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물썰물] '유배지' 유치 경쟁

박석호 기자 psh21@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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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만 관객을 향하는 영화 ‘왕과 사는 남자’ 이야기다. 강원도 영월의 산골 촌장 엄흥도(유해진 역)는 먹고 살기 힘든 마을 사람들을 위해 청령포를 유배지로 만들려 한다. 옆 마을 노루골에 귀양왔던 전임 형조판서를 그 동네 사람들이 잘 대접했는데, 이 고관대작이 복권돼 한양으로 돌아가면서 마을에 대박이 터졌다는 이야기를 듣고서다. 심지어 귀양 온 양반 나리가 심심해서 글 공부를 가르치고, 한양으로 데려갔던 마을 청년은 과거시험에서 장원급제까지 했다.

엄흥도는 한양에서 또 다른 고관대작이 귀양 온다는 소문을 듣고 실력자 한명회를 만나 설득에 나선다. 이에 질세라 노루골 촌장(안재홍 역)도 ‘노루골은 오래전부터 수많은 유배자들이 머문 전통 있는 귀양지’라면서 유배지 유치 경쟁에 가세했다. 결국 “무슨 수를 쓰더라도 그 대감을 오게 해야지”라는 엄흥도의 절박함이 앞섰다. ‘육지 속의 섬’이라서 뗏목 없이는 한발짝도 움직일 수 없다는 청령포의 입지 조건도 한몫했다.

한명회는 엄흥도의 손을 들어주면서도 “내가 다시 찾아올 때는 한 손에는 칼을, 한 손에는 상을 들고 찾아올 테니 무엇을 받는지는 너가 하기 나름이다”고 엄포를 놓는다. 엄흥도와 마을 사람들은 기쁨에 들떴다. 하지만 이를 어쩌랴. 어렵게 모신 고관대작은 숙부 수양대군(세조)에게 왕위를 빼앗겨 한양 복귀가 원천적으로 불가능한 단종 이홍위였다.

단종과 마을 사람들이 서로를 이해하고, 마음의 상처를 조금씩 치유해 갈 무렵 재앙이 닥친다. 단종의 거처를 드나들던 엄흥도의 아들은 관가에 잡혀가 죽을 만큼 곤장을 맞았고, 역모가 발각되면서 단종은 최후의 순간을 맞이했다.

이재명 정부가 논란을 거듭해온 신규 원전 건설(제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을 당초대로 추진하기로 하면서 지자체들 사이에 원전 유치 경쟁이 불붙었다. 대형 원전 2기와 소형모듈원자로(SMR) 유치를 희망하는 기초지자체는 지방의회의 동의서를 포함한 신청서를 내달 말까지 제출해야 한다.

부산·울산·경남에서는 울산 울주군이 신규 원전을, 부산 기장군이 SMR 유치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경북에서는 경주시, 울진군, 영덕군 등이 공모에 참여할 예정이다. 지역의 반핵단체들은 정부의 계획 철회를 요구하면서 결사반대하고 있다. 마을에 대박을 가져다줄 고관대작일지, 비극을 불러올 단종일지 신규 원전의 미래가 궁금하다.


박석호 기자 psh21@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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