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기의 미술 미학 이야기] 모든 규정은 부정이다 - 장미셸 바스키아와 무하마드 알리
바스키아, 무제(복서)-부분 인용, 1982. 개인 소장, 비평·교육 목적의 공정 인용.
헤겔은 스피노자의 말을 빌려, “모든 규정(規定)은 부정이다”라고 말한다. 어떤 것을 무엇이라고 ‘규정’(Bestimmung)하는 것은 그것이 아닌 모든 다른 것을 부정하는 것과 같다. 예컨대 ‘흑인’을 ‘어떠하다’라고 규정하는 것은 흑인을 그 규정 속에 가두는 것이 된다. 장미셸 바스키아와 무하마드 알리는 이러한 규정적 정체성을 거부한다.
1964년 2월 25일 세계 챔피언이 된 알리는 “나는 가장 위대하다”라고 외친다. 이 선언은 흑인을 ‘규정’해 온 세계에 대한 도전이었다. 이후 그의 몸은 발언, 저항, 시대를 흔드는 이미지가 되었다. 베트남전 징병 거부는 그를 챔피언 자리에서 끌어내렸지만, 인간으로서의 위상은 오히려 높였다. 그는 링 위에서조차 정치적 존재로 남았다.
바스키아의 회화에는 언제나 균열이 있다. 거리에서 시작된 그의 그림은 미술관으로 들어왔지만, 미술관의 질서를 따르지 않았다. 그에게 캔버스는 투쟁의 링이었다. 그의 예술은 정체성에 대한 불신에서 출발한다. 그는 자신을 ‘흑인 예술가’로 규정하는 언어를 경계했고, 그 언어가 자신을 이미 권력의 분류 체계 안으로 포획한다는 사실을 직감했다. 그의 화면이 끝없이 파열되고 중첩되는 이유는, 하나의 의미로 고정되는 것을 거부하기 때문이다. 그의 회화는 결코 완결되지 않는다. 완결은 곧 규정이며, 규정은 곧 부정이기 때문이다.
그의 작업에는 반복적으로 왕관, 해골, 해부학적 도식, 낙서 같은 텍스트가 등장한다. 이 기호는 특정 대상을 지시하지 않는다. 왕관은 권위를 의미하지만 동시에 불안정하고, 해골은 죽음을 가리키면서도 살아 있는 것처럼 말한다. 텍스트는 의미 전달이 아니라, 그 실패를 드러낸다. 단어는 ‘팔림프세스트’(Palimpsest)처럼 쓰였다가 지워지며, 끝내 확정되지 않는다. 이는 언어가 세계를 설명하기보다 세계를 분할하고 지배해 온 것에 대한 비판이다.
그의 회화는 헤겔적 의미에서의 ‘부정의 운동’에 가깝다. 그는 어떤 규정을 제시하지 않고, 규정하려는 모든 시도를 무너뜨린다. 나치가 유대인의 몸을 측정하고 분류했던 것처럼, 흑인의 몸 역시 오랫동안 그러한 시선 아래 놓여 있었다. 바스키아는 ‘미술사에 편입된 흑인 예술가’가 아니라, 미술사가 작동하는 방식 자체를 드러내는 존재였다.
바스키아와 알리는 자신을 규정하려는 세계에 맞서 “아니다”라고 말한다. 랑시에르의 말처럼 정체성은 스스로 선언될 때 정치적 가능성이 되지만, 타자에 의해 요구될 때는 쉽게 배제와 강제로 전환된다. “당신은 누구인가?”라는 질문 앞에서, 바스키아와 알리는 그 대신 질문을 뒤집는다. “그러면 당신은 누구인가?” 그리고 그 질문이 뒤집히는 순간, 예술과 정치, 몸과 언어는 하나의 투쟁 장으로 겹친다. 미술평론가·철학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