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물썰물] 엡스타인 파일

박석호 기자 psh21@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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억만장자 금융재벌과 미성년자 성착취범이라는 두 얼굴을 가졌던 제프리 엡스타인. 그는 2019년 교도소 복역 중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를 둘러싼 각종 의혹을 확인할 수 있는 미국 연방 정부의 문건, ‘엡스타인 파일’이 곧 공개된다.

문건에는 그로부터 성 접대를 받았다는 고객들의 명단도 들어 있다. 거물 정치인을 비롯해 미국 사회 지도층 인사들의 이름이 거론되는 가운데 최대 관심사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여기에 포함됐느냐이다.

트럼프는 선거 때마다 엡스타인 문건이 거론되면 강하게 부인해 왔다. 엡스타인 문건을 공개하는 법안이 이슈로 떠오르자 ‘사기극’이라고 비난하며 온갖 수단으로 저지하려 했다. 트럼프는 의회 표결을 피할 수 없게 되자 “공화당 의원들은 엡스타인 문건 공개 법안에 찬성하라. 우리는 숨길 게 없다”며 입장을 번복했다.

다수 공화당 의원들도 법안에 찬성하며 “원래부터 지지해 왔다”고 말을 바꿨다. 여당 내 이탈표가 속출하면서 법안 통과가 대세가 되자 트럼프로서도 어쩔 수 없었을 것이란 해석이 나왔다.

미국 하원은 지난 18일(현지시간) 본회의에서 찬성 427표, 반대 1표로 해당 법안을 가결했다. 곧이어 상원도 이 법안을 만장일치로 통과시켰다. 야당인 민주당은 물론 공화당에서도 찬성 몰표였다. 하원에서 유일하게 반대표를 던진 의원은 루이지애나 출신의 극우 성향 공화당 의원 클레이 히긴스였다.

트럼프는 여론을 의식해 법안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하지 않겠다고 이미 밝혔다. 트럼프가 서명하면 법안은 곧바로 발효되고, 법무부는 30일 안에 이번 사건과 관련된 미공개 기록·수사 자료·이메일 등을 피해자 신원 보호 기준에 따라 가공한 뒤 일반에 공개해야 한다.

이번 상·하원 표결은 미국 의회의 전통, 미국 정치의 목적을 다시 확인시켜줬다는 평가다. 국민적 관심사에 대한 진실 규명에는 여야가 따로 없다는 것이다.

트럼프의 대표적 측근 마조리 테일러 그린 의원은 이날 본회의 연설에서 “이 문제는 연방정부와 의회가 국민을 얼마나 오랫동안 외면해 왔는지를 상징한다”면서 “이것이 바로 미국 국민이 워싱턴 정치에 질려 있는 이유”라고 일갈했다.

한국 정치는 언제쯤 극단적 편가르기에서 벗어나 공공의 선을 위해 한 목소리를 낼 수 있을까. 여의도 정치에 질려 있는 우리 국민들이 묻고 있다.


박석호 기자 psh21@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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