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준성의 개념 쌓기] 망치를 들면 모든 게 못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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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대 철학과 강사

특정 도구나 권한에 익숙해진 인간
자기 선택 옳다고 믿지만 이는 환상
진정한 능동성은 수동성 자각하는 것

‘망치를 들면 모든 게 못으로 보인다.’ 미국의 소설가 마크 트웨인이 한 말로 잘못 알려진 이 말은 영미권에서 널리 통용되는 속담이다. 통상 모든 상황을 자신이 가진 특정 방식대로만 해석하고 해결하려는 편향된 태도를 일컫는다. 비슷한 버전으로는 2017년 개봉했던 아프가니스탄 전쟁 관련 미국의 블랙코미디 영화인 ‘워 머신’에서 저널리스트로 나오는 숀 컬런이 한 대사가 있다. 장군들이 전쟁을 벌이는 주된 이유는 오로지 전쟁 속에서만 자신들이 진정으로 중요하다고 느끼기 때문이란 것이다. 물론 망치를 든 목수이건 교전 명령권을 가진 장군이건, 관건은 이 두 주체가 모두 자신의 자율성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는 데 있을 터이다. 다시 말해 이 장군은 자신이 장군이기 때문에 전쟁을 부르짖는 것이 아니라, 지금 이 상황을 타개할 가장 효율적인 방법이 전쟁뿐이기에 전쟁을 선택한 것이라고 항변한다는 얘기이다. 만일 전쟁 이외의 방법이 있었다면 자신은 결코 교전 명령을 내리지 않았을 것이라고 덧붙이면서 말이다.

이때 군인 출신이 아닌 이들에게는 이 장군의 오류가 금방 보인다. 지금 당신은 당면한 사태를 잘 해결하는 것과 자신이 잘할 수 있는 것을 혼동하고 있다고 지적을 준비하는 건 쉬운 일이다. 문제는 지적이 아니라, 그 지적에 대한 수용이다. 쉽게 추측되듯, 이런 상황에서는 설득이 쉽지 않다. 저 주체들은 망치나 명령권과 같이 지금 자신의 손에 들린 도구를 스스로가 완전히 자유롭게 통제하고 있다고 믿어 의심치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주체에겐 지금의 판단은 도구에 잠식된 결과물이 아니라, 지극히 합리적인 의사 결정이다. 견줘보건대 이는 치매 환자에게 그가 치매임을 납득시키는 것의 어려움과도 유사하다. 문제의 뿌리는 단순하게 지금 판단의 오류 여부에 있는 게 아니다. 이 표피 밑의 진정한 근저는 통제력의 환상이 똬리를 틀고 있다.

물론 이건 인간적으로 얼마든지 이해할 만한 비극이다. 수년간 목수 일을 하면서 망치를 자유자재로 다뤄오지 않았던가? 또한 평생 군에 몸담으면서 장군 계급장까지 달지 않았던가? 이러한 주체가 자신이 가장 익숙하고도 전문적인 분야에서 비합리적이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란 참으로 버거운 일이다. 게다가 자신이 가장 잘 다룬다고 믿었던 도구에, 되레 자신이 휘둘려지고 있었다는 사실 또한 큰 충격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다. 이때 손상되는 건 자유의지이다. 자유의지를 갖고서 도구를 자유롭게 통제한다고 상상한 바로 그 신화화된 주체 말이다. 손안에 든 도구조차도 통제하지 못한다면, 대관절 내가 이 세상에서 자유롭게 할 수 있는 게 무엇이란 말인가?

그러나 진실에는 영상물등급위원회가 설치돼 있지 않기 때문에 가혹성에 고삐가 없다. 처음엔 연장통을 늘어놓고서 다룰 도구를 택하던 내가, 어느 순간부터는 거꾸로 그 도구에 의해 선택된다. 검을 휘두르던 이는 결국 검에 의해 휘둘러지고 만다. 주인의 결정을 기다리는 수동적인 것이 도구라면 이 구도 안에서 도구는 무엇보다 나 자신이란 것이 견디기 힘든 가혹한 진실이다. 어떤 의미에서 비록 무의식적이라 할지라도 이 존재는 지금 자신이 한낱 도구 이상이 아님을 감지하고 있을 심산 또한 크다. 이때 주체는 또다시 신화가 된다. 처음에 신화는 단순 무지 때문에 형성됐지만 그다음에 신화는 무엇보다 주체의 비루함을 숨기기 위해 요청된다. 즉 진실에서 벗어나기 위한 방어기제인 것이다.

참고로 철학에서는 이처럼 도구를 가치중립적 수단으로 보고, 도구에 대한 책임은 전적으로 사용자에게 있다고 보는 태도를 ‘도구주의’라고 부른다. 강도 손에 들린 칼은 범죄를 낳지만, 요리사 손에 들린 칼은 맛난 음식을 낳는다는 식의 믿음인 것이다. 이때 칼은 전적으로 어느 주인을 만나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지극히 수동적인 것으로서 상정된다. 당연히 이러한 규정의 짝패는 한낱 도구엔 아무런 영향도 받지 않을 정도로 절대적인 능동성을 지닌 주체에 대한 믿음이다. 그러나 앞서 봤듯 이는 신화에 불과하다. 그가 속한 세계가 혼탁할수록 어디에도 휘둘리지 않는 자신만의 무언가를 확보하고픈, 지극히 인간적인 욕망으로 추동되는 그러한 신화 말이다.

해가 바뀌고 벌써 한 달이 훌쩍 지났다. 무언가 진정으로 새롭게 시작하고자 다짐한 이가 돌아봐야 할 것은 눈앞의 세계가 아니다. 먼저 반추해야 할 것은 내 손에 든 도구와 여태껏 걸어온 길이다. 평범한 인간은 사태를 보고서 도구를 고르는 것이 아닌, 가진 도구를 통해 사태를 규정하려고 들기 때문이다. 그리고 현명한 이라면 자신을 영웅이 아닌 평범한 존재라고 상정할 터이다. 도구는 도구 그 이상이되, 사람은 사람 그 이상이 아니다. 진정한 능동성은 수동성에 대한 깊은 자각에서 시작되는, 실로 얄궂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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