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으로 국적을 넘어선 일체감 [마루타 기자의 부산 후일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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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루타 미즈호 서일본신문 기자

부산시-후쿠오카 합동 공연 ‘세레모니’
언어 얽매이지 않는 진가 느낄 수 있어

2025년 올해도 얼마 남지 않았다. 윤석열 전 대통령이 2024년 말에 선언한 ‘비상 계엄’의 여파로 무거운 분위기로 시작한 2025년은 4월 윤 전 대통령의 파면 결정, 6월 대선을 통한 3년 만의 정권 교체 등 정치·사회적으로 유난히 분주했던 한 해로 기억될 것 같다.

올해는 또한 한일 국교정상화 60주년 기념의 해이기도 해서, 예년 이상으로 전국 각지에서 많은 행사가 이어졌다. 지난 11월 하순께 부산시와 후쿠오카시의 연극 관계자들이 합동 기획한 공연이 특히 기억에 남는다. ‘세레모니’(セレモニ-)라는 제목의 작품으로, 오사카와 부산을 연결하는 크루즈선 ‘팬스타 미라클호’의 선상에서 상연됐다. 작품은 선상 결혼식을 앞둔 한일 커플의 이야기로, 축구 한일전 당일 부산에서 오사카로 향하는 선상을 무대로 하고 있다. 신랑 신부 대기실에서 벌어지는 좌충우돌 소동을 딛고 무사히 식을 올릴 수 있을지, 양국 배우가 함께 출연해 일본어와 한국어가 난무하는 코믹한 무대는 승선객들에게 또다른 매력으로 다가왔다.

작품을 기획한 사람은 2014년부터 ‘하나로 프로젝트’라는 이름으로 부산과 후쿠오카에서 연극 교류를 하고 있는 연출가 김세일 씨. 부산 출신으로 현재는 일본을 거점으로 활동하고 있다. ‘하나로 프로젝트’는 신종 코로나 이후 중단됐다가 이번이 오랜만의 재가동됐다. 작품은 2017년 한일 공동제작으로, 실제로 선상에서 공연한 것은 처음이다. 배우들은 부산에서 연습을 하고 실전에 임했다.

한국 배우의 연기는 일본어 자막, 일본 배우의 연기는 한국어 자막이 준비되었지만, 작품이 상연된 이틀 간의 크루즈선에는 한국인과 일본인뿐 아니라 호주에서 온 승선객도 많았다. ‘말이 안 통해도 즐길 수 있을까’라는 고민이 무색할 만큼 결혼식 장면에선 관객 모두가 자리에서 일어나 함께 어울려 노래하고 춤을 추며 국적을 초월한 일체감을 보였다. 특정 언어에 얽매이지 않는 소통에서 연극의 진가를 느낄 수 있었다.

사실 연기하는 배우들끼리도 양국 서로의 언어를 완벽하게 아는 사람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 중 한 명은 “교류가 오랫동안 겹쳐 이어지면서 몸짓이나 손짓, 심지어 분위기 등을 통해 상대의 생각을 어느 정도 헤아릴 수 있게 되었다”고 했다. 상대에 대한 흥미나 이해하려는 마음을 갖는 것은 국적이나 문화가 다른 사람들끼리는 물론이거니와 같은 나라의 사람들끼리도 중요한 일이라는 점을 ‘하나로 프로젝트’를 통해 새삼 깨달을 수 있었다.

프로젝트가 시작된 지 10년이 넘었다. 종연 후 연출가 김 씨는 “(국적이나 문화의 차이 등) 많은 제약을 넘어 나아가는 것이 연극의 힘”이라며 “한일 관계가 더 오래 지속될 수 있도록 희망의 조각을 쌓아가겠다”고 말했다. 코로나로 한 차례 멈췄던 것이 양국 수교 60년을 계기로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는 의미는 생각보다 컸다. 내년에는 부산과 후쿠오카를 오가는 배에서의 상연도 목표로 하고 있다. 이러한 풀뿌리 교류가 한일 관계를 지탱하고 있음을 새삼 느끼고 앞으로 더욱 발전해 나가기를 바라 마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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