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희창의 클래식 내비게이터] 사랑할 수 있을 때 사랑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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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평론가

프란츠 리스트. 위키미디어 프란츠 리스트. 위키미디어

‘사랑의 꿈’(Liebestraume)은 원래 1845년 리스트(Franz Liszt, 1811~1886)가 34세 때에 발표한 가곡이다. 불같이 뜨겁게 사랑했던 마리 다구 백작부인과 결별하고서 이리저리 연주회를 다니던 시기였다. 가곡은 모두 3곡으로 이루어졌는데, 1번의 원곡은 독일 낭만주의 시인 루트비히 울란트의 시에 곡을 붙인 ‘고귀한 사랑’, 2번도 역시 울란트의 시 ‘가장 행복한 죽음’, 3번은 프라일리그라트의 시에 곡을 붙인 ‘사랑할 수 있을 때 사랑하라’이다. 3번의 가사는 이렇게 시작한다.

“오 사랑하라, 사랑할 수 있는 한! 오 사랑하라, 사랑할 힘이 남아 있을 때까지! 시간이 오리니. 시간이 오리니, 그대가 무덤 옆에서 슬퍼할 시간이 오리니….”

1850년에 리스트는 이 가곡을 피아노곡으로 편곡해서 당시에 사랑하던 카롤린 자인 비트겐슈타인 공작부인 앞에서 연주했다. 그녀는 우크라이나 지방에서 가장 넓은 토지를 소유한 재력가의 딸이었다. 열일곱 살에 비트겐슈타인 공작과 결혼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남편과의 사이가 냉랭해져서 적적하게 살아가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리스트의 연주를 듣고, 그만 가슴에 큐피드의 화살을 맞게 되었다.

둘은 바이마르에 집을 얻어서 동거에 들어갔다. 그러나 불행히도 비트겐슈타인 공작이 이혼을 거부해 무려 10년 넘도록 지루한 소송을 했는데, 결국 이혼에 실패하여 리스트와 맺어질 수 없었다. 리스트는 마치 앞으로 일어날 어려움을 예견한 듯, 이 짧은 곡에 사랑의 열정과 추억과 회한을 모두 담아놓았다.

나는 피아니스트 클라우디오 아라우(Claudio Arrau, 1903~1991)의 연주를 좋아했다. 아라우는 1903년 2월 6일 칠레에서 태어났다. 4세에 악보를 보기 시작했고, 5세에 첫 공개 연주회를 가진 천재였다. 칠레 국가장학생 자격으로 독일 유학길에 오른 게 8세 때였다. 베를린에서 리스트의 제자인 마르틴 크라우제에게 작곡을 배웠고, 1927년 제네바콩쿠르에서 우승하면서 명성을 얻었다. 녹음도 많이 남겨놓았는데, 특히 베토벤, 쇼팽, 리스트 등 낭만주의 음악에서 놀라운 음반을 남겨놓았다.

‘사랑의 꿈’에 대해선 “백발의 노인마저도 이 곡을 들으면 추억에 빠져든다”라는 말이 있고 “젊은 사람이 연주하면 고백이 되지만, 나이 든 사람이 치면 회상이 된다”라는 식의 표현도 있다. 그만큼 여러 가지 감정이 서사적으로 얽혀있기 때문에, 연주자에 따른 표현의 특징을 비교해보기에 좋은 곡이다. 루빈스타인, 호로비츠, 아르헤리치, 임윤찬, 손열음 등이 저마다의 감정을 이 곡에 실어놓았다. 아라우가 해석한 ‘사랑의 꿈’은 숨 가쁘거나 화려하지 않다. 오히려 사랑이 주는 무게를 인정하고서 덤덤히 지고 가는 뒷모습이 보이는 듯하다.

※리스트:사랑의 꿈 3번 - 클라우디오 아라우 (피아노) ※리스트:사랑의 꿈 3번 - 클라우디오 아라우 (피아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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