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시선으로] 말이 흘리는 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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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현 연세대학교 글로벌한국학연구소 연구교수

세상 모든 일이 말로만 그치면 얼마나 좋을까. 그것은 말실수였고 말장난이었고, 말을 철회하면 말에 붙은 모든 것들이 말과 더불어 거두어질 것이라 믿는 사람은, 그 말에 압도적인 피해를 입은 사람이 말 이외의 다른 수단을 마침내 강구해 항의할 때 비로소 ‘말로 하세요’라는 궁색한 말을 꺼낸다. 상대가 그 정도까지 격발한 이유는 내 말이 말로 끝나지 않는 지경에 다다랐기 때문이다.

말은 그 말을 뱉는 순간 말 이외의 무언가를 만든다. 말이 말 이외의 무언가와 매개되어 있기 때문에 사람은 말을 중하게 여긴다. 누군가 어머니가 돌아가셨다고 말할 때 사람들은 그 말에 매개된 사건의 진실을 믿는다. 누군가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공산군이 책동했다고 말할 때 사람들은 그 말을 믿는다. 누군가 그 때의 성폭력이 실은 없었던 일이라고 말할 때, 사람들은 그 말을 믿는다.

말이 말로만 끝난다면 말로 무슨 재미를 추구하든 그것은 별 상관이 없다. 너랑 나랑 죽창 한 방씩 맞자는 말은 재미있다. 인파로 붐비는 백화점에 폭탄이 설치돼있다는 말은 재미있다. 있었던 일을 없었다고 말하는 일은 재미있고, 없었던 일을 있다고 말하는 일도 재미있다. 그 모든 말들을 스스로도 속을 만큼 진정성을 담아 말하는 것 또한 재미있다. 그 모든 말이 재미있는 이유는, 누가 뱉은 말이 설마 그냥 지껄인 말일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을 사람들의 양식을 시험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저 말이 말뿐이지는 않을 것이라는 믿음은 누군가가 공들여 쌓아 올린 사회적 신뢰다. 저 사람이 자기 어머니가 죽었다는 말을 농담으로 하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전제는, 그 말을 거짓으로 했을 수도 있을 그 사람이 아니라 일단 사람의 말은 믿는 편이 맞지 않겠느냐고 여길 듣는 사람의 존엄을 매개로 구성된 것이다. 누군가의 말을 귀기울여 듣는 일은, 그 말이 애초에 옳거나 사실이라서가 아니라 아무쪼록 그 말이 옳고 사실일 것임을 믿으려는 그 마음 때문에 귀하다.

누군가 아무 말이나 지껄일 때, 그 사람은 자기가 차마 다 알지도 못하고 책임질 수도 없을 어떤 마음의 영역을 시험하는 중이다. 인간이 인간의 말을 일단 믿고 보는 일은, 사람의 말을 절대 신용하지 않는 습관보다 훨씬 구성되기 어려운 약속이다. 함부로 뱉은 말은 그런 사회적 약속이 마치 처음부터 당연하고 절대로 훼철될 일이 없을 것처럼 군다. 그 말들은 내가 아무리 진실을 외쳐도 아무도 그 말을 듣지 않는 상황이 나에게는 절대로 오지는 않을 것임을 전제한다. 그런 상황은 세상에 흔하고, 그렇기에 사람이 뱉는 모든 말에는 피가 묻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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