고양이(조건 없는 돌봄), 사진관 주인(본질을 보는 눈). 낯선 부산에서 사랑과 관계의 의미를 깨닫고, 사진사의 도움으로 어린 영혼을 되찾는 결말로 가닥을 잡았다.
200자 원고지 200매 분량의 중편 소설 구성안이 나왔다. ‘원작처럼 우화 형식으로, 단문과 반복, 여백이 가득한 동화체로 서술하라!’ 전체 21장으로 나뉜 소설 한 권이 생성됐다. 지면 한계로 전재가 어려워 원작의 뱀 역할을 대체한 사진사와의 만남 장면만 소개한다.
‘“나는 길을 잃었습니다.” 사진사는 웃지 않았다. “사람은 길을 잃지 않아요.” “그럼요?” “자기가 누구인지 잊어버릴 뿐이지.” 사진사는 조용히 촬영 버튼을 눌렀고, 사진을 보여주었다. 그 속에는 중년의 남자가 아니라 어린 소년이 앉아 있었다.’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한강 작가의 대표작 〈소년이 온다〉를 일본어로 번역한 이데 슌사쿠 작가 인터뷰가 떠올랐다. “번역하다가 울고, 그래서 쉬었다가 작업할 수밖에 없었다.” “세 줄 쓰고 한 시간 울었다”는 한강 작가의 고통과 맞닿아 있다. 내면의 울림을 문자의 씨줄과 날줄로 엮어내려면 웬만한 내공으로는 어림없다. 예컨대 4만 자 소설을 쓴다면 작가는 4만 번 이상 선택의 고뇌를 거쳤다고 보면 된다.
완성된 〈늙은 왕자〉를 읽고 가책을 느꼈다. ‘데뷔 작가’로서 완성도를 높이는 역할을 해야지 싶었다. ‘이 소설에서 작동하는 매개 변수(파라미터)를 찾아 줘.’ 매개 변수는 인물과 사건을 연결하고, 의미를 생성하며, 서사의 방향을 바꾸는 구조적 요소다. 평론가 뺨치는 방대하고 치밀한 분석이 쏟아졌다.
변수의 패턴 분석까지 읽으니, 사진사에 극적 긴장감을 배치하는 게 나아 보였다. ‘사진사를 ‘전환 장치’에서 ‘시간·기억을 관장하는 존재’로 격상해서 재구성하라.’ 소설 중반 곳곳에 사진관 복선을 깔고, 결말에 사진사를 복귀의 문지기가 되게끔 사건을 만들라고 입력하자 중후반부만 바뀐 수정본이 뚝딱 나왔다. 긴 밤을 하얗게 지새우며 지우고 쓰기를 반복하는 번민의 고통은 이제 불필요한 것일까. 갑자기 올해 〈부산일보〉를 비롯한 전국 신문사의 신춘문예 응모작이 최대 두 배 가까이 늘어난 흥행 미스터리가 겹쳐 떠올랐다.
누구나 AI 도구를 활용하면 황석영 작가처럼 중편 소설을 창작할 수 있을까. 반은 맞고 반은 틀린 것 같다. 서랍 속 먼지 쌓인 습작도 매개 변수 조정을 거듭하면 탄탄한 서사 구조로 탈바꿈할 수 있다. ‘주인공 캐릭터를 유머러스하게 강조해.’ ‘범인의 폭력성을 부각해.’ 하지만 ‘황석영 문체로 쓰라’고 단순히 입력하면 실망하기 십상이다. 프롬프트의 정교함이 결과의 품질과 정비례하기 때문이다.
창작에 동반되는 고통스러운 선택은 체화된 경험과 사상이 뒷받침한다. 문즉인(文卽人). 글이 곧 사람이고, 글 속에 지문(指紋)이 있다. 범용 AI(AGI) 시대가 오면 예술 문법은 더 큰 변화가 불가피하다. AI를 제 몸처럼 다뤄 창작 의도를 지문처럼 새기는 능력. 문재(文才)의 정의가 바뀌는 것은 시간문제로 보인다.
김승일 논설위원 dojune@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