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북 단상] 동물원에서 뜨거운 커피를 마신다고?
장병진 사회부 차장
부산 부모들에게 ‘동물원’은 애증의 단어다. 주말이면 아이 손을 잡고 유아차를 밀며 등산을 하듯 가파른 경사를 올라야 했던 부산진구 초읍에 있던 삼정더파크. 그 살벌한 경사도 때문에 유아차 옆에는 늘 시원한 음료가 상비되어야 했다. 하지만 이마저도 2020년 문을 닫았다. 최근 부산시가 이를 인수해 내년에는 문을 열 것으로 기대된다.
하지만 비싼 땅값과 좁은 부지라는 부산의 태생적 한계 속에 그나마 있던 공간도 규모와 시설 면에서 늘 아쉬움을 남겼던 것이 사실이다. 결국 부산의 부모들은 큰마음을 먹고 1박 2일 일정으로 용인 에버랜드행 고속도로에 오른다. 심지어 해외여행에서도 동물원을 보기 위해 하루를 온전히 소비한다.
대형 동물원 하나를 보기 위해 수백 킬로미터를 달려야 하는 이 비효율적인 풍경은 역설적으로 우리 지역이 처한 칸막이 행정과 정치적 불통의 민낯을 그대로 보여준다.
가까운 경남으로 눈을 돌리면 넓은 땅과 완만한 지형이 널려 있다. 하지만 ‘우리 시’의 예산이 ‘남의 도’에 쓰일 수 없다는 행정의 벽은 그동안 견고했다. 부산 사람은 즐길 곳이 없어 떠나고, 경남은 인프라를 채울 동력을 찾지 못하는 모순이다.
최근 부상한 행정 통합 논의가 단순히 정치적 수사가 아닌, 우리 삶의 실질적인 해법으로 다가와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동물원 하나 제대로 짓지 못하게 가로막았던 그 낡은 벽, 그리고 정치적 자존심이라는 더 높은 벽을 허물자는 것이다.
문제는 최근 이 논의가 정치적 이해관계의 늪에 빠져 더 꼬이고 있다는 점이다. 메가시티 파기 이후 추진 중인 행정 통합은 지자체장들의 정치적 성향과 차기 대권·선거 셈법에 따라 온도 차, 속도 차가 극명하다. “누가 통합 지자체의 수장이 될 것인가” “어느 도시의 위상이 낮아질 것인가”를 두고 벌이는 소모적인 기싸움은 시민들의 실질적인 이익보다 우선시되고 있는 것 같아 우려스럽다.
부울경이 하나의 행정 구역처럼 움직인다면 자본을 한 곳에 집중 투입해 에버랜드 부럽지 않은 공간을 우리 곁에 둘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5극 3특의 본질은 이름 합치기가 아니라, 흩어진 자원을 모아 ‘규모의 경제’를 실현하고 수도권이라는 거대한 ‘원시티’에 대응할 체급을 키우는 결단이다. 실제로 수도권은 워낙 교통이 발달하고 인프라를 공유해 ‘니꺼 내꺼’의 개념이 지역에 비해 약하다.
경제 영역으로 넘어가면 통합의 절실함은 더욱 커진다. 설계는 부산에서, 건조는 거제와 울산에서 이뤄지는 조선업 생태계는 이미 행정 경계를 넘나든다. 이를 뒷받침할 광역 경제권이 제대로 작동한다면, 미래 모빌리티와 물류 산업에서도 수도권이 가질 수 없는 압도적인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다.
이 거대한 설계도에서 우리가 견지해야 할 원칙은 ‘냉정한 선택과 집중’이다. 인구 감소 시대에 모든 지역을 똑같이 개발하겠다는 ‘N분의 1’ 방식은 결국 모두를 고사시킨다. 그러기에 냉정한 선택과 집중을 할 수 있도록 이를 결정할 수 있는 다양한 권한의 이양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뜻이다.
정치적 셈범이 시민의 일상을, 그리고 지역의 미래를 볼모로 잡아서는 안 된다. 부울경의 부모들이 넓은 공간에서 유아차를 한 손으로 밀며 여유롭게 ‘뜨거운’ 커피를 마실 수 있는 날을 기대해본다.
장병진 기자 joyful@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