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 아파트 화재, 쓰레기 더미에 ‘진화 난항’…저장강박 참전용사 숨져
생활 폐기물 가득 차 진화 난항
소방, 7시간 45분 만에야 완진
28일 오후 울산 남구 달동의 한 아파트 화재 현장에서 소방대원들이 연기로 가득 찬 복도를 뚫고 진화 작업을 벌이고 있다. 울산소방본부 제공
29일 오전 울산 남구 달동의 한 아파트 화재 현장 복도에서 소방대원들이 잔불 정리 등 후속 조치를 하고 있다. 복도 바닥에는 화재 진압에 사용된 물이 흥건하게 고여 있고, 불이 난 세대 내부에서 꺼낸 것으로 보이는 각종 쓰레기와 집기류가 어지럽게 널려 있어 당시 긴박했던 상황과 진화 작업의 어려움을 짐작하게 한다. 울산소방본부 제공
지난 28일 울산 남구에서 발생한 아파트 화재가 내부에 쌓인 생활 폐기물로 진화에 난항을 겪은 가운데, 숨진 거주자가 저장강박증을 앓던 베트남전 참전유공자로 확인됐다.
29일 울산소방본부와 남구청 등에 따르면 28일 오후 6시 56분 울산 남구 달동의 10층짜리 아파트 7층에서 발생한 화재로 거주자 A(70대) 씨가 숨지고 주민 50여 명이 대피했다.
숨진 A 씨는 월남전에 참전한 국가유공자로, 매달 45만 원 상당의 보훈 수당을 받으며 20년 가까이 홀로 지내온 것으로 파악됐다.
화재 당시 현장에 출동한 소방대원들이 현관문을 개방하자 성인 남성 키 높이만큼 쌓인 ‘쓰레기 산’이 가로막고 있었다고 한다. 집 내부에는 생활 폐기물과 고물, 폐가전 등이 입구부터 가득 차 있어 진입로 확보에 큰 어려움을 겪은 것으로 전해졌다.
소방당국은 인력 104명과 장비 30대를 투입했으나, 내부에 적치된 막대한 양의 쓰레기를 일일이 치우며 불을 꺼야 했던 탓에 완진까지 상당한 시간이 소요됐다. 불은 발생 약 7시간 45분 만인 29일 오전 2시 40분께야 완전히 꺼졌다.
구조대 진입 당시 A 씨는 거실에 쌓인 쓰레기 더미 위에서 심정지 상태로 발견됐다. 곧바로 인근 병원으로 이송됐으나 끝내 숨졌다.
이웃 주민과 관리사무소 측은 A 씨가 수년 전부터 집 안에 물건을 쌓아두는 저장강박 의심 증세를 보였다고 진술했다. 관리사무소 측이 몇 해 전 비용을 들여 쓰레기를 치우고 도배까지 새로 해줬으나, 이후 다시 쓰레기가 쌓이기 시작했고 A 씨가 주변의 도움을 완강히 거부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관할 지자체인 남구와 행정복지센터 역시 민원을 접수하고 A 씨를 설득하려 했으나, 현행법상 당사자가 거부할 경우 강제로 주거지에 개입하거나 폐기물을 수거할 법적 근거가 없어 관리에 한계가 있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노후 아파트의 설비 미비도 피해를 키운 원인으로 지목된다. 불이 난 아파트는 1996년 사용승인을 받아 당시 소방시설법상 스프링클러 설치 의무 대상에서 제외됐다. 이 때문에 화재 초기 자동 소화 설비가 작동하지 않아 불길이 번지는 것을 막지 못했다.
경찰과 소방당국은 정확한 화재 원인과 재산 피해 규모를 조사하고 있다.
권승혁 기자 gsh0905@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